함부르크를 잘 아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알고 있습니다. 알스터 호수와 엘베 강을 낀 이 북독일 도시에서 흐린 가을을 보내려면 '북독일식 평온함'이 필수라는 사실을 말입니다. 그런데 1987년 11월 6일, 날씨보다 훨씬 더 우울한 나라에서 온 손님들이 이 도시의 회색빛 일상에 특별한 반짝임을 더해 주었습니다. 바로 영국의 찰스 왕세자와 당시 그의 아내였던 다이애나 왕세자비입니다. 특별 전세기 엔진의 굉음이 정오 직전 함부르크 푸흘스뷔텔(Fuhlsbüttel) 공항 상공에 울려 퍼지며 왕실 전용기의 도착을 알렸습니다.
춥고 습하며 우중충한 하늘 아래 깔린 레드카펫은 잿빛 배경 속에서 선명한 색채를 자랑했습니다. 자유 한자 도시 함부르크의 최고위 인사들, 특히 클라우스 폰 도나니(Klaus von Dohnanyi) 시장과 부인 크리스타가 환영 위원회를 이루어 왕실 내빈을 맞이했습니다. 최고의 격식을 갖춘 차림으로 다이애나 왕세자비에게 경의를 표하는 이들은, 함부르크 역사상 가장 격식 높은 의전 행렬의 일원이었습니다. 왕세자 부부는 리처드 폰 바이츠제커(Richard von Weizsäcker) 연방대통령의 초청으로 1987년 11월 며칠간 독일을 방문하게 된 것입니다.
상원 영빈관, 피른타이히의 백색 저택
공항에서의 환영 인사를 마치자, 국빈 방문답게 촘촘하게 짜인 공식 일정이 이어졌습니다. 왕족 일행은 먼저 광택이 반짝이는 검은색 메르세데스 리무진에 나눠 타고 숙소로 향했습니다. 이동 중 부부는 잠시 갈라졌는데, 다이애나는 함부르크의 영부인과 같은 차에, 클라우스 폰 도나니 시장은 손님 찰스와 동행했습니다. 경찰 오토바이 호위에 둘러싸인 약 20대의 차량 행렬은 상원 영빈관인 피른타이히(Feenteich)에 자리한 하얀 별장으로 향했습니다.
알스터하우스에서 열린 '영국 주간'
이어 일행은 함부르크에서 가장 유명한 백화점 알스터하우스(Alsterhaus)로 이동했습니다. 찰스와 다이애나는 소비의 성지라 불리는 이곳에서 '영국 주간(British Week)' 개막을 알리고, 영국산 제품 홍보에 한껏 힘을 보탰습니다. 수천 명의 시민이 융퍼른슈티크(Jungfernstieg)로 몰려들어 왕족의 모습을 구경하고자 했습니다. 다만 이 특별한 날을 함께 기념할 수 있었던 것은 영국 국기 문양 스카프를 두른 알스터하우스 판매원들뿐, 그야말로 독점적인 박스석이었습니다.
찰스 왕세자에게는 함부르크의 전경이 담긴 한자 도시 폴더가, 그리고 집에 계신 어린 왕자들을 위해 다이애나에게는 두 개의 메키(Mecki) 인형이 선물로 전해졌습니다. 초콜릿을 맛보던 찰스 왕세자의 다정한 제스처는 당시 결혼 위기를 수군거리던 소문을 일축하는 듯했습니다. "디를 위하여(Für Di)"라는 말과 함께 공주에게 초콜릿 한 조각을 건넸다는 이야기가 전해집니다. 과연 새로운 행운의 시작, 'Made in Germany'였을까요? 영국 언론 대표들을 포함한 동행 기자단은 국빈 방문 내내 이러한 소문을 좇으며 부부를 예의주시하고 있었습니다.
바지선 위에서 벌어진 소동
부부의 일정은 계속되었습니다. 1987년 영국 국교회 설립 375주년을 기념하기 위해 촤우스하우스마르크트(Zeughausmarkt)에 위치한 성공회 교회를 찾았습니다. 그리고 한자 도시 방문이라면 항구 투어는 빼놓을 수 없겠지요. 왕족을 관광에 초대한다면 엘베 강을 누비는 HADAG 증기선이 아니라, 자랑스럽고 호화로운 청백색의 원로원 바지선 '함부르크호'가 적임이었습니다.
