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87년 5월 28일, 모스크바 시민들은 자신의 눈을 의심했습니다. 독일산 스포츠 비행기 한 대가 붉은 광장 상공을 선회하고 있었던 것입니다. 베델(Wedel) 출신 18세 청년 마티아스 러스트(Mathias Rust)는 아무런 저항도 받지 않은 채 공산주의의 심장부에 침투하는 데 성공했습니다. 붉은 광장 인근 다리에 착륙한 지 한 시간 후에야 모스크바 경찰서장이 그의 앞에 나타났습니다.
러스트는 그 전설적인 착륙 이후의 장면을 생생하게 기억합니다. "경찰서장이 신분증을 요구했고, 여권을 살펴보더니 '비자가 없잖아요! 왜 신청하지 않았나요?'라고 물었습니다. 제가 미리 '비행기를 타고 모스크바로 오겠다'고 말했다면 그는 어떤 반응을 보였을까요? 저는 평화를 촉진하고 평화의 새로운 장을 열고 싶었을 뿐입니다."
평화 사절이 되겠다는 청년의 계획
1986년 레이캬비크에서 로널드 레이건과 미하일 고르바초프 간의 군축 협상이 결렬되자, 러스트는 하나의 확신에 차 있습니다. 초강대국에는 도움이 필요하고, 바로 자신이 그 도움을 줄 수 있다는 것입니다. 은하계 SF 영웅 '페리 로단'에게서 영감을 받은 이 십대는 평화 계획을 세웠고, 크렘린의 수장인 고르바초프와 직접 문제를 논의하고자 했습니다.
1987년 5월, 러스트는 '미션 레드 스퀘어'를 개시합니다. 그는 세스나의 대시보드에 애완견 코카스파니엘 '플로리안'의 사진을 붙였습니다. 공식적으로는 2주간의 스칸디나비아 여행을 이유로 '함부르크 에어로 클럽'에 비행기 등록을 취소했다고 알렸습니다. 레이캬비크를 방문한 뒤 헬싱키에 들러 모스크바로 향했습니다. 소련 국경에 접어들기 직전에는 오토바이 헬멧을 썼습니다. 이 무모한 계획은 사실상 자살 임무나 다름없었지만, 러스트는 "처음부터 철저히 계획을 세웠다"고 말합니다.
레이더에서 사라진 세스나
소련 방공군은 세스나를 즉시 포착했습니다. 요격기가 급히 이륙했지만, 상부의 명령이 오지 않자 되돌아갔습니다. 전직 텔레비전 저널리스트 알렉산드르 갈킨(Alexander Galkin)은 이를 우연의 연속으로 설명합니다. "세스나가 처음에는 레이더에 잡혔다가 다시 놓친 것은 그날 벌어진 일련의 불행한 우연 때문이었습니다. 헬싱키-모스크바 항공로에서 여객기가 추락했고, 러스트가 그쪽으로 이륙하자 구조대원들이 사고 현장으로 향했으며, 수많은 헬리콥터가 하늘을 오갔습니다. 러스트는 레이더 화면에서 이 지점들 사이로 사라져 버렸습니다."
"붉은 광장이 대체 어디 있죠?"
러스트는 이 모든 상황을 인지하지 못한 채 자신의 임무와 목표에만 집중했습니다. "목표에 가까워지고 있다는 기분이 좋았습니다. 이제 장소를 찾는 일만 남았죠. 사실 그게 더 쉬울 거라 생각했는데, 지도와 사진을 챙겨 갔음에도 이 거대한 도시를 보고 '맙소사, 붉은 광장이 대체 어디 있지?'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실제로 찾는 데 30분 넘게 걸렸습니다."
비행기 사건이 국정 사건으로
고르바초프는 개혁 정책을 추진하는 과정에서 방공망의 치욕적인 실패를 교묘히 활용합니다. 수십 년간 군을 장악해 온 강경파의 권력을 무너뜨릴 명분이 생긴 것입니다. 아이러니하게도 그 처벌 사유는 '방공망이 러스트에게 지나치게 가혹하게 대응하지 않았다'는 것이었습니다. 단순한 비행기 사건은 이제 국정 문제로 비화됩니다. 1987년 당시 모스크바 방어선 3개 중 두 번째 방어선에 주둔했던 작가 블라디미르 카미너(Wladimir Kaminer)는 그 결과를 이렇게 회고합니다. "우리 방어 부대 전체가 사실상 실패의 고리로 분류되었습니다. 모두 떠나야 했지만, 필요한 훈련과 기술 장비에 대한 지식을 갖춘 사람이 우리뿐이라 우즈베키스탄이나 타지키스탄 동료들로 교체하기 어려웠습니다. 그러나 러스트의 착륙 이후 분위기는 훨씬 엄격해졌고, 주 벙커에 있던 우리 지휘 센터 책임자는 자살하기에 이르렀습니다."
국방부 장관과 그 보좌관들, 그리고 고위 간부 약 2,000명이 한 10대 청년의 무모한 비행 때문에 직위를 잃었습니다.
"다시는 그러지 않겠습니다"
이 '대숙청'의 방아쇠를 당긴 러스트는 이후 모스크바의 '정치범'과 서방 스파이들이 수감되던 최고 보안 시설인 레포르토보 감옥에 수감됩니다. 대법원은 그에게 징역 4년을 선고했지만, 그는 432일 만에 석방되었습니다. 기대했던 고르바초프와의 만남은 끝내 실현되지 않았고, 그는 감옥에서 곧바로 기자들이 기다리는 비행기에 올랐습니다.
소심하고 수줍음 많은 러스트는 위대한 영웅의 모습과는 거리가 멉니다. 오늘날 그는 자신의 행동을 다른 시각으로 바라봅니다. 지금이라도 다시 그런 용기를 낼 수 있을까요? "이런 일이 어떻게 전개될지 알았더라면 감히 다시는 시도하지 않았을 겁니다. 결과도, 이야기의 전개도 모르는 상태여야 그렇게 할 수 있는 것이죠. 하지만 오늘날의 관점에서 본다면 그러지 않았을 것입니다." 그는 2012년 인터뷰에서 이렇게 털어놓았습니다.
그럼에도 1987년의 그는 페레스트로이카라는 거대한 메커니즘의 중요한 톱니바퀴였습니다. 그의 비행이 없었다면 '철의 장막'이 무너지는 데 더 오랜 시간이 걸렸을지도 모릅니다. 그리고 그 전설적인 '세스나 172'는 지금 베를린 기술박물관의 대표적인 전시물로 손꼽히고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