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럽의 역사

인류 역사상 가장 오래된 강제 수용소, 4,300년 전 메소포타미아에서 시작되다

인터넷의 군사 관련 포럼에서는 종종 '누가 강제 수용소를 발명했는가'라는 논쟁이 벌어진다. 이는 막대한 이념적·정치적 무게를 지닌 민감한 문제이기 때문이다. 누구도 자신의 조상이 잔혹한 존재였다는 사실을 인정하고 싶어 하지 않는다.

그래서 나치 옹호론자들은 수용소의 발명 책임을 보어 전쟁 당시의 영국인들에게 돌리려 하고, 당연히도 영국인들은 1898년 쿠바 전쟁에서 이미 스페인인들이 '수용소'를 만들었다고 반박한다. 이렇게 책임을 서로에게 넘기며 시간을 거슬러 올라가다 보면, 결국 집단 학살이라는 개념은 인종, 종교, 경제, 정치 이념과 무관하게 늘 인간의 마음속에 자리해 왔음을 깨닫게 된다.

인류 역사상 가장 오래된 강제 수용소, 4,300년 전 메소포타미아에서 시작되다

사르곤 대왕과 아카드 제국

약 4,300년 전, 메소포타미아에서 우리가 알고 있는 최초의 제국인 아카드 제국이 탄생했다. 불과 피로 단련된 제국이었지만, 그 창건자 사르곤 대왕은 수백 년이 지난 후에도 정의로운 통치자로 기억되었다. 그는 언제나 정복당한 수메르인들과의 화해를 추구하며, 그들의 문화와 종교, 언어를 존중하고 흡수하려 했고, 백성들이 원치 않는 통치자를 강요하지 않으려 노력했다.

그러나 그의 아들이자 후계자인 리무시(Rimush)는 아버지와는 전혀 다른 부류의 인물이었다. 리무시는 아카드인들로만 구성된 총독 그룹을 앉히려 했고, 이에 분노한 수메르인들은 결국 왕에 대해 반기를 들었다. 수메르 지배자들이 이끄는 자발라, 아답, 움마, 키딩기라, 우르, 라가시 등의 도시들이 무기를 들었는데, 그중에는 아버지의 오랜 숙적이었던 아답의 메스키갈라(Meskigala)가 특히 두각을 나타냈다. 사르곤은 한때 그의 목숨을 살려주고 직위에 유임시켰던 인물이었다.

기록에 남겨진 처참한 전쟁의 결과

전쟁의 결과는 수메르인들에게 불리했고, 그들은 다시 예속당했다. 리무시가 남긴 자신 과시용 기록들이 제공하는 수치는 놀랍다. 아답과 자발라에서는 15,718명이 사망하고 14,576명이 포로 및 강제 이주 대상이 되었으며, 움마와 키딩기라에서는 8,900명이 사망하고 3,450명이 포로로 잡히고 3,600명이 강제 이주당했다. 라가시와 우르에서는 8,040명이 사망하고 5,460명이 포로가 되었으며 5,985명이 추방되었다. 또 다른 기록에는 세 차례의 전투에서 수메르 연합군이 11,322명이 사망하고 10,680명이 포로로 잡히며 14,100명이 강제 이주당했다고 적혀 있다. 참고로 당시 우르 같은 도시의 인구는 평균 5만 명 정도였다고 한다.

최초의 강제 수용소

전투로 약 5만 명이 목숨을 잃은 것으로 추정된다. 그리고 바로 그 시기, 후방을 안정시키기 위해 리무시는 우리가 아는 최초의 강제 수용소를 만들었고, 그곳에는 35,000명이 넘는 사람들이 수용되어 있었다. 이곳이 강제 노동 수용소였는지, 아니면 단순한 절멸 수용소였는지는 명확히 알려져 있지 않다. 리무시의 기록은 이 수용소를 "아나 가라 시임 이쉬쿤(A-na ga-ra-si-im ish-kun)"이라는 말로 정의하지만, 수메르학자들은 아직도 그 번역의 의미를 두고 논쟁 중이다. 어느 쪽이든 수천 명의 인간이 그곳에서 목숨을 잃었다는 사실은 변함없다.

9년간의 통치 끝에 리무시는 쿠데타로 돌로 만든 인장에 머리를 맞아 비명에 사망했다. 4,000년이 지난 지금도 우리는 크게 변하지 않았다.

글: 조슈아 베드위어(Joshua BedwyR), 『In a Dark Blue World』 저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