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버트 루이스 스티븐슨의 『보물섬』이나 에드거 앨런 포의 『황금벌레』처럼 해적이 숨겨둔 보물을 소재로 한 이야기는 수없이 많습니다. 그 시초는 바로 '캡틴 키드의 보물 전설'입니다.
시대의 파도에 휘둘린 사나이, 캡틴 키드

윌리엄 키드(William Kidd), 흔히 '캡틴 키드'로 불리는 그는 1640년대 스코틀랜드의 항구 도시에서 태어났습니다.
우리는 흔히 영국을 하나의 나라로 생각하지만, 실은 여러 지역이 하나로 묶인 연합 왕국이며, 특히 잉글랜드와 스코틀랜드는 오랫동안 갈등을 빚어왔습니다.
종교 문제가 특히 컸습니다. 성공회를 중심으로 한 개신교 세력과 가톨릭 세력의 대립이 극심했고, 개신교 목사의 아들로 태어난 키드는 찰스 2세가 추진한 개신교 탄압을 계기로 북미로 이주한 것으로 추정됩니다.
키드가 어린 시절이던 1651년, 잉글랜드는 '항해법(Navigation Act)'을 제정해 북미에서 비(非)잉글랜드 선박을 배척하는 정책을 폈습니다. 이로 인해 밀수가 성행했고, 키드는 이 물결을 타고 재산을 불리는 데 성공합니다.
1670년대에는 스페인과 마드리드 조약을 맺으면서 사략선 제도가 일시 폐지되지만, 잉글랜드의 적이 스페인에서 프랑스 부르봉 왕조로 바뀌자 프랑스를 상대로 한 사략선 제도가 부활합니다.
사략선(privateer) 제도란 국가의 보호 아래 민간 선박에게 적국 선박의 약탈을 허가하는 제도입니다. 키드는 축적한 재산으로 사략 함대를 꾸려 1690년부터 프랑스 선박 약탈에 나섰고, 프랑스 선박 두 척을 나포하는 활약을 보입니다. 그러나 항해사 로버트 클리퍼드가 키드에게 반란을 일으켜 배를 강탈하고 도망치는 사건이 벌어집니다.
키드는 함대를 다시 정비해 프랑스 선박 약탈을 재개했고, 식민지 의회의 포상을 받을 만큼 활약합니다.
이후 키드는 영국 정부의 요청으로 인도양으로 향합니다.
당시 영국은 인도 무굴 제국과 관계를 깊게 하고 있었지만, 동인도회사 소속 선박은 네덜란드와 프랑스 선박의 공격을 자주 받고 있었습니다. 유럽에서는 루이 14세가 날뛰는 통이라 영국 정부가 함대를 파견할 여유가 없었고, 그 역할이 키드 같은 사략선에게 돌아간 것입니다.
키드는 잠시 잉글랜드로 돌아갔다가, 1696년 뎁트퍼드(Depford) 부두에서 '어드벤처 호'를 타고 출항합니다. 그러나 출항 직후 잉글랜드 군함에 저지당해 승무원의 절반을 해군에 징발당하는 등 순탄하지 않은 출발이었습니다.
키드는 결국 선원을 보충하고 프랑스 선박을 약탈하기 위해 대서양으로 항해를 시작하지만, 이때는 프랑스 선박을 전혀 만나지 못했고, 모집된 선원들의 질도 좋지 않았습니다. 게다가 고용 조건은 약탈량에 따라 급여를 지급하는 방식이었습니다.
사략선에서 해적으로

키드가 이끄는 어드벤처 호는 뉴욕에서 희망봉을 거쳐 인도양에 진입했지만, 도중에 프랑스 선박을 만나지 못했고 이 상태가 무려 10개월이나 계속됩니다.
프랑스 선박을 못 만난다는 것은 선원들에게 급여를 줄 수 없다는 뜻이었고, 선원들의 반란이 일말에 닥친 상황이라 할 수 있습니다.
여기서 키드는 큰 결단을 내립니다. 약탈 대상을 허가받은 프랑스 선박에서 아랍 상선으로 바꾼 것입니다. 당시 인도양 무역의 중심은 아랍 상인들이었고, 키드는 거기를 노린 것이죠. 게다가 이교도에게 약탈당하면 눈감아줄 것이라는 계산도 있었을 겁니다.
