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럽의 역사

아고바르와 UFO 신화: 9세기 리옹 주교가 기록한 '하늘을 나는 배'와 마고니아 전설

집단적 상상력이 낳은 대중적 공포에 맞서 싸우는 일은 거의 불가능에 가깝습니다. 농촌 사회에서는 시민 소요, 나아가 살인 사태로 번질 위험이 여전히 현실적인 우려이기 때문에 더욱 그렇습니다. 그럼에도 9세기 리옹의 주교 아고바르(Agobard)는 바로 그 일에 도전했습니다. 다만 그가 De grandine et tonitruis(『우박과 천둥에 관하여』)를 집필할 당시에는, 자신의 기록이 훗날 UFO의 존재를 입증하는 증거로 회자될 것이라고는 결코 상상하지 못했을 것입니다.

아고바르와 UFO 신화: 9세기 리옹 주교가 기록한  하늘을 나는 배 와 마고니아 전설

그렇다면 실제로 무슨 일이 벌어졌던 걸까?

이야기를 몇 세기 거슬러 올라가 고대 로마 시대부터 짚어야 합니다. 서기 319년, 로마 황제 콘스탄티누스는 스토머(stormer)라 불리는 농촌의 마법사들을 공인했습니다. 이들은 자연의 요소를 다룰 줄 알았고, 좀 더 구체적으로는 금전적 보수를 받고 이웃의 밭에 우박을 내리게 하는 일을 했습니다. 꽤 수익성 좋은 장사였습니다. 물론 무거운 세금을 부담하는 국가의 농업 생산만 피해를 입지 않는다면, 이러한 공인은 당연한 것이었습니다. 그리고 강탈에 가까운 행위를 하는 이런 임시 마술사들에게 사형을 선고한 것은, 506년에 이르러서야 서고트족의 왕이었습니다.

론 계곡에서 벌어진 대중적 광기는 리옹의 주교에게는 견디기 힘든 부담이 되었습니다. 당시 마고니아(Magonia), 즉 '마법사의 땅'의 존재는 낯선 것이 아니었고, 대다수 주민, 특히 농민들은 폭풍과 마고니아의 마법사들, 이른바 마고니안(Magonians) 사이에 맺어진 위험한 밀약을 걱정하고 있었습니다. 후자에 관해서는, 백성들의 황폐해진 수확을 되찾기 위해 '비행선'을 타고 나타난다는 소문이 퍼져 있었는데, 실제로 배에서 한 남녀가 추락하는 모습을 목격했다는 증언까지 있었다니 더욱 놀라운 일입니다!

다음은 아고바르의 저술 『우박과 천둥에 관하여』(1841년 판)에서 발췌한 내용입니다.

“우리는 마고니아라고 하는 어떤 지역이 실재한다고 믿고 단언할 만큼 어리석고 눈먼 사람들을 수없이 보았고 들었다. 그곳에서 배들이 구름 위를 항해하여, 같은 나라로 돌아가면서 우박으로 떨어져 폭풍에 파괴된 곡식과 과일을 실어 나른다고 한다. 그러나 곡물과 여러 과일의 값은 이 공중 항해자들이 폭풍 마법사들에게 지불하였고, 그들은 그 대금을 받았다.”

아고바르와 UFO 신화: 9세기 리옹 주교가 기록한  하늘을 나는 배 와 마고니아 전설

문제는 갈수록 심각해졌습니다. 분노한 군중은 폭풍 마법사와 마고니안을 잡아, 배에서 추락한 것으로 여겨지는 불행한 자를 붙들어 심문했습니다. 아고바르가 설치한 재판소는 여러 차례의 심문 끝에 이러한 집단적 광기를 해명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그렇다면 이처럼 만연한 주장이 어떻게 그런 믿음의 폭발을 낳을 수 있었을까? 샤를마뉴는 이미 806년 네이메겐 칙령에서 기근의 희생자가 된 거지들의 유랑을 금지한 바 있습니다. 790년의 식량 부족, 그리고 793년의 특히 혹독했던 겨울은 절망에 빠진 인구를 양산했습니다. 조상들의 두려움과의 상관관계로는 설명이 불가능합니다. 이러한 공포는 여전히 생생하게 남아 있었으며, 오히려 북유럽 신화에서 차용한 '환상적인 탈것'에 가까운 것이었습니다.

Comte de Gabalis 또는 비밀과학에 관한 대화(1670년 출간)에는 아고바르와 관련된 정보가 담겨 있습니다. 그러나 오늘날 우리가 아는 UFO의 이미지가 확립된 것은 1953년경, 데스몬드 레슬리(Desmond Leslie)의 저서 『비행접시가 착륙했다(Flying Saucers Have Landed)』를 통해서였습니다. 바로 이 책에서 마고니안은 외계인에 가까운 존재로 구체화되었습니다.

리옹의 주교 입장에서 이러한 조작을 종식시키는 일은 필요했고 정당했습니다. 특히 이런 강탈 행위가 교회의 십일조와 경쟁하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출처 및 참고자료:

우박과 천둥
네이메겐 칙령(806)
페르세우스, 아고바르
유니버설리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