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88년, 레온 왕국의 국왕 알폰소 9세가 특별 쿠리아(왕실 회의)를 소집했습니다. 이 회의에는 그의 왕국에 속한 여러 도시와 마을의 대표들이 처음으로 참석했는데, 이들이 바로 오늘날 말하는 '제3신분'의 원형이었습니다. 이 사건은 곧 코르테스(Cortes), 즉 신분제 의회의 탄생을 상징하는 순간으로 기록됩니다.
1년 전인 1187년에는 카스티야 왕국의 왕실 회의에도 여러 도시의 대표들이 참석한 것으로 추정됩니다. 다만 일반적으로는 레온에서 열린 이 회의가 코르테스 창설의 기준점으로 간주되고 있습니다.
그렇다면 왕실 회의에 도시와 마을 대표들이 참석하게 된 배경은 무엇이었을까요? 중세 스페인 경제사의 권위자 클라우디오 산체스알보르노스(Claudio Sánchez-Albornoz)는 화폐 문제에 주목했습니다. 그는 왕의 주화 남발·변조에 불만을 품은 부르주아지가 왕과 합의를 맺었다는 견해를 옹호했습니다. 즉, 도시들이 경제적 지원을 제공하는 대가로 군주는 특정 규칙에 따라 7년에 한 번씩만 주화를 주조하기로 약속했다는 것입니다.
1202년 베나벤테(Benavente)에 모인 코르테스의 기록은 이 합의를 아주 분명하게 보여줍니다. "왕은 두에로 지역 사람들에게 7년 동안 자신의 화폐를 팔았고, 각자 구매 대금을 지급받았다"는 문구가 그것입니다. 이 조항은 두 부분으로 나뉘어 있으며, 같은 해 같은 시기에 에스트레마두라(extremadura) 전역에서도 동일한 화폐가 매입되었다고 명시하고 있습니다.
어떤 형태였든, 도시와 마을의 대표들이 군주정의 통치 기구에 참여하게 된 사실 자체가 당시 도시 세력이 확보해 가던 정치적 힘을 명확히 드러내 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