유럽의 역사

12세 노예 소년이 풀어낸 바닐라 수분의 비밀, 식물학자들을 당황시킨 에드먼드 알비우스

이 이야기를 주인공인 12세 노예 소년으로 시작하는 대신, '다른 사람'인 프랑스 식물학자 장 미셸 클로드 리처드(Jean Michel Claude Richard)부터 시작해 보겠습니다. 아이의 발견 공로를 자신의 것으로 인정받으려 했던 인물입니다. 사실 그는 프랑스 최고 훈장인 레지옹 도뇌르 훈장을 받은 저명한 식물학자였고, 상대는 아직 면도도 하지 않은 외딴 섬의 어린 노예였기 때문에 승부는 처음부터 기울어져 있었습니다. 하지만 이번 경우에는 역사가 각자 제자리에 있어야 할 사람들을 정확히 배치했습니다. 수염 없는 주인공의 이름은 에드먼드(Edmond), 그리고 그의 발견은 수백만 달러 규모의 바닐라 산업의 문을 열었습니다.

12세 노예 소년이 풀어낸 바닐라 수분의 비밀, 식물학자들을 당황시킨 에드먼드 알비우스

500년 전, 바닐라를 맛볼 수 있는 것은 특권이었습니다. 대서양 건너 신대륙에서 목테수마 소코요친 황제는 코코아와 옥수수로 만든 음료에 특별한 향료를 가미해 마셨습니다. 원주민들은 이 음료를 "신의 음료"라 불렀고, 아즈텍 제국의 엘리트 계층만이 그것을 즐길 수 있었습니다. 혼합물에서 풍기는 독특한 향기가 검은 꼬투리, 즉 바닐라에서 나온다는 사실을 알게 된 스페인인들은 곧바로 매료되고 말았습니다. 스페인 필리페 2세의 주치의였던 프란시스코 에르난데스는 바닐라를 위를 진정시키고, 독사에 물린 상처를 치료하며, 고창을 줄이고, "훌륭한 소변 흐름"을 유도하는 기적의 약이라고까지 묘사했습니다.

바닐라는 같은 이름의 식물(Vanilla)의 열매로, 얇고 긴 꼬투리 형태를 지닙니다. 난초과에 속하는 덩굴성 관목으로 멕시코가 원산지이며, 오늘날에는 미식 향료와 화장품 향료로 널리 쓰입니다. 그 독특한 맛 때문인지, 이뇨 효과 때문인지, 아니면 활력 강화 효과 때문인지—독일 의사 베자르 짐머만(Bezaar Zimmerman)은 1762년 논문에서 "적어도 342명의 무력했던 남성들이 바닐라 차를 마신 뒤 놀라운 연인으로 변신했다"고 주장했습니다—어쨌든 수요는 폭발적으로 급증했습니다. 유럽에서도 이 식물이 자랄 수 있는지 확인하기 위해 바닐라 덩굴은 멕시코에서 파리와 런던의 식물원으로 옮겨졌고, 이후 동인도제도와 아프리카 식민지로 퍼져나갔습니다. 실제로 오늘날 '향기로운 금'이라 불리는 바닐라는 주로 마다가스카르(전 세계 생산량의 80~85%)에서 생산되며, 이곳에 바닐라를 처음 소개한 것은 19세기 프랑스인들이었습니다. 그리고 그곳에는 고작 열두 살짜리 소년이 있었습니다.

