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럽의 역사

'하노버의 충성' 광산 참사: 1960년 잘츠기터 지하 화재로 33명의 광부가 숨지다

1960년 7월 19일 오전, 독일 니더작센주 잘츠기터 인근의 광석 광산 '하노버셰 트로이에(Hannoversche Treue)'에서 대형 지하 화재가 발생해 광부 33명이 생명을 잃었습니다. 당시 언론은 "폭발 직후 무거운 연기 기둥이 생산 갱도를 뒤덮어 첫 구조대의 진입조차 막혔다"고 전했으며, 화재의 정확한 원인은 이후 경찰 수사를 통해서야 밝혀지게 됩니다.

오전 7시 17분, 연기에 갇힌 광부들

화재 신고는 오전 7시 17분경 접수됐고, 즉각 대형 경보가 발령됐습니다. 그러나 많은 광부들에게 구조대의 손길은 너무 늦게 닿았습니다. 실종자 가운데 마지막으로 확인된 알베르트 비버(Albert Biewer)는 사고 발생 후 수심 340m 지점에서야 발견됐지만, 동료 32명과 마찬가지로 이미 숨을 거둔 상태였습니다.

당시 보도에 따르면 갇힌 사람들이 스스로 탈출하려 했으나 뚫을 수 없는 연기 구름 앞에서 시도는 실패했습니다. '함부거 아벤트블라트(Hamburger Abendblatt)' 기자들은 "연기 기둥이 터널을 관통하며 그곳에서 일하던 광부들을 덮쳤다"고 당시의 참상을 묘사했습니다. 통풍구가 있는 경사진 갱도는 굴뚝처럼 작동해 불길을 몇 초 만에 번지게 한 것으로 분석됩니다.

방화? 공격? 온갖 추측이 난무하다

화재 소식이 전해지면서 외부에서는 방해 공작이나 공격이라는 근거 없는 추측까지 제기됐습니다. 경찰은 현장 검증과 함께 화재 원인 규명에 착수했고, 결정적 단서는 19세 광부의 자살에서 나왔습니다. 그와 동료 4명은 화재가 어떻게 시작됐는지 알고 있었던 것으로 드러났으며, 처음에는 서로 입을 맞추기로 합의한 뒤 거짓 진술을 했습니다. 그러나 수사관들은 조사를 거듭하며 진실을 하나씩 끌어냈습니다.

17세 견습생의 무모한 행동이 부른 참극

수사 결과, 화재의 씨앗은 17세 견습생의 무모한 행동이었습니다. 그는 광부의 램프로 음식을 데우다 판지 상자에 불을 붙였고, 불을 끄려 했지만 이미 늦은 상황이었습니다. 형사경찰은 "불길은 몇 초 만에 터널의 굴뚝 화재처럼 타올랐을 것"이라고 판단했습니다. 통풍구가 있는 경사진 갱도가 풀무질처럼 산소를 실어 화재를 폭발적으로 확산시킨 것입니다.

기소됐지만 열리지 않은 본 재판

1962년 3월, 브라운슈바이크 검찰청은 과실방화 및 과실치사상 혐의로 두 명의 용의자를 기소했습니다. 그러나 재판은 열리지 못했습니다. 관할 청년법원은 "혐의를 입증할 의심할 여지가 충분하지 않다"며 공판 개시를 기각했고, 1963년 5월에는 브라운슈바이크 고등지방법원이 검찰의 항소마저 기각하며 사건은 사실상 종결됐습니다.

관 위에 놓인 광부의 램프, 그리고 기억

수습된 희생자들은 참사 발생 사흘 만에 안장됐습니다. 모든 관 위에는 불타버린 광부의 램프가 하나씩 올려져 도시 전체의 애도를 상징했습니다. '하노버셰 트로이에' 광산은 1967년 5월 폐쇄됐으며, 잘츠기터시는 희생자를 기리기 위해 제1갱도(Shaft 1) 부지에 기념비를 세워 참사의 기억을 이어가고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