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럽의 역사

함부르크 폭스파르크(Volkspark): '모두를 위한 신선한 녹색' 공원의 탄생과 100년의 철학

by Irene Altenmüller, NDR.de 오늘날까지 함부르크의 시민공원(폭스파르크, Volkspark)은 공공 공원으로서의 본래 성격을 그대로 지켜내고 있습니다. 함부르크의 위대한 도시 계획가 프리츠 슈마허(Fritz Schumacher)는 공원에 대한 자신의 철학을 이렇게 표현했습니다. 공원이란 "걸어서 지나가는 정원이 아니라, 시민이 직접 소유하고 누리는 정원"이 되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20세기 초, 공원이 정성껏 설계된 산책로를 거니는 데 그치지 않고 뛰어놀고, 즐기고, 운동하는 공간이 되어야 한다는 생각은 당시로서는 매우 파격적인 견해였습니다. 물론 대도시에는 이미 공공 녹지가 존재했습니다. 함부르크의 아우터 알스터(Outer Alster) 주변 지역과 옛 성벽 일대, 그리고 당시 홀슈타인 영지에 속해 있던 알토나(Altona)의 바우르스 공원(Baurs Park)이 대표적입니다.

영국식 정원: 산책은 허용, 놀이는 금지

유틴(Eutin)의 영국식 정원은 이상적으로 "걸어서 들어가는 그림"처럼 조성되어야 했습니다. 영국식 조경 정원은 기하학적 구조의 바로크 왕궁 정원과 마찬가지로 휴양 공간이라기보다 하나의 예술 작품에 가까웠습니다. '걸어 다니는 풍경화'라 불린 이 정원들은 무엇보다 눈을 즐겁게 하는 것이 목적이었고, 잔디를 밟고 뛰어드는 행위는 결코 환영받지 못했습니다.

좁고 답답한 도시, 푸른 공간은 찾기 어려웠다

1900년경 함부르크의 서민 주거 지역에는 신선한 녹지와 맑은 공기가 절실히 부족했습니다. 자연을 '구경만 하는' 이러한 방식은 1900년경 서민 도시 인구의 현실적 요구와는 동떨어진 것이었습니다. 도시 인구는 급속히 늘어나면서 점점 더 많은 사람이 좁은 지역에 밀집해 살게 되었습니다. 함부르크의 인구는 불과 40년 만에 약 30만 명에서 100만 명 이상으로 세 배 가까이 불어났습니다. 붐비고 좁은 노동자 지구에는 자유롭게 거닐고, 신선한 공기를 마시고, 휴식을 취할 녹지가 전혀 없었습니다. 위생 상태는 여러 곳에서 재앙 수준이었고, 1892년 8,000명 이상의 생명을 앗아간 함부르크 콜레라 전염병은 바로 이런 열악한 생활 환경이 낳은 참혹한 결과였습니다.

'몸과 마음을 건강하게 하는' 공원

함부르크에서는 쿤스트할레 초대 관장이자 평범한 가정 출신인 알프레드 리히트바르크(Alfred Lichtwark)가 서민들의 열악한 생활 환경을 보완할 공간의 필요성을 처음으로 제기했습니다. 그는 이렇게 말했습니다.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잠시 산책하고 떠나는 공원이 아니라, 머물 수 있는 공원입니다. 고귀한 삶의 기쁨의 원천을 제공해 몸과 마음을 건강하게 하고 그 건강을 지켜 주는 공원이 필요합니다. 소위 영국식 공원에서는 지금까지 한 번도 시도된 적 없는 일입니다."

슈마허, 리히트바르크, 투텐베르크 – 공공 공원을 만들다

폭스파르크(Volkspark) 구상을 바탕으로 프리츠 슈마허는 함부르크 도시 공원의 개념을 발전시켰습니다. 뛰어놀고, 운동하고, 사람들과 생각을 나누고, 마음을 풀어내며 스스로를 계발하고 자연에 대해 배우는 공간. 새로운 형태의 공원은 다양한 요구를 충족시켜야 했고, 그래야 모든 시민을 위한 공원, 즉 진정한 '인민의 공원(폭스파르크)'이 될 수 있었습니다. 리히트바르크는 함부르크 도시공원의 설계자인 프리츠 슈마허에게서 든든한 동지를 찾았습니다. 알토나에서는 페르디난트 투텐베르크(Ferdinand Tutenberg)가 폭스파르크 구상을 적극 지지하며 1914년부터 알토나 폭스파르크를 현실로 만들어 갔습니다. 조경사들은 워프스베데(Worpswede) 예술가 마을에 속했던 레베레히트 미게(Leberecht Migge)와, 뤼베크 공공 공원을 설계했던 해리 마스(Harry Maasz) 등 다른 북독일 도시에서도 공공 공원 조성 운동을 펼쳤습니다 – 물론 뤼베크의 공원은 완전히 실현되지는 못했지만요. 함부르크 원로원의 폭스파르크 지지자들이 자신들의 구상을 관철시킬 수 있었던 데에는 부유한 함부르크 부르주아지의 일반 대중에 대한 관심만이 아니라 무엇보다 실질적인 경제적 이유가 있었습니다. 노동자들이 더 건강하고 행복할수록 생산성도 높아진다는 인식이 확산되고 있었던 것입니다. 콜레라 전염병에서도 교훈을 얻었습니다. 함부르크에서 출항한 선박들이 국제 항구에서 격리되면서 콜레라가 한자동맹 도시에 막대한 경제적 손실을 입혔다는 사실 말입니다.

놀고 즐기는 공원

빈터후데(Winterhude)의 슈타트파크(Stadtpark)는 오늘날에도 함부르크 시민들이 가장 사랑하는 휴양지 중 하나입니다. 오늘날의 폭스파르크 역시 넓은 잔디밭을 갖춘 놀이 공간, 스포츠 시설, 수영장, 카누 대여, 휴식 공간, 야외 무대 등 다양한 편의를 제공합니다. 또한 많은 공공 공원에는 숲속 자연 학습로나 학교 정원 등 교육 전용 공간도 마련되어 있습니다. 미적 측면만이 아니라 무엇보다 방문객의 요구에 기반한 설계 – 이 개념은 오늘날에도 여전히 유효합니다. 함부르크의 공공 공원은 그 어느 때보다 인기가 높습니다. 화창한 주말에 이 공원들을 찾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조경사 레베레히트 미게가 다음과 같이 썼을 때 염두에 두었던 것을 몸소 느끼게 될 것입니다. "사람들이 폭스파르크에서 정말로 뛰어다닐 수 있어야 합니다. 그렇지 않다면 아무 소용이 없습니다. 사람들이 그 위에 눕고, 놀고, 춤추도록 초대받는 초원만 남겨둔 곳, 그것이 진정한 공공 공원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