12세 노예 소년이 풀어낸 바닐라 수분의 비밀, 식물학자들을 당황시킨 에드먼드 알비우스

에드먼드 알비우스(Edmond Albius)

에드먼드는 1829년, 마다가스카르 동쪽 마스카렌 군도에 속한 섬인 레위니옹의 생트쉬잔(Sainte-Suzanne)에서 노예로 태어났습니다. 그의 어머니는 출산 중 세상을 떠났고, 그는 아버지를 전혀 알지 못한 채 자랐습니다. 어린 시절 그는 프랑스 식물학자 페레올 벨리에 보몽(Fereol Bellier-Beaumont)의 농장에서 일하도록 보내졌습니다. 보몽의 농장에는 여러 식물과 함께 바닐라도 있었는데, 식물은 정상적으로 자라고 꽃도 피웠지만 끝내 열매를 맺지 못했습니다. 멕시코에서는 벌과 벌새가 수분을 담당했지만, 레위니옹 섬에는 그런 곤충이 서식하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수많은 식물학자들이 이 문제에 도전했지만 아무도 해답을 찾지 못했습니다. 그런데 12세 소년이 성공해 버렸습니다.

1841년, 에드먼드는 보몽과 함께 농장을 거닐던 중 우연히 바닐라 꼬투리가 열린 것을 발견하게 됩니다. 다가와서 살펴본 결과, 그것은 행운의 여신이 가져다준 것이 아니라 에드먼드 자신의 손끝에서 나온 결실이었습니다. 그는 바닐라 꽃을 세심하게 관찰해 꽃가루를 만들어내는 부위와, 꽃가루가 묻어야 하는 암술머리를 구분해냈습니다. 그리고 풀잎 하나로 두 부분을 분리하고, 작은 덮개를 "열어" 식물이 수정되도록 했던 것입니다. 에드먼드는 바닐라 수분의 미스터리를 풀어낸 것입니다. 중요한 점은, 수분(受粉)이라는 기법 자체가 다른 작물에서 오래전부터 쓰여 왔다는 사실이 아니라, 바닐라에 적용하는 구체적인 방법을 최초로 확립했다는 데 있습니다. 이 발견 덕분에 레위니옹 섬은 19세기 세계 최대의 바닐라 생산지로 부상했습니다.

다행히도 보몽은 그에게 자유와 '알비우스(Albius)'라는 성을 선사했습니다(노예에게는 성이 없었습니다). 나아가 그는 프랑스 총독에게 편지를 보내, 에드먼드가 엄청난 가치를 지닌 사업의 초석을 발견했다는 점에 대한 금전적 보상을 요청했습니다. 정부의 답변은… 아무것도 없었습니다. 자유의 몸이 된 에드먼드는 생드니(Saint-Denis)로 이주했으나, 어느 보석 강도 사건에 연루되어 10년 징역형을 선고받고 만니다. 이 소식을 접한 보몽은 다시 한번 총독에게 편지를 써 그를 위해 나섰고, 이번에는 답장이 돌아왔습니다. 형량은 크게 줄었고 에드먼드는 곧 석방되었습니다. 그는 스승의 농장 근처 집으로 이사해 결혼했으며, 남은 평생을 그곳에서 보냈습니다. 1880년 8월 9일, 그는 51세의 나이로 세상을 떠났습니다.

12세 노예 소년이 풀어낸 바닐라 수분의 비밀, 식물학자들을 당황시킨 에드먼드 알비우스

그리고 이야기의 첫 장면으로 돌아가 보겠습니다. 당대의 유망주였던 우리의 "친애하는" 장 미셸 클로드 리처드는, 자신이 1838년—즉 에드먼드의 발견보다 3년 전—이 섬을 방문해 원예사들에게 그 기술을 가르쳤다고 주장하며 등장합니다. 아이디어를 훔친 사람은 아이가 아니라 자신이라는 것이죠. 그러나 또다시 보몽이 나서서 에드먼드가 진정한 발명가임을 입증해야 했습니다. 제출된 증거와 증언 앞에서 리처드는 결국 주장을 철회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그럼에도 에드먼드의 업적이 공식적으로 인정받기까지는 그가 세상을 떠난 후 무려 100년이라는 세월이 걸렸습니다. 이후 지방 당국은 에드먼드의 동상을 세웠고, 그의 이름을 딴 거리와 학교가 도시 곳곳에 세워졌습니다.

12세 노예 소년이 풀어낸 바닐라 수분의 비밀, 식물학자들을 당황시킨 에드먼드 알비우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