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럽의 역사

고금 한 대로 10만 대군을 물리치다: 제갈량의 전설적 빈성계

제갈량(諸葛亮), 별명 '와룡(臥龍, 잠자는 용)'은 중국 삼국시대에 촉한(蜀)을 섬긴 군인이자 천하를 논하는 뛰어난 전략가였다. 한(漢)나라가 멸망한 뒤 중원의 판도를 두고 다투던 세 세력—촉, 위, 오—중에서 촉의 운명을 짊어진 인물이기도 하다. 그는 군대 배치와 지형 정착에서 남다른 통찰력을 보였을 뿐만 아니라, 기상과 천문의 변화를 읽어 실전에 활용하는 지혜까지 갖춘 인물이었다.

고금 한 대로 10만 대군을 물리치다: 제갈량의 전설적 빈성계

제갈량 초상

절체절명의 위기, 가정 전투

228년, 위(魏)나라 군대를 이끄는 사마의(司馬懿)가 제갈량의 주력부대보다 먼저 요충지인 가정(街亭)에 도달하는 국면이 벌어졌다. 가정은 북벌 원정 시 보급로의 관문 역할을 하는 전략적 요충지였기에 반드시 지켜야 했다. 그러나 상황은 절망 그 자체였다. 성을 방어할 수 있는 병력은 약 1,000명에 불과했고, 맞서야 할 사마의의 군대는 무려 10만 명에 달했다.

현악기 하나로 벌인 심리전

정면 대결은 자멸을 부르는 길이었다. 이에 제갈량은 남다른 기지를 발휘했다. 그는 모든 병사에게 평상복으로 갈아입게 하여 마치 태평성대의 도시처럼 일상적인 일을 계속하게 했다. 성문은 활짝 열어젖혀 성 안이 고요하고 평온하다는 사실을 적에게 드러내 보였다. 그리고 그 자신은 두 아이만 곁에 두고 성벽 위에 올라 고금(古琴)—일곱 줄로 된 중국 전통 현악기—을 연주하기 시작했다.

사마의의 군대는 성 안이 보이는 안전 거리까지 접근했다. 그리고 경악했다. 적군 10만이 눈앞에 닥쳤는데도 성은 조금도 동요하지 않았다. 문은 열려 있었고, 사람들은 태연히 제 할 일을 하고 있었다. 성벽 위에서 흘러나오는 고금 소리마저 담담하기 짝이 없었다.

의심이 만든 승리

그러나 사마의는 여러 차례 제갈량의 기지에 패배를 당한 전례가 있었다. 그는 이토록 평온해 보이는 풍경 속에 반드시 함정이 숨겨져 있으리라 의심했고, 결국 싸움 한 번 제대로 벌이지 못한 채 군대를 물렸다. 이렇게 제갈량은 단 한 명의 연주자와 한 대의 현악기로 10만 대군을 물리치는 기적 같은 승리를 거두었다.

고금 한 대로 10만 대군을 물리치다: 제갈량의 전설적 빈성계

고금을 연주하는 제갈량

이 일화는 후세에 '빈성계(空城計)'라 불리며, 삼십육계 중 하나로 오늘날까지 회자되고 있다. 병력의 열세를 오히려 심리전의 무기로 바꾼 제갈량의 지모는, 무기를 넘어선 지혜의 힘을 보여주는 대표적인 사례로 꼽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