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62년 3월 18일, 프랑스의 국경 도시 에비앙에서 알제리 전쟁의 막을 내리는 역사적인 협정이 체결되었습니다. 당시 프랑스가 공식적으로 '전쟁'이라 부르기를 꺼렸던 이 분쟁을 종결시킨 에비앙 협정에서, 알제리 임시정부(GPRA) 대표단과 프랑스 정부는 즉각적인 휴전(3월 19일 발효)에 합의했습니다. 협정에는 정치·군사적 조항도 포함되어 알제리의 자기결정권을 인정하는 길을 열었습니다. 그러나 여기서 던져볼 질문이 있습니다. 널리 알려지지 못한 채 수많은 논란에 휩싸인 이 협정은 과연 제대로 이행되었을까요?
협상의 배경
1961년부터 알제리 전쟁은 규모와 양상 면에서 더욱 격화되었습니다. 알제리 자기결정 국민투표 이후 테러 조직 OAS(비밀군사조직)가 등장하면서 상황은 악화일로를 걸었습니다. 폭력은 절정에 달했고, 1961년 4월 주오, 살랑, 젤레르, 샬 등 장군들이 일으킨 쿠데타 이후 프랑스는 내전 직전까지 몰렸습니다. 한편 GPRA는 프랑스 정부와 협상을 진행하는 동안, FLN(알제리 민족해방전선)은 프랑스 본토에서 시위와 공격을 조직했습니다. 이 과정에서 비극도 벌어졌습니다. 1961년 10월 17일, 파리에서 열린 알제리인 시위가 모리스 파폰 경찰총감의 잔혹한 진압으로 유혈사태로 번진 것이 대표적입니다. OAS 역시 공격을 계속해서 늘려갔습니다.
OAS의 공격 건수는 1962년 초 급증했고, 드골 대통령은 사태의 심각성을 축소하는 한편 OAS 소속 인물들에 대한 처벌을 명령했습니다. 1962년 2월 8일에는 '파시즘의 위협'에 맞서 노동조합과 좌파 정당이 벌인 시위가 경찰에 의해 강경 진압되어, 샤론느 지하철역에서 8명이 목숨을 잃는 참사가 일어났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새로운 에비앙 회담은 1962년 3월 7일 개막되었고, 마침내 같은 달 18일 에비앙 협정으로 결실을 맺었습니다.
에비앙 협정의 내용 (1962년 3월 18일)
2년에 걸친 어려운 교섭 끝에 탄생한 에비앙 협정은 총 93페이지, 111개 조항으로 구성되어 있으며, 군사 및 정치 전반의 사안을 다룹니다. 협정의 실무 협의는 사전 준비 단계로서 1962년 2월(샤론느 참사 이후) 레루스에서 진행되었습니다. 프랑스 측에서는 루이 조스(알제리 담당 장관), 로베르 뷔롱, 장 드 브로글리가, 알제리 측에서는 크림 벨카셈(GPRA 부의장), 락다르 벤 토발, 무함마드 야지드, 사아드 달랍이 참석했습니다.
협정의 첫 번째 부분은 알제리 자기결정의 조건과 프랑스와의 관계(경제 지원, 문화 협력 등)를 규정합니다. 두 번째 부분은 과거의 갈등 해소를 다루는데, 특히 알제리에 거주하던 프랑스인(피에 누아르) 대다수가 독립 이후에도 현지에 계속 거주할 수 있도록 했습니다. 사하라 문제도 논의되어, 프랑스는 해당 지역에서의 경제적 이익과 함께 5년간 핵실험을 실시할 권리를 유지했습니다. 군사 분야에서도 프랑스는 메르스엘케비르 해군 기지를 15년간 추가로 통제하기로 했습니다. 마지막 부분에서는 다음 날인 1962년 3월 19일 정오를 기점으로 하는 휴전을 확정하고, 알제리 내 프랑스인의 재산권을 보장했습니다.
에비앙 협정의 이행
예상대로 휴전은 1962년 3월 19일에 선포되었습니다. 프랑스 정부는 "알제리에 평화가 찾아왔다"고 알리는 포스터를 알제리 도시와 마을의 벽에 붙여 휴전을 선포했습니다. 그러나 협정은 곧바로 도전에 직면합니다. 먼저 OAS는 3월 21일부터 전단을 통해 알제리 주둔 프랑스군을 '점령군'으로 규정하며 협정을 비난했습니다. 이후 몇 주 동안 폭력은 걷잡을 수 없이 확산되었고, 알제리의 프랑스인들은 초토화 정책을 펼치겠다던 OAS의 방침과 반대로 대거 본국으로 떠나기 시작했습니다.
에비앙 협정은 알제리 측에서도 논란이 되었습니다. GPRA의 여러 파벌과 대립하던 전쟁의 승자들이 1962년 여름, 7월 3일 독립한 알제리에서 권력을 장악하면서 그들은 협정을 신식민주의적 산물로 간주하고 반대 입장을 내비궜습니다. 결국 협정 조항 대부분은 '수정'되었고, 알제리는 소련 블록 등 외국의 원조로 눈을 돌리며 아랍화 정책을 추진했습니다.
결국 에비앙 협정의 결과는 만만치 않은 폭력적 상황과 새로운 알제리 정권의 정책 탓에 호평과 비판이 엇갉렸습니다. 그럼에도 이 협정은 전쟁을 종결시키고 알제리 독립의 길을 열었으며, 프랑스와의 문화적 유대를 완전히 끊지 않는 토대를 마련했다는 점에서 의미를 남겼습니다.
참고 문헌
- S. 테노(S. Thénault), 『알제리: '사건'에서 전쟁까지 — 알제리 독립전쟁에 대한 오해 바로잡기』, Le Cavalier Bleu, 2012.
- B. 스토라(B. Stora), 『알제리 전쟁의 역사 (1954-1962)』, La Découverte, 2004.
- G. 페르빌(G. Pervillé), 『알제리 전쟁 지도』, Autrement, 200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