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럽의 역사

사보이와 니스의 프랑스 편입(1860년): 토리노 조약부터 주민투표까지

사보이와 니스의 프랑스 편입(1860년): 토리노 조약부터 주민투표까지사보이와 니스의 프랑스 편입은 프랑스 혁명기에 시작되어 제2제정 시대에 실현된 긴 과정의 결과였습니다. 오스트리아 점령에 맞선 프랑스의 군사적 지원에 대한 보답으로, 피에몬테-사르데냐 왕국은 1860년 3월 24일 체결된 토리노 조약을 통해 사보이와 니스를 나폴레옹 3세에게 할양하기로 합의했습니다. 이 편입은 니스 주민과 사부아인들을 대상으로 실시된 주민투표를 거쳐 최종 확정되었습니다. 프랑수아 1세, 루이 14세, 혁명기와 제정기를 거치며 점령되거나 일시 병합되었던 사보이 공국은 니스 백국과 마찬가지로 마침내 프랑스에 영구히 귀속되었습니다.

19세기의 니스와 사보이

1792년부터 1814년까지 니스 백국은 프랑스의 '알프마리팀' 현(데파르트망)이었고, 사보이 공국은 '몽블랑 현'이었습니다. 1814년 4월 23일 니스 백국은 빅토르 에마뉘엘 1세의 피에몬테-사르데냐 왕국으로 반환되었으며, 사보이가 다시 자치권을 회복한 것은 1815년 파리 조약 이후였습니다.

1858년 플롱비에르 회담에서 나폴레옹 3세의 프랑스는 비밀조약을 체결했습니다. 사르데냐 왕국과 오스트리아 제국 간에 분쟁이 발생할 경우, 프랑스는 피에몬테-사르데냐 왕국에 군사적 지원을 약속한 것입니다. 그러나 이 조약은 일방적인 것이 아니었습니다. 지원의 대가로 프랑스 제국은 사보이 공국과 니스 백국을 받기로 했습니다. 이 비밀 동맹 조약은 1859년 1월 26일 토리노에서 비준되었습니다.

따라서 이 영토 이양은 무거운 정치적 상황 속에서 점진적으로 진행되었습니다. 프랑스와 이탈리아 전역에서, 특히 니스 시 자체에서 격렬한 논쟁이 벌어졌습니다. 여기서 한 가지 질문이 제기됩니다. 사보이 공국과 니스 백국의 주권 변경을 둘러싼 논쟁은 어떻게 전개되고 결론지어졌을까요?

주권 변경의 기원

사보이 공국과 니스 백국의 주권 변경 과정은 수년에 걸쳐 진행되었으며, 그 뿌리는 1859년 이탈리아 전쟁의 전개에 있었습니다. 1859년 5월 3일, 사르데냐 측의 도발 이후 오스트리아 제국이 피에몬테-사르데냐 왕국에 선전포고하자, 방어 동맹에 구속되어 있고 내부적 정치적 반대가 없었던 프랑스는 조약 이행을 결정했습니다. 오스트리아군은 초기에 피에몬테를 침공하는 데 성공했지만, 프랑스군의 도착으로 전세가 역전되었습니다. 특히 1859년 6월 4일 마젠타 전투와 6월 24일 솔페리노 전투에서의 프랑스군의 결정적 승리가 큰 역할을 했습니다. 같은 해 7월 11일 빌라프란카에서 휴전이 체결되었습니다.

사보이와 니스의 프랑스 편입(1860년): 토리노 조약부터 주민투표까지이어진 취리히 조약(1859년 11월 10~11일)에 따라 오스트리아는 롬바르디아를 프랑스에 할양했고, 프랑스는 이를 다시 피에몬테-사르데냐 왕국에 넘겼습니다. 프랑스는 주민들의 의사에 좌우된다는 조건으로 니스와 사보이를 받게 되었습니다. 이탈리아 전쟁이 종결되면서 니스 주민과 사부아인들의 운명은 이미 정해진 듯 보였습니다. 니스도 사보이처럼 프랑스에 귀속될 운명이었던 것입니다. 그럼에도 다른 시나리오들도 검토되었습니다. 사보이의 사르데냐 잔류, 심지어 영국이 지지한 헬베티아 연방(스위스) 편입안 등이 그것입니다. 이러한 상반된 입장들 앞에서 외교가 개입되었고, 정치적 논쟁은 그 중요성을 온전히 드러냈습니다.

편입을 둘러싼 정치적 논쟁

니스 주민과 사부아인들은 자신들을 외면하는 피에몬테-사르데냐 왕국에 점차 염증을 느꼈습니다. 한편 피에몬테인들은 리소르지멘토, 즉 이탈리아 통일 달성에만 몰두하고 있었습니다. 1859년 당시 이 지역 주민 대다수는 지쳐 있었습니다. 모두가 나폴레옹 3세의 프랑스 제국 편입에 찬성한 것은 아니었지만, 동시에 더 이상 피에몬테-사르데냐 왕국과의 연계도 원하지 않았습니다. 이 논쟁은 곧 정치적·항의적 성격을 띠게 되었는데, 특히 니스에서는 '신문 전쟁'이라 불릴 정도로 치열했습니다. 당시 일간신문들은 중요한 여론의 창구였으며, 그중 『알프마리팀의 미래』와 편입 찬성 성향의 『니자르도』가 대표적이었습니다.

