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945년, 알레포에 세워진 에미리트
서기 945년, 아랍의 위대한 장군 사이프 알다울라(Saif al-Dawla)는 알레포를 중심으로 자신의 에미리트(토후국)를 세웠고, 상부 시리아 지역에서 비잔틴 제국의 최대 라이벌로 부상했습니다. 이후 이 지역에서는 양측이 기습과 약탈을 되풀이하는 끊임없는 전쟁이 벌어졌습니다.
크레타 원정의 빈틈을 노린 침공
960년 초여름, 알다울라는 비잔틴 최정예 부대가 크레타 섬 탈환 원정에 투입되어 아나톨리아가 텅 빈 상태임을 이용해 침공을 개시했습니다.
약탈과 학살
알다울라는 병력을 두 갈래로 나누었습니다. 그 자신은 주력을 이끌고 킬리키아를 통해 비잔틴 영내로 진입했고, 나머지 한 부대는 양동 공격을 담당했습니다. 아랍군의 침공에 대한 방어 임무는 직전에 트라키아에서 헝가리인들을 격파하고 돌아온 서방군 총사령관(도메스티코스) 레오 포카스에게 맡겨졌습니다. 형제인 니케포로스 포카스가 크레타 원정 중이었기 때문에, 레오 포카스는 소아시아로 파견되어 무슬림 군대와 맞서야 했습니다.
한편 알다울라의 군대 – 약 3만 명 – 은 소아시아 중부의 하르시안 테마까지 진격해 있었습니다. 아랍군은 같은 이름의 도시를 함락하고 수비대를 몰살했으며, 주변 지역을 약탈하고 불태운 뒤 주민 수천 명을 포로로 잡았습니다. 가을이 저물 무렵, 승전한 아랍군은 전리품을 가득 싣고 수천 명의 포로를 끌고 귀로에 올랐습니다. 비잔틴 역사가 레오 집사(Leo the Deacon)의 기록이 전하는 광경입니다.
완벽한 매복 계획
그러나 레오 포카스의 군대는 아랍군을 추격해 정면에서 맞설 만큼 빠르게 따라잡기 어려운 처지였습니다. 아랍 측 사료(수치는 언급하지 않음)에 따르면, 그는 매복 전술에 의존하기로 결심했습니다. 카파도키아 테마의 장군이자 숙부인 콘스탄티노스 멜레노스의 병력과 합류한 뒤, 그는 킬리키아 타우루스 산맥 남서쪽의 좁은 킬린드로스 고개, 즉 안드라소스 지역을 점거했습니다.
비잔틴군은 현지 요새 하나를 손에 넣은 후 주력 부대를 고개에 은신시켰습니다. 알다울라는 원정 출발 때 바로 이 고개를 통과한 적이 있었습니다. 그런데 귀로에 오르자 그의 장군들은 다른 길을 택할 것을 권유했습니다. 그러나 알다울라는 자신의 힘을 과신한 나머지 그들의 조언을 오만하게 일축하고 같은 길로 행진했습니다.
우리에 갇힌 군대
960년 11월 8일, 천사장(택시아르코스) 축일 날, 아랍군은 아무런 경계 없이 고개에 진입했습니다. 좁은 협곡을 통과하기 위해 대형을 흩어진 상태였습니다. 전리품과 포로마저 짊어진 아랍군은 험준한 지형 위를 어수선하게 이동하고 있었습니다.
아랍군 전열이 모두 협곡 안으로 들어온 순간, 레오 포카스는 공격 신호를 보냈습니다. 나팔 소리와 함께 병사들이 "주여, 자비를 베푸소서"를 외치며 진격했습니다. 동시에 다른 병사들이 바위와 통나무를 굴려 협곡의 입구와 출구를 완전히 봉쇄했습니다.
아랍군은 완전히 발이 묶였습니다. 항전하려던 자들은 가차 없이 살육당했고, 대다수는 무기를 내려놓고 항복했습니다. 알다울라는 겨우 한 기병이 말을 내주는 덕분에 함정에서 탈출할 수 있었습니다.
아랍군이 붙잡아 두었던 기독교 포로들은 모두 석방되었고, 약탈된 전리품은 비잔틴군이 회수했습니다. 이제 포로가 된 아랍 학살자들은 비잔틴의 밭에서 일하는 노예로 전락했습니다.
사료에 따르면 알다울라의 부하 중 생환한 것은 약 300명에 불과했습니다. 아랍 포로들 사이에는 에미르의 친척과 그 국가의 고위 관료들도 포함되어 있던 것으로 보입니다.
레오 포카스는 구출된 기독교 포로들에게 식량을 공급한 뒤 고향으로 돌려보냈습니다. 대승을 거둔 비잔틴 제국은 콘스탄티노플에서 성대한 개선식을 거행했고, 아랍 포로들은 사슬에 묶인 채 행진했습니다.
보복
안드라소스 전투는 성공적인 매복 작전의 교과서적 사례로 평가받아, 니케포로스 포카스가 970년경 저술한 비잔틴 특수작전 교범 『매복에 관하여』에 수록되었습니다. 이 전투는 기독교가 이슬람에 거둔 승리로 찬양받았습니다. 비잔틴인들이 축배를 들 때, 초승달은 애도했습니다.
그러나 아랍인들에게 불행은 여기서 끝나지 않았습니다. 니케포로스 포카스가 크레타를 해방하고 소아시아로 귀환하면서 상황은 더욱 악화되기 시작합니다. 훗날 황제가 되는 그는 961년 알다울라의 에미리트를 공격해 진격로에 있는 모든 것을 초토화했습니다. 포카스는 7만 대군을 이끌고 마주치는 아랍군을 차례로 격파하며 알레포 성벽 앞에 당도했습니다.
비잔틴군은 도시를 함락하고 성채를 제외한 전체를 폐허로 만들었습니다. 이 승리는 알다울라의 물리적·정치적 역량을 완전히 꺾어버렸고, 니케포로스 포카스의 새로운 승전이 이어지던 가운데 그는 967년 병으로 세상을 떠났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