그러나 이것이 키드의 운명을 바꾸고 맙니다. 당시 아랍 상인들은 영국 선박을 고용해 호위를 맡기고 있었던 것입니다.
키드는 발견한 아랍 선박을 공격하지만, 호위하던 영국 선박의 반격에 물러날 수밖에 없었습니다.
아마도 이 사건을 계기로 '사략선 선장 윌리엄 키드'는 '해적 선장 키드'로 돌변하게 됩니다.
키드의 특기는 기만전이었습니다. 배에 프랑스 국기를 올려 프랑스 선박에 접근한 뒤, 가까워지면 정체를 드러내고 약탈하는 방식이었는데, 이제 약탈 대상은 프랑스 선박에만 국한되지 않았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키드는 아르메니아 선박을 공격해 약탈에 성공합니다. 그러나 이 배의 선장이 영국인이었다는 사실이 키드의 몰락을 결정짓습니다.
영국의 윌리엄 3세는 키드에 대한 체포령을 내리고, 키드를 토벌할 함대를 인도양에 파견합니다.
키드 본인은 알지 못했겠지만, 이미 영국과 프랑스 사이에는 평화가 체결되어 있었고, 애초에 키드의 사략 면허는 기간이 만료되어 있었습니다.
사략선 이야기에서는 이런 일이 흔했습니다. 통신 장비가 없던 시대, 이런 정보 착오는 다반사였으니까요.
참고로 이 무렵 키드는 자신의 배를 강탈했던 로버트 클리퍼드와 다시 만난 것으로 보이며, 로버트 역시 해적으로 전락해 있었다고 합니다.
키드의 체포와 최후
키드 자신은 죄가 아니라고 생각했던 혐의 항목이 있었습니다.
키드는 북미 보스턴으로 향하고, 오래 전부터 알고 지내던 벨로몬트 총독(Count Belomont)을 만나는 자리에서 체포당합니다.
이후 그는 잉글랜드로 송환되어 재판을 받았고, 1701년 유죄 판결을 받아 사형을 선고받습니다.
그의 시신은 방부 처리되어 수개월 동안 대중에게 전시되었습니다.
흥미로운 점은, 키드가 재판 과정에서 자신이 보물을 숨겨두었다고 말했다는 것입니다. 실제로 훗날 조사단이 그곳으로 향했을 때 보물이 숨겨져 있는 것이 확인됩니다.
그러나 그 양이 진술보다 적었기 때문에 '캡틴 키드의 또 다른 보물이 분명 존재한다'는 소문이 퍼졌고, 이것이 스티븐슨과 포의 소설에 반영된 것입니다.
캡틴 윌리엄 키드에 대한 평가
키드는 시대의 파도에 휘둘린 인물이라 할 수 있습니다.
정치적 변화로 종교적 박해를 받았고, 사략선 선장이 되었지만 큰 성공을 거두지 못했으며, 법이 바뀐 사실조차 통보받지 못한 채 유죄 판결을 받고 사형당했습니다.
해적은 미스터리한 존재입니다. 모건이나 드레이크처럼 국가의 비호를 받으면 영웅이 되지만, 키드처럼 비호가 거두어지면 사형수가 됩니다.
'정의'란 서로 다른 입장에 따라 달라지는 평가라는 사실을 새삼 실감하게 됩니다.
스티븐슨과 포 덕분에 키드의 이름은 매우 유명해졌고, '해적이 남긴 숨겨진 보물'이라는 설정은 각종 게임, 만화, 영화에 지대한 영향을 끼쳤습니다.
그중에서도 만화 『원피스』에 끼친 영향은 막대합니다. 원피스란 해적왕 로저가 남긴 보물의 통칭인데, 그 발상이 캡틴 키드의 보물 전설에서 왔음은 두말할 필요도 없습니다.
모건이나 드레이크에 비하면 세계사 자체에 끼친 영향은 작지만, 후세에 남긴 영향만큼은 지대했던 인물이라 할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