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럽의 역사

핵분열의 발견: 오토 한과 리제 마이트너가 연 원자력 시대의 문

1939년 1월 6일, 과학계는 인류 역사상 최초의 성공적인 핵분열 소식을 접했습니다. 독일의 화학자 오토 한(Otto Hahn)과 프리츠 슈트라스만(Fritz Straßmann)은 저널 Naturwissenschaft를 통해 중성자를 우라늄에 조사한 실험 결과를 발표한 것입니다.

원자를 다른 원소로 바꾸려는 시도 자체는 새로운 일이 아니었습니다. 이미 1919년 물리학자 어니스트 러더퍼드(Ernest Rutherford)는 원자를 최초로 '깨뜨려' 질소를 산소로 변환하는 데 성공했고, 이후 유명 원자 실험실 곳곳에서 원소 변환 실험이 활발히 이루어졌습니다.

원자핵 분열은 오랫동안 불가능하다고 여겨졌다

당시에는 정립된 법칙처럼 받아들여지는 통념이 있었습니다. 원자에 충격을 가하면 원래 원소와 무게 차이가 거의 없는 원소만 생성된다는 것이었죠. 과학자들은 원자핵이 중간에서 갈라지는 것은 불가능하다고 생각했으며, 따라서 원자핵이 분열할 때 방출될 엄청난 에너지를 얻는 일 또한 불가능하다고 여겨졌습니다.

최초의 핵분열 실험

로마의 엔리코 페르미(Enrico Fermi), 베를린의 리제 마이트너(Lise Meitner)와 오토 한(Otto Hahn) 같은 베테랑 실험 연구자들은 수년간 이러한 전제 위에서 실험을 반복했지만, 끊임없이 모순적인 결과와 마주했습니다. 1938년 11월, 오토 한은 코펜하겐을 방문해 노벨물리학상 수상자 닐스 보어(Niels Bohr)를 만나 '우라늄이 라듐으로 변한다'는 자신의 가설을 조심스럽게 던졌습니다. 라듐은 우라늄보다 그리 가볍지 않았지만, 보어는 두 원소 사이의 무게 차이가 너무 크다는 점을 지적했습니다.

한은 베를린으로 돌아와 자신의 가설을 입증하고자 했습니다. 1938년 12월, 오토 한과 동료 프리츠 슈트라스만은 베를린 카이저 빌헬름 화학연구소(Kaiser Wilhelm Institute for Chemistry)에서 우라늄 원자에 입자를 충돌시켜 라듐을 얻으려 시도했습니다. 라듐은 나오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전혀 예상 못한 결과가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우라늄에 핵입자를 충돌시킨 산물 가운데, 우라늄 질량의 절반도 되지 않는 바륨 원소가 검출된 것입니다. 이는 원자핵이 실제로 분열되었다는 결정적인 증거였습니다.

리제 마이트너, 현상을 올바르게 해석하다

며칠 후 한은 카이저 빌헬름 연구소의 동료였던 물리학자 리제 마이트너에게 이 발견을 알리는 편지를 보냈습니다. 당시 마이트너는 유대인이라는 이유로 몇 달 앞서 독일을 떠나 망명한 상태였습니다. 그녀는 역시 물리학자인 조카 오토 로베르트 프리슈(Otto Robert Frisch)와 함께 우라늄 핵분열에 대한 최초의 물리학적 해석을 제시한 장본인이었습니다.

1939년 초, 오토 한과 프리츠 슈트라스만은 실험 결과를 논문으로 공식 발표했습니다. '우라늄에 중성자를 조사할 때 생성되는 알칼리 토금속의 검출과 거동에 관하여'라는 제목의 이 논문은 1939년 1월 6일 저널 Naturwissenschaft에 게재되었으며, 오토 한은 이 성과로 1944년 노벨화학상을 수상했습니다.

원자력과 핵무기의 시대

핵분열 연구는 '원자력 시대'라는 완전히 새로운 시대의 막을 열었습니다. 당시 핵분열의 가장 큰 매력은 원자핵에 저장된 에너지를 실질적으로 활용할 수 있다는 점이었습니다. 자연 방사능만으로는 이를 감당할 수 없었습니다. "반면 핵분열에서는 연쇄 반응을 통해 에너지를 생성하는 핵 과정을 증폭시키는 것이 가능합니다. 각 핵분열이 추가 핵분열을 촉발할 수 있는 중성자를 여러 개 방출하기 때문입니다"라고 마인츠 대학교는 설명합니다.

이 발견은 국제적으로, 특히 미국에서 폭발적인 반향을 일으켰습니다. 세계 최초의 원자로는 1942년 12월 2일 이탈리아 출신 물리학자 엔리코 페르미의 지휘 아래 시카고에서 임계 상태에 도달했습니다. 현상의 발견에서 기술 구현까지 단 4년밖에 걸리지 않은 것입니다. 이 시카고 원자로는 전기 생산이 아닌, 핵무기 개발을 목표로 하는 맨해튼 프로젝트(Manhattan Project)의 일환이었습니다. 미국은 막대한 자원을 투입해 원자폭탄 개발을 추진했고, 제2차 세계대전 중 핵무기를 역사상 처음으로 실전에 사용했습니다.

민간 원자로 기술의 굴곡

원자력의 평화적 응용, 예컨대 의료 진단 분야에서의 활용은 주로 전쟁이 끝난 뒤에 본격화되었습니다. 그러나 1986년 4월 체르노빌 원자로 사고는 민간 원자로 기술의 황혼을 가져왔고, 오늘날까지 이어지는 원전 안전성 논쟁의 서막이 되었습니다.

방사능과 핵분열의 원리

방사능은 우주방사선의 형태로 우리 주변 어디에나 존재합니다. 높은 산에서는 공기가 희박해 우주에서 오는 방사선을 잘 차단하지 못하며, 화산암 같은 지각 속에서도 방사성 물질이 방출됩니다.

'방사성'이란 특정 물질이 외부 영향 없이 스스로 변환되면서 특유의 방사선을 내보내는 성질을 말합니다. 원자는 종종 안정하지 않아 자발적으로 붕괴하며 이온화 능력, 즉 방사성 방사선을 방출합니다. 반면 적절한 여기 에너지를 공급하면 원자의 붕괴를 인위적으로 강제할 수도 있습니다. 중성자를 조사하면 원자핵은 두 개 이상의 훨씬 가벼운 원자핵으로 갈라집니다.

이 분열 과정은 운동 에너지와 강렬한 방사선을 방출하고, 2~3개의 중성자를 새로 만들어냅니다. 이 중성자들이 다른 원자핵을 때려 다시 분열시키면서 눈사태처럼 증폭되는 연쇄 반응이 일어납니다. 핵분열은 이렇게 에너지 생산에 활용될 수 있지만, 동시에 핵무기의 원리로도 작동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