사보이와 니스의 프랑스 편입(1860년): 토리노 조약부터 주민투표까지그러나 계몽된 여론의 다수는 프랑스를 향하지 않았습니다. 예컨대 니스 백국 영토 안에 작은 독립 국가를 세우는 방안이 거론되었습니다. 그 중립성은 해상 무역뿐 아니라 관광 산업에서도 유리할 것으로 기대되었습니다. 당시 각국의 '겨울 손님'들이 니스를 찾아 머무는 일이 늘어나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프랑스 내부에서는 사보이 할양이 군사적·재정적 희생에 대한 보상으로서 가능한 해법으로 여겨졌습니다. 남부 사보이 주민들은 군사적 보호와 상업적 이점을 가져다줄 편입에 매우 호의적이었습니다. 한편 1859년 오스트리아와 싸우러 이동하던 프랑스군이 니스를 통과했을 때는 주민들에게 큰 감동을 주었고, 프랑스군은 도시에서 뜨거운 환영과 갈채를 받았습니다.

사보이와 니스의 프랑스 편입

1859년 '이탈리아 원정'은 '니스 문제'에 대한 논쟁을 여는 동시에, 편입에 대한 사부아인과 니스 주민들의 여론을 처음으로 조망할 기회를 제공했습니다. 지식인들은 '반대', 일반 주민은 대체로 '찬성'이었습니다. 바로 이러한 맥락에서 프랑스 주권으로의 점진적 이행이 이루어졌습니다. 나폴레옹 3세는 취리히 조약 체결 다음 해인 1860년에 주민 여론을 묻는 주민투표를 실시하기로 결정했는데, 이는 그가 즐겨 활용하던 방식이었습니다. 선거 준비는 매우 신속하게 진행되어, 1860년 1월 말 실행이 결정된 후 불과 두 달 반 만에 치러졌습니다.

사보이와 니스의 프랑스 편입(1860년): 토리노 조약부터 주민투표까지4월 1일 빅토르 에마뉘엘 2세는 니스 주민들에게 이렇게 연설했습니다. "만약 여러분이 다른 운명을 따라야 한다면, 프랑스인들이 우리가 오래도록 존중하고 높이 평가해 온 형제로서 여러분을 맞이하도록 하십시오. 프랑스에서의 여러분의 결합이 두 나라를 잇는 또 하나의 연결고리가 되기를." Alea jacta est(주사위는 던져졌다). 게임은 주민투표 이전에 이미 판이 난 듯 보였습니다. 투표는 1860년 4월 15일과 16일 니스에서, 4월 22일과 23일 사보이에서 실시되었습니다. 놀랍지 않게도 "사보이/니스는 프랑스와 재통합되기를 원하는가?"라는 질문에 '찬성'이 압도적 다수로 승리했습니다. 니스 백국에서는 등록 유권자의 85% 이상이, 사보이에서는 무려 96%가 찬성했습니다!

격렬한 논쟁과 충돌에도 불구하고, 이 지역들의 프랑스 편입은 외교적 수단과 주민투표라는 민중적 수단을 통해 확정되었습니다. 1860년 5월 29일 피에몬테-사르데냐 왕국 의회 의원들의 비준을 거쳤고, 1860년 6월 12일에는 나폴레옹 3세가 서명한 제정 칙령이 반포되었습니다. 영토 인도식은 1860년 6월 14일 성대하게 거행되었습니다. 이후 세 개의 새로운 현이 설치되었습니다. 옛 사보이 공국에는 샹베리를 주도로 하는 사부아 현과 앙시를 중심으로 하는 오트사부아 현이, 옛 니스 백국에는 바르 현에서 떼어낸 그라스 구를 추가한 알프마리팀 현이 만들어졌습니다. 1860년 6월 14일, 니스와 사보이는 프랑스가 되었고, 아니 정확히 말하면 '다시' 프랑스가 된 것입니다.

1860년 프랑스에 편입된 사보이 공국과 니스 백국의 주권 변경을 둘러싼 논쟁은 양 지역에서 모두 격렬했습니다. 그 열기는 지금까지도 이어져, 사부아 동맹(Ligue Savoisienne)과 같은 일부 독립 운동 단체들은 토리노 조약, 나아가 영토 병합의 정당성 자체에 의문을 제기하고 있습니다. Qui satis expectat, prospera cuncta videt — 기다림은 모든 번영을 보여준다니, 시간이 답을 줄 것입니다!

참고문헌

- P. 기쇼네(P. Guichonnet), 『사보이의 프랑스 편입사(Histoire de l'annexion de la Savoie à la France)』, 실로암(Siloam), 2000.

- P. 기쇼네, C. 소렐(C. Sorrel), 『사보이와 유럽, 1860-2010: 편입의 역사 사전(Savoie et Europe, 1860-2010. Dictionnaire historique de l'annexion)』, 실로에 분수(La Fontaine de Siloé), '레 사부아지엔' 시리즈, 몽멜리앙, 2009.

- R. 쇼르(R. Schor), 『니스 백국 역사·전기 사전(Dictionnaire historique et biographique du comté de Nice)』, 세르(Serre), 니스, 200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