그러나 항슈트라세(Hafenstraße)의 좌파 활동가들은 항구에서 열린 왕실 미니 크루즈를 정치적 슬로건을 외치는 무대로 삼았습니다. "고보안 구역 파괴 — IRA의 승리"라는 문구가 적힌 배너를 펼치고 경찰을 향해 조명탄을 발사한 것입니다. 훗날 영국 언론은 이 사건을 왕세자 부부에 대한 공격으로 규정했고, 독일 당국의 보안 공백을 지적했습니다. 영·독 관계의 긴장을 완화하기는커녕, 왕실 방문은 적어도 언론에는 새로운 화제성을 불어넣어 주었습니다.
록슈테트 NDR 스튜디오 방문
반면 록슈테트(Lokstedt)에 있는 NDR 스튜디오 방문은 조화롭고 평화로웠습니다. 왕세자 부부는 독·영 양국의 역사가 얽힌 기관을 직접 알아보는 시간을 가졌습니다. 영국 출신 언론인 휴 그린(Hugh Greene)은 제2차 세계대전 이후 영국 점령 지역의 방송 재건을 위해 점령 당국을 대신해 1945년 9월 북서독일방송(NWDR)을 설립한 인물입니다.
NDR 스튜디오에서 찰스와 다이애나가 만난 전설적인 기자 페터 폰 참(Peter von Zahn)은 처음부터 이 방송사를 세운 인물 중 한 명이었고, 영국인들과의 좋은 경험에 대해 이야기를 나눴습니다. 핀크바르더 슈필딜(Finkwarder Speeldeel) 어린이 합창단은 온 가정의 교사였던 다이애나에게 북독일 민속의 정겨움을 선사했습니다. 스튜디오는 내빈을 맞아 각종 영국 상징물로 장식되었고, 타게스샤우(Tagesschau) 진행진과 당시 NDR TV 사장 롤프 젤만-에게베르트(Rolf Seelmann-Eggebert), NDR 이사 등이 귀빈들에게 경의를 표했습니다.
시청에서 열린 갈라 디너 리셉션
함부르크 방문은 도시의 황금책(Golden Book) 서명에 이어, 시청에서 400명의 하객이 참석한 가운데 열린 갈라 디너로 마무리되었습니다.
저녁이 되자 축제의 장이 열렸습니다. 찰스 왕세자와 다이애나가 함부르크 시청에 초대된 것입니다. 400여 명의 하객은 이미 패션 아이콘으로 불리던 영국 공주가 화려한 의상을 입고 등장하는 모습에 매료되었습니다. 그녀는 스트랩 없는 검은 레이스 이브닝 드레스에 은은한 대비를 이루는 긴 흰색 진주 목걸이를 매치했습니다. 만찬이 시작되기 전 손님들은 도시의 황금책에 서명했고, 연회장의 웅장한 격자 천장 아래 호화로운 식사가 차려졌습니다. 특히 피어란덴(Vierlanden) 지역 산 베이컨과 딸기를 곁들여 요리하고 절인 녹색 아몬드로 마무리한 갓 구운 거위 요리가 이목을 끌었습니다. 전통에 따라 식탁용 와인으로는 모젤산 와인이 헌사 형태로 제공되었는데, 찰스와 다이애나가 1981년 결혼식에서 마셨던 바로 그 와인이었다고 전해집니다. 클라우스 폰 도나니 시장과 웨일스 공자는 연설을 통해 따뜻한 담소를 나누었습니다.
왕세자 부부는 다음 날 함부르크를 떠났습니다. 그로부터 약 10년 후인 1997년, 다이애나는 파리에서 비극적인 교통사고로 세상을 떠났습니다. '마음의 공주'라 불리던 그녀의 마지막 모습을 함부르크 시민들은 오래도록 기억하고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