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럽의 역사

민스크 수학여행의 비극: 1986년 베를린 아에로플로트 추락 사고, 72명 사망

1986년 12월 12일 금요일, 소련 국영항공 아에로플로트(Aeroflot) 여객기가 베를린 쇠네펠트 공항 인근 숲에 추락했습니다. 탑승자 82명 가운데 72명이 목숨을 잃었으며, 희생자에는 민스크 수학여행을 마치고 돌아오던 슈베린의 고등학생 20명도 포함되어 있었습니다. 이 사고는 독일 항공 역사상 가장 참혹한 참사 중 하나로 기록되고 있습니다.

그날 베를린 남동쪽 상공에는 짙은 구름이 낮게 깔리고 안개가 자욱했습니다. 오후 5시경, 쇠네펠트 공항 근처 본스도르프(Bohnsdorf) 인근 작은 숲의 고요는 천둥 같은 폭발음으로 깨졌습니다. 투폴레프 134(Tupolev 134) 여객기가 나무 꼭대기에 처음 닿았고, 충돌과 동시에 화염에 휩싸였습니다.

단 7명의 학생만이 생존

희생자 중에는 슈베린 에른스트 슈넬러 고등학교(현 닐스 홀거손 학교) 한 학급의 학생들이 있었습니다. 그들은 벨로루시의 수도 민스크로 떠난 마지막 수학여행을 마치고 돌아오는 길이었습니다. 생존한 학생은 단 7명에 불과했으며, 학생 20명과 교사 1명, 감독관 2명이 사망했습니다.

추락 원인을 둘러싼 미스터리

사고 원인은 조종사 과실로 추정됩니다. 당시 러시아인 조종사들이 영어 관제 지시를 이해하지 못해 잘못된 활주로로 접근했다는 것이 주요 설입니다. 다만 기술적 결함으로 충돌이 발생했다는 소문도 끊이지 않았습니다. 대참사 이후 동독 당국은 '형제국' 소련을 배려해 사고 원인에 대해 철저히 침묵했고, 정부 기관이 유족들을 부당하게 대우하면서 분노는 더욱 커졌습니다. 중앙 장례식에는 엄선된 인사만이 참석할 수 있었고, 생존 학생들의 부모는 항의 끝에야 참석을 허락받았습니다.

"아들은 돌아오지 않았다"

희생자 중에는 16세의 토르스텐 카디오호(Torsten Kadzioch)도 있었습니다. 사고 30주기를 맞아 슈베린 출신 아버지 베른하르트 카디오호(Bernhard Kadzioch)는 NDR과의 인터뷰에서 그날을 지금도 선명하게 기억하고 있다고 밝혔습니다. 그와 아내는 12일 금요일, 아들을 맞이하기 위해 기차역으로 향했습니다. 비행기는 몇 시간 전에 이미 베를린에 도착했어야 했지만, 휴대전화도 인터넷도 없던 시절에는 소식이 몇 분 만에 전해지지 않았습니다.

"우리는 기차역에 가서 아들을 데리려 했습니다. 역에 서 있는데 선생님이 이미 계셨습니다. 우리가 완전히 무기력하게 서서 기다리고 있다는 걸 알아차리더군요. 그런데 토르스텐이 오지 않고, 아이들 중 누구도 돌아오지 않자 선생님이 다가와 말씀하셨습니다. '비행기가 추락했대요. 아이들은 아마 오지 못할 거예요.'" 베른하르트 카디오호는 문장의 마지막을 매우 부드럽게, 거의 속삭이듯 전했습니다.

사고 현장에 세워진 추모비

2012년부터 슈베린 삼림묘지(Schwerin Forest Cemetery)에는 1986년 12월 사고로 세상을 떠난 아이들과 동행자들을 추모하는 기념비가 세워져 있습니다. 중앙 애도 장소는 본스도르프 인근 숲에 마련되어 있습니다. 참사 이후 몇 년이 흐르면서 자연은 점차 사고 현장을 되찾았고, 기념패가 세워지기 전까지는 소나무들의 다양한 나이만이 그곳에서 일어난 비극의 희미한 단서였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