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럽의 역사

프리모 데 리베라의 독재: 1923년 쿠데타부터 정권 몰락까지

1912년 보호령이 수립된 이후 모로코에서 스페인의 영향력은 갈수록 커졌고, 이는 국가에 감당하기 어려운 경제적 부담을 안기며 나라를 공개전쟁이라는 수렁으로 몰아넣었습니다. 모로코에는 65,000명이 넘는 병력이 파병되었지만, 이 전쟁을 반긴 이는 빠른 훈장과 진급을 약속받은 아프리카 주둔군의 젊은 장교들뿐이었습니다. 이들 '아프리카파'와 본국(이베리아반도) 주둔 장교들 사이의 격차는 후자에게 깊은 불만을 안겨주었습니다. 스페인은 제1차 세계대전에 참전하지 않았지만, 국제적인 전쟁 분위기에서 완전히 자유로울 수는 없었습니다. 1917년 중립 덕분에 누린 경제적 호황 이후, 경제·사회 전 분야에서 노동 분규부터 혁명 운동에 이르는 시위가 전국적으로 벌어졌습니다. 모로코 분쟁은 1921년 최고조에 달했는데, 이때 스페인군은 아누알(Annual)에서 참패하여 1909년 이후 정복한 영토 대부분을 잃었고, 무질서한 후퇴 과정에서 수천 명이 목숨을 잃었습니다. 이 참사로 촉발된 스캔들은 다시 한번 군부의 주목을 받게 만들었습니다.

프리노피시미엔토(Pronunciamiento): 1923년 9월 13일의 쿠데타 선언

군대의 공공생활에 대한 개입과 영향력은 1923년 9월 13일 정점에 도달했습니다. 바로 이날 프리모 데 리베라 장군이 바르셀로나에서 군사 반란(프리노피시미엔토)을 일으켜 독재 정권 수립을 선언한 것입니다. 그는 선언문을 "우리는 우리의 행동을 정당화할 필요가 없습니다"라는 문구로 시작했음에도 불구하고, 자신의 행동을 상세히 설명했습니다. 그의 관점에서 국가를 괴롭히던 모든 악, 즉 살인, 강도, 화폐 가치 하락, 정치적 음모, 공산주의와 분리주의 선전 등의 목록을 낱낱이 열거한 것입니다. 즉각 군사위원회가 구성되었고, 마드리드에서는 알폰소 13세의 지지 아래 군주제의 명운이 새로 수립된 독재정권의 운명과 결부되었습니다. 이번 개입이 거둔 성공을 고려하면, 군부의 쿠데타 개입은 이후 위기 상황마다 반복될 반자유주의적 상수가 되었습니다.

프리모 데 리베라 정부

프리모 데 리베라의 독재: 1923년 쿠데타부터 정권 몰락까지


프리모 데 리베라 독재정권은 출범 초기부터 모로코 문제와 공공질서라는 두 가지 핵심 과제의 해결에 착수했습니다. 전자의 경우 프랑스와의 합의에 따라 알후세마스(Alhucemas)에 상륙작전을 감행한 뒤 평화가 이루어졌습니다. 공공질서에 있어서는 시위가 완전히 사라지지는 않았지만 상당히 누그러졌습니다. 한편 독재에 대한 반대는 무엇보다 대학과 지식인 사회에서 일어났습니다. 1924년 푸에르테벤투라로 추방된 우나무노는 프리모 데 리베라에 맞선 투쟁, 그리고 그의 조합주의적·반자유주의 체제에 대한 저항의 상징이 되었습니다. 1928년 교회(특히 데우스토의 예수회)에 대학 학위 수여 권한이 부여되면서 시작된 대학 내 항의의 물결은, 오르테가 이 가세트, 히메네스 데 아수아, 산체스 로만 등 교수들이 항의의 표시로 자리를 내놓으면서 1929년 마드리드 대학교 폐쇄라는 결말을 맞았습니다.

독재정권은 야심 찬 공공사업 계획, 산업 생산의 상당한 성장, 국영기업 설립 등 초기에 괄목할 만한 경제적 성과를 거두었습니다. 그러나 사회적 요구를 흡수할 수 있는 정치 체제를 구축하는 데는 실패했습니다. 1924년에는 무솔리니의 이탈리아에서 보여준 역동성을 본떠 자신에게 유리한 정당인 애국동맹(Unión Patriótica)을 창설하려 했으나, 뚜렷한 이념 없이, 확고한 제도 없이, 대중적 지지 없이 비참하게 실패하고 말았습니다. 여기에 군대 내부의 반발까지 더해졌습니다. 승진 문제를 둘러싼 불만은 1926년 전쟁상태 선포 사태로 번졌고, 1929년에는 포병 부대가 해체되는 국면까지 맞이했습니다. 결국 1929년을 기점으로 경제 상황이 악화되고 반독재 세력의 동원력이 커지면서, 정권의 미래는 더 이상 가능하지 않았고 그 몰락은 불가피해졌습니다.

요컨대 프리모 데 리베라의 독재는 모로코 전쟁과 사회적 불안이라는 위기 속에서 군부가 정치에 직접 개입한 결과물이었습니다. 경제적 성과에도 불구하고 정치적 제도화에 실패한 이 정권은, 스페인 현대사에서 군부 개입주의가 남긴 대표적 사례로 평가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