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세기에 이미 존재했던 '현대식' 임신 테스트 기술
밀 씨앗에 소변을 부어 발아 여부로 임신을 확인하던 고대의 민간 요법 이야기가 아닙니다. 오늘날과 똑같은 기술 원리, 즉 나노기술을 활용한 임신 테스트가 실제로 4세기에 가능했을 수 있다는 사실, 알고 계셨나요?
나노기술이란 무엇인가?
필자는 이 분야 전문가는 아니지만, 본격적인 이야기에 앞서 나노기술의 정의부터 짚고 넘어가겠습니다.
나노기술은 물리학, 화학, 컴퓨터 과학, 의학, 생물학 등 다양한 과학 분야에 적용할 수 있도록 물질을 원자·분자(나노) 수준에서 연구하고 조작하는 기술을 말합니다.
따라서 4세기에 원자와 분자를 연구하고 조작했다는 주장은 터무니없거나 미친 짓처럼 들릴 수 있습니다. 하지만 리쿠르고스의 잔(Lycurgus Cup)이 바로 이 수수께끼를 풀어주는 열쇠입니다.
리쿠르고스의 잔: 4세기의 나노기술 걸작
그리스 신화에 따르면 트라키아의 왕 리쿠르고스는 술의 신 디오니소스와 갈등을 빚었던 인물입니다(맥주를 좋아했기 때문일지도 모르죠). 4세기에 제작된 이 수정 유리잔은 포도나무 가지에 갇힌 왕의 형상이 새겨져 있어 '리쿠르고스의 잔'이라 불립니다.
이 잔은 이색성(dichroism)이라 불리는 특징을 지니고 있는데, 앞에서 빛을 비추면 옥색으로, 뒤에서 비추면 붉은색으로 변합니다.

현미경으로 밝혀진 비밀: 금과 은 나노입자
이 미스터리를 설명하려면 4세기 예술가이자 과학자들의 관점에서 바라봐야 합니다. 그들은 나노기술이라는 개념조차 알지 못했지만, 실제로 이 효과를 만들어냈기 때문입니다.
잔의 구성 성분을 현미경으로 분석한 결과, 소다·석회·실리카 등 일반적인 유리 재료 외에 약 50나노미터(1나노미터는 10억분의 1미터에 해당) 크기의 은과 금 나노입자가 발견되었습니다. 빛과 나노입자의 상호작용 방식은 입자의 구성, 크기, 형태에 따라 달라지며, 은은 녹색을, 금은 붉은색을 만들어냅니다.
담긴 액체에 따라 색이 변하는 이유
그렇다면 잔에 담는 액체에 따라서도 색이 달라질까요? 나노기술의 '성배'로 불리는 이 잔을 관리하는 대영박물관은 원본 안의 액체 실험을 허용하지 않았습니다. 이에 연구진은 원본과 동일한 구성의 작은 잔을 직접 제작해 실험을 진행했고, 그 결과 예상대로 액체 종류에 따라 색이 변하는 것으로 확인되었습니다. 물을 넣으면 연한 녹색으로, 기름을 넣으면 붉은색으로 변했습니다.

고대인도 만들 수 있었던 최초의 임신 테스트
4세기 장인들에게 관심만 있었다면, 오늘날과 동일한 원리의 최초의 임신 테스트기를 발명했을지도 모릅니다. 현대의 임신 테스트기 역시 금 나노입자를 기반으로 하며, 그 목표는 소변 속 HCG 호르몬의 존재 여부를 감지하는 것입니다(임신 시 이 호르몬이 과잉 분비됩니다).
즉, 임신했다면 금 나노입자가 HCG 호르몬을 감지해 테스트기의 판정선이 리쿠르고스의 잔처럼 붉게 나타나고, 붉은 선이 나타나지 않으면 임신이 아니라는 뜻입니다.
출처: 고대인의 발명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