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54년 겨울, 기록적인 한파가 프랑스 전역을 덮치면서 노숙자들 사이에서 수많은 희생자가 발생했습니다. 이 위기의 순간, 5년 전 엠마우스(Emmaüs) 운동을 창시한 아베 피에르(Abbé Pierre)는 가장 취약한 계층의 고통을 대중과 공공 당국에 알리기 위해 활발한 호소 활동에 나섰습니다. 20세기 자선사업의 살아있는 상징인 그의 행보는 드니 아마르(Denis Amar) 감독, 랑베르 윌슨(Lambert Wilson) 주연의 영화 Hiver 54를 통해 영화계에도 영원히 남게 되었습니다.
저항 운동에서 사제로, 피에르 신부의 첫 번째 헌신
1912년 8월 5일 리옹에서 스스로 '부르주아'라 표현한 가정에서 태어난 앙리 그루에스(Henri Grouès)는 1931년 필리프 형제(Frère Philippe)라는 이름으로 카푸친회에 입회했습니다. 고립된 수도원 생활을 떠난 그는 1938년 사제로 서품되었습니다. 제2차 세계대전 중 그르노블에서 사목하던 시절, 독일 점령당국에 의해 부모가 체포된 유대인 아이들을 보호하고 강제노동 징집(STO)에 저항하는 이들을 도왔습니다. 또한 샤르트르즈(Chartreuse)와 베르코르(Vercors) 지역 마키(Maquis) 저항 조직 결성에도 참여했습니다. 이후 신분을 숨긴 채 저항운동의 이름으로 '아베 피에르'라는 이름을 사용하게 됩니다.
전쟁이 끝나자 아베 피에르는 정계에 입문하여 인민공화운동(MRP) 소속으로 뫼르트에모젤(Meurthe-et-Moselle) 주 의원으로 선출되었습니다. 이후 점차 중도 노선에서 벗어나 사회주의 좌파와 연대하는 의회 독립좌파 카르텔 그룹에 합류했습니다.
1949년 아베 피에르는 파리 근교 뇌이플레장스(Neuilly-Plaisance)에 집을 임대하고 노숙자와 사회적으로 소외된 사람들을 수용하기 위한 여관을 열었습니다. 그곳에는 직전에 자살을 시도했던 전과자 조르주 르게(Georges Legay)도 있었습니다. 그를 맞이하며 아베 피에르는 이렇게 말했습니다. "당신은 몹시 불행하고 나는 당신에게 줄 것이 없습니다. 하지만 죽고 싶다면 부끄러울 일이 아니지요. 다른 사람들을 돕기 위해 나를 도와주겠습니까?"
이 만남이 바로 최초의 엠마우스 공동체 탄생의 순간입니다. 아베 피에르가 '엠마우스'라는 이름을 선택한 이유는 다음과 같습니다. "성경에 따르면 엠마우스는 예수께서 부활 후 부활절 월요일에 제자들 앞에 나타나셨던 팔레스타인의 한 마을입니다. 제자들은 희망을 되찾고 복음을 전하기 위해 예루살렘으로 돌아갔습니다."
프랑스를 얼어붙게 만든 지옥 같은 겨울, 1954
1953~1954년 겨울, 극심한 한파가 프랑스를 덮쳤습니다. 전국적으로 기온이 영하 10도 이하로 떨어졌고 일부 지역에서는 영하 30도까지 내려갔습니다. 극지방의 추위는 잦은 눈보라로 더욱 가혹해졌고 강까지 얼어붙었습니다. 제2차 세계대전 종전 10년이 지난 시점에도 노숙자들의 상황은 처참했으며, 많은 이들이 매일 추위에 목숨을 잃고 있었습니다.
아베 피에르는 '선의의 반란'을 촉구하기로 결심합니다. 2월 1일, 그는 룩셈부르크 방송(Radio Luxembourg)을 통해 연설했습니다. 떨리는 목소리로 "여러분, 도와주세요!"라고 외치며 그는 이렇게 회상했습니다. "그저께 세바스토폴 대로 보도에서 얼어 죽은 한 여인은 쫓겨나는 순간에도 어제 밤 자신이 들고 다니던 종이를 꼭 쥐고 있었습니다…" 그리고 프랑스 국민들에게 외쳤습니다. "매일 밤 2천 명이 넘는 사람들이 지붕도 빵도 없이 혹한 속에 웅크리고 있으며, 거의 알몸으로 고통받는 이들도 있습니다."
3월 23일, 아베 피에르는 수천 명의 노숙자에게 지붕을 내줄 수 있는 이들에게 다시 한번 호소했습니다. 그의 말대로 "부모가 노숙 생활 끝에 아이들을 잃었는데도 건물이 방치되는 것은 범죄"였습니다. 1954년 겨울이 끝날 무렵, 수많은 아이들을 포함해 수백 명이 추위로 목숨을 잃었습니다.
엠마우스 운동의 확산과 미디어 속 아베 피에르
아베 피에르의 여러 차례 호소는 프랑스 국민에게 노숙 문제를 각인시켰습니다. 국민들은 폭발적인 관대함을 보이며 담요를 나누고 주택 건설을 돕기 위해 수많은 자원봉사자가 몰려들었습니다. 이후 이 운동은 전 세계로 확산되기 시작했고, 1971년에는 엠마우스 인터내셔널(Emmaus International)이 창설되었습니다. 오늘날 이 단체는 약 40개국에서 활동 중입니다.
반항아 같은 이미지로 각인된 아베 피에르는 막중한 도덕적 권위와 큰 인기를 누렸습니다. 질병과 고령으로 1990년대 초 은퇴해야 했지만, 그는 가난한 이웃, 노숙자(SDF), 불법 체류 이민자를 위한 모든 투쟁에 계속 참여했으며 각종 자선 활동을 후원했습니다. 특히 TV를 통해 강력한 존재감을 드러냈으며, 신과 인간(1993, 베르나르 쿠슈네르와의 인터뷰), 유언(1995), 믿는 사람의 기억(1997), 맙소사… 왜?(2005) 등 여러 저서를 출간하며 미디어 무대에 계속 등장했습니다.
2007년 1월 22일 그의 서거는 프랑스 전역의 만장일치 추모로 이어졌습니다.
더 읽을거리
- 피에르 뤼넬(Pierre Lunel), 『하느님의 반항아 아베 피에르』, 군도(Gondo), 2012.
- 악셀 브로디에돌리노(Axelle Brodiez-Dolino), 『엠마우스와 아베 피에르』, Sc Po 출판사, 200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