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날의 시각에서 보면, 전운이 짙게 드리운 시기에 평화와 문화유산 보호를 논하는 일은 다소 비현실적으로 들릴 수 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20세기가 사람과 돌, 곧 생명과 문화재를 모두 집어삼키기 전에, 몇몇 선구자들은 건물과 그 안에 담긴 지식을 구하기 위해 고군분투했으며, 이는 극도로 긴장된 국제 정세 속에서 이루어진 노력이었습니다. 이 '계약(Pact)'에 대해 이야기하기에 앞서, 먼저 그 영감의 원천이 된 인물이 누구이며 어디에서 왔는지 살펴보겠습니다.
1874년 상트페테르부르크에서 태어난 러시아 화가 니콜라스 뢰리히(Nicholas Roerich)는 인류 문화유산 보호를 위한 세계 최초의 조약을 창시한 인물입니다. 로리히 조약(Roerich Pact)은 교회와 모스크, 대성당, 박물관과 도서관, 학교와 대학, 극장과 과학 기관, 피라미드와 고대 사원 등, 즉 예술·교육·과학·종교에 헌신하는 모든 것을 보호 대상으로 삼습니다.
(1) 1940년경 니콜라스 뢰리히(Nicholas Roerich)
주목할 점은 유산 보존·보호의 원칙이 1935년 조약 서명 당시 완전히 새로운 것이 아니었다는 사실입니다. 이미 1899년 헤이그 회의(러시아 니콜라이 2세의 주도로 열린 첫 번째 회의)와 그 후속 회의인 1907년 회의에서 문화유산 보호를 목표로 하는 법안이 채택되어 있었습니다.
화가이자 고고학자, 역사 연구자였던 니콜라스 뢰리히는 문화적 가치가 파괴되는 비극을 누구보다 깊이 체감한 인물이었습니다. 그는 유명한 로리히 조약과 평화의 깃발(Banner of Peace)을 통해 평화를 외쳤고, 두 차례의 세계대전이라는 참사가 닥치기 전부터 인류에게 다가올 재앙을 경고했습니다. 또한 인류 의식의 성장을 돕기 위해 지구 곳곳에 평화의 메시지를 전파하고자 했습니다.
뢰리히는 러시아 여러 도시를 탐사하고 돌아온 뒤인 1904년, 모든 인류의 이익을 위해 문화 기념물을 보호해야 한다는 필요성을 처음 공식적으로 제기했습니다. 그러나 그의 구상이 실행 가능한 형태를 갖춘 것은 1930년, 국제 연맹 박물관 위원회가 조약과 평화의 깃발을 만장일치로 지지하면서부터였습니다.
이 계획의 핵심 목표는 전 세계의 문화·예술·과학적 가치를 파괴로부터 보호하는 것이며, 이 보호는 전시뿐 아니라 평시에도 적용됩니다. 로리히 조약에 따르면 모든 박물관, 대성당, 도서관, 대학, 기념물, 공공·민간 예술 컬렉션과 과학 수집품, 자연기념물, 아름다운 경관은 '중립적 대상'으로 간주되어야 하며, 조약 가입국은 이를 보호하고 존중해야 할 의무가 있습니다.
뢰리히의 스케치에 따르면, 보호받는 문화 시설에는 문화 기념물임을 알리는 중립 표지로서 평화의 깃발이 게양되도록 설계되었습니다.
(2) 1935년 4월 15일 워싱턴에서 제정된 평화의 깃발. 1954년 헤이그 협약 기간 동안 변경되었습니다.
니콜라스 뢰리히는 자신의 프로젝트에 대해 다음과 같이 말했습니다.
"과거의 숭고한 유산을 위험으로부터 보호하고, 영광스러운 미래를 위해 즉각적인 조치를 취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이는 본질적으로 특정 민족의 것이 아니라 전 인류의 재산인 문화재를 보호하겠다고 모든 나라가 엄숙히 맹세할 때 실현될 것입니다. 이렇게 함으로써 우리는 문화와 평화의 번영을 향한 또 하나의 발걸음을 내딛을 수 있습니다."
1931년부터 1932년까지 벨기에 브뤼허에서는 로리히 조약의 보편적 비준을 목표로 하는 대표적인 국제 회의 두 차례가 열렸습니다. 저명한 석학, 과학자, 작가, 예술가들이 이 구상에 동참해 힘을 보탰습니다. 로맹 롤랑과 버나드 쇼, 라빈드라나트 타고르와 토마스 만, 알베르트 아인슈타인과 H. G. 웰스가 조약을 지지했습니다. 미국과 유럽에서는 위원회가 조직되어 모든 국가의 문화를 보호하려는 이상을 적극적으로 지원했습니다. 그리고 마침내 1935년 4월 15일, 워싱턴 백악관에서 미국과 21개 라틴아메리카 공화국이 평화 조약과 평화의 깃발을 비준하는 엄숙한 행사가 열렸으며, 루스벨트 대통령은 국제 라디오 방송을 통해 평화 협정의 의미를 설명했습니다.
(3) 1935년 4월 15일 로리히 조약 서명식. 가운데는 F. D. 루스벨트 미국 대통령.
뢰리히의 협정은 오늘날까지도 유효합니다.
출처 및 참고자료
본문 삽화는 뢰리히의 그림(1901년)입니다.
뢰리히 전기(Biography of Roerich)
브리태니커(Encyclopædia Britannica)