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럽의 역사

빌헬름 구스틀로프호: 나치 독일의 '꿈의 배'에서 세계 최대 해난 참사까지

1937년 5월 5일, 나치 독일은 대중을 위한 유람선에 '빌헬름 구스틀로프'라는 이름을 붙였습니다. 단 8년 뒤, 이 배는 수천 명의 난민을 실은 채 발트해 바닥에 가라앉으며 역사상 가장 참혹한 선박 참사를 기록하게 됩니다.

당대 최대의 호화 유람선

눈부시게 하얀 선체, 208미터가 넘는 길이, 수영장과 일광욕 데크를 갖춘 고급 시설. 1937년 5월 5일 함부르크에서 진수된 '빌헬름 구스틀로프'호는 당시 세계에서 가장 큰 유람선이었습니다. 이 거대 증기선은 국가사회주의(나치즘)의 상징이자 대표적인 선전 도구였습니다.

나치의 여가 조직 '크라프트 도어 프로이데(Kraft durch Freude, KdF)'는 의도적으로 휴가 항해 요금을 낮게 책정해 근로자들도 부담 없이 이용할 수 있도록 했습니다. '꿈의 배'를 타고 노르웨이까지 5일간 크루즈를 떠나는 비용은 단 50 라이히스마르크(오늘날 구매력으로 약 200유로)에 불과했습니다.

수영장부터 극장까지, '구스틀로프'의 호화 설비

승객들의 편안함에는 아낌없이 투자했습니다. 수영장과 일광욕 데크 외에도 극장과 음악당, 흡연실, 7개의 바, 영화관, 산책 데크 2개(그중 하나는 전면 유리)를 갖추고 있었습니다. 모든 객실은 외향식이며 동일한 가구로 꾸며져 계급에 따른 차등이 없었습니다. 다만 아돌프 히틀러가 사용하지 않은 '총통 전용 보트'만이 더 컸습니다. 승무원 417명과 함께 한 번에 1,463명의 휴가객이 탑승해 스칸디나비아나 지중해로 떠날 수 있었습니다.

빌헬름 구스틀로프호 주요 제원

  • 진수: 1937년 5월 5일
  • 취역: 1938년 3월 15일
  • 건조: 블롬 운트 포스(Blohm + Voss)
  • 모항: 함부르크
  • 전장: 208.50미터
  • 폭: 25미터
  • 총톤수(GRT): 25,484톤
  • 허용 승객 수: 1,463명
  • 건조 비용: 약 2,500만 라이히스마르크
  • 소유: 독일노동전선(DAF)
  • 침몰: 1945년 1월 30일

'운동의 순교자'의 이름을 딴 배

1936년 8월 4일, 독일노동전선(DAF)은 함부르크의 조선소 블롬 운트 포스에서 이 배의 건조에 착수했습니다. 원래 배 이름은 '아돌프 히틀러'가 될 예정이었지만, 히틀러는 자신의 이름이 걸린 위험을 감수하고 싶지 않았습니다. 대신 그는 나치 당원 빌헬름 구스틀로프의 이름을 딴 배를 만들도록 했습니다. 스위스 내 NSDAP 지부의 수장이었던 그는 1936년 2월 4일 유대인 학생에게 총격을 받아 사망했고, 이후 나치들은 그를 '운동의 순교자'로 추앙했습니다.

'독일 노동자가 활력을 잃지 않도록'

1937년 5월 5일 진수식에서는 미망인 헤드비히 구스틀로프가 남편의 이름으로 배에 세례를 올렸습니다. 독일노동전선 수장 로베르트 라이는 연설에서 히틀러의 명령을 이렇게 소개했습니다. '독일 노동자가 긴장을 풀 수 있도록 휴가를 주라는 것이 그의 명령임을 확인하십시오. 독일 국민은 내 생각을 이해할 만큼 강합니다.'

크루즈와 선전의 무대

진수 후 1년이 채 지나지 않은 1938년 3월 23일, '빌헬름 구스틀로프'호는 준비를 마치고 첫 항해에 나섰습니다. 같은 해 4월 초에는 선전 활동의 일환으로 런던으로 향했습니다. 영국에 거주하던 독일인과 오스트리아인들이 이 배에 올라 오스트리아의 독일 병합(안슐루스)에 대한 투표를 진행한 것입니다. 결과는 놀랍지 않았습니다. 공식 집계에 따르면 투표차 배에 오른 사람들의 99%가 병합에 찬성표를 던졌습니다. 1939년 5월에는 일반 KdF 휴가 프로그램을 벗어나 스페인 내전에서 프랑코 측에 섰던 '콘도르 군단' 독일군을 함부르크로 수송했습니다.

전쟁 발발, 떠다니는 병원선이 되다

제2차 세계대전이 시작되며 휴가 항해는 막을 내렸습니다. 총 44회의 크루즈 항해를 마친 '구스틀로프'호는 1939년 9월 독일 해군(Kriegsmarine)에 인수되어 수상 병원으로 활용됐습니다. 국제 규정에 따라 선체에 녹색 가로 줄무늬와 깔때기의 적십자 표시를 두어 병원선임을 쉽게 알아볼 수 있게 했습니다. 그러나 1940년 11월부터는 잠수함 승조원들의 숙박선으로 전환되었고, 흰색 선체의 녹색 줄무늬는 회색 위장색으로 대체되면서 이 배는 합법적인 군사 표적이 되었습니다. 1945년까지 이 배는 단치히만의 고텐하펜(Gotenhafen)에 정박해 있었습니다.

9,343명의 죽음, 세계 최대의 선박 참사

1945년 1월 30일, '빌헬름 구스틀로프'호는 동프로이센 철수 작전에 투입되기 위해 고텐하펜을 떠나 킬 방향으로 항해했습니다. 완전히 만원이 된 배에는 10,582명이 타고 있었고, 그중 약 8,800명은 진격하는 소련군을 피해 도피한 난민으로 대부분 여성과 어린이였습니다.

이것이 '빌헬름 구스틀로프'호의 마지막 항해였습니다. 오후 9시 16분, 소련 잠수함이 발사한 어뢰 3발이 난민선에 명중했습니다. 배는 얼음이 떠다니는 얼어붙은 발트해로 가라앉았습니다. 9,343명이 목숨을 잃었으며 그중 절반가량이 어린이였습니다. 빌헬름 구스틀로프호의 침몰은 오늘날까지 세계 최대의 선박 참사로 기록되고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