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럽의 역사

당신은 수메르의 선술집에서 왔나요? 고대 메소포타미아의 신나는 술 문화

인류 최고(最古)의 직업은 무엇일까?

흔히 인류 최고의 직업으로 매춘이 꼽히곤 하지만, 필자는 이에 의문을 품는다. 스스로를 '검은 머리 사람'이라 칭했던 수메르인들의 문화를 들여다보면 그럴듯해 보이기도 한다. 그들은 이 직업에 상당한 비중을 두었으니까 말이다. 하지만 최초의 설형문자 점토판부터 등장하는 또 다른 활동이 있다. 바로 팔꿈치를 들어 올리는 일, 즉 술과 관련된 모든 유흥 활동이다. 인류는 과일과 곡식을 채집하기 시작하면서부터 '발효'라는 묘한 화학 과정을 눈치챘을 가능성이 있다.

술이 흐르던 수메르의 연회

수메르인들은 파티를 좋아했다. 사랑을 나누고, 즐기고, 노래하고, 마시기를 즐겼다. 그리고 그 술에 도수가 있다면 더욱 좋았다. 수메르어로 연회를 뜻하는 단어는 '카스데아(kas-de-a)', 곧 '맥주를 따르다'라는 뜻이다. 이 벌떼의 주요 활동이 무엇이었을지 짐작할 수 있을 것이다. 알코올이 든 술자리는 사회의 모든 계층을 아울렀다.

상류층에서는 왕위에 오르기 전 선술집 주모였던 여왕 쿠그바우(Kug-Bau)의 사례를 들 수 있다. 우르남무(Ur-Nammu) 왕은 잔을 기울이는 사이사이에 주신(酒神) 찬가풍의 시를 지었다. 심지어 신들도 한잔에 동참했다. 여신 이난나(Inanna)가 신과 인간의 성스러운 법전인 'ME'를 차지하기 위해 신 엔키(Enki)를 만취시키고, 그 취중 혼란을 틈타 ME를 챙겨 도시 우루크로 달아난 일화가 대표적이다. 신전에서는 신들 자신이 매일 정교한 음식과 음료 의례를 요구했는데, 여기에는 각종 맥주와 포도주가 빠지지 않았다. 위대한 영웅 길가메시조차 선술집 주모 시두리(Siduri)의 위로와 조언에 의지했다.

당신은 수메르의 선술집에서 왔나요? 고대 메소포타미아의 신나는 술 문화

속담 속에 담긴 수메르인의 유머

술을 소재로 한 속담들이 전해진다. 유머러스한 것도 있고 지혜로운 것도 있다. 예컨대 목욕에 익숙하지 않은 사람을 가리켜 '손을 씻지 않고 맥주를 따르는 자'라고 불렀다. 대중적 농담의 한 예를 보자.

여우가 바다에 오줌을 누고 말했다. "여기 있는 건 전부 내 오줌이다."
술고래가 바다에 오줌을 누고 말했다. "여기 있는 건 전부 맥주다."

수메르의 운하가 많고 잘 관리되었던 것과 달리 도로 사정은 그렇지 못했던 것으로 보인다. "길은 나쁘다. 맥주는 좋다"라는 속담이 전해지기 때문이다. 또 다른 속담에는 "즐거움이란 맥주 마시는 것이요, 번거로움이란 여행 가는 것이라"고 적혀 있다. 상업적 사기도 이미 존재했음을 짐작하게 하는 격언도 있다. "맥주를 마신다는 자는 물을 마신다."

비싼 포도주와 야자술

수메르인들은 이미 포도주를 알고 있었지만 너무 비쌌다. 그럼에도 부유한 여성들은 마시는 것 외에 머리를 감는 데 사용했다. 몇 번 감고 나면 검은 머리카락이 햇빛에 은은한 색조, 혹은 구릿빛 반사광을 띠게 되었다고 한다. 다만 와인 냄새를 없애려고 어떤 향수를 썼는지는 알 수 없다. 야자술도 즐겨 마셨는데, 가장 귀하게 여겨진 것은 우루크산이었다. 그 도시는 대추야자 재배지로 유명했기 때문이다. 야자술은 전공을 세운 전사에게 포상으로, 혹은 투석병 같은 특수 병사들에게 격려의 의미로 하사되곤 했다. 야자술에는 일종의 남성다움의 상징성이 부여되어 자녀를 얻기 위한 물약의 재료로도 쓰였다.

30가지가 넘는 맥주, 그리고 비밀에 붙여진 제조법

하지만 발효주 중 가장 인기 있던 것은 맥주였다. 가장 가난한 사람도 한 잔 값은 낼 수 있었기 때문이다. 실제로 많은 신전과 궁전에서 맥주는 노동자의 일일 식량 배급에 포함되었다. 도시 우르는 성역에 속한 양조장으로 유명했다. 멀리까지 수출될 뿐 아니라 30가지가 넘는 종류가 생산되었다는 사실을 우리는 알고 있다. 연회에서 상석에 앉은 이들이 마시고, 명절(키스푸) 의식에서 조상에게 바치던 '연한 맥주'가 대표적이며, 그 밖에 '맑은 것'과 '탁한 것', '단 것'과 '쓴 것', 밀로 빚은 것, '검은 것'—수메르인이 구아니스보다 앞선 셈이다—등이 있었다. 대추야자, 올리브, 게를 넣은 좀 더 이색적인 종류도 있었다. 가장 흥미로운 점은 이것들이 어떻게 만들어졌는지 전혀 모른다는 것이다. 일부 특산품은 이름만 전해질 뿐이다. 양조 기술은 영업 비밀이었고, 이를 누설하면 사형에 처해졌다. 따라서 제조 과정의 세부 내용이 담긴 점토판이 발견되지 않는 것은 당연하다.

맥주의 여신 닌카시(Ninkasi)를 찬양하는 '닌카시 찬가'가 그 단서일 것으로 여겨진다. 그녀는 "신선하게 거품 이는 물에서 태어나 입을 채우고 마음을 충족시키는 여인"으로 묘사된다. 이런 수식어를 지어낸 사람이 제대로 서 있지 못한 상태였음은 분명하다. 찬가에는 제조 방법으로 보이는 내용이 담겨 있다. 뮌헨 공과대학교의 '탈바지(Tall Bazi)' 실험이나 펜실베이니아 대학교의 실험처럼 이를 재현하려는 시도가 있었지만 결과는 분명하지 않다. 막스 플랑크 연구소의 역사학자 페터 다머로프(Peter Damerow)에 따르면, 모든 실험은 찬가에 기술된 과정의 일부—물의 양 등—를 바꾸어야만 성공했다고 한다. 글을 쓴 이가 영업 비밀로 일부 세부 사항을 감췄거나, 오늘날의 재료가 당시와 같지 않기 때문으로 추정된다. 어느 쪽이든 점토판에 명시된 조건을 크게 바꾼 끝에야 겨우 도수 3.5도에 도달했을 뿐, 그 이상은 한 번도 이루지 못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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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메르에도 술집이 있었을까?

그렇다면 수메르인들에게 술집은 있었을까? 답은 '그렇다'다. 많은 여성들이 혼수 재산으로 주점을 열어 자신의 땅에서 생산한 포도주나 값싸게 집에서 빚은 맥주를 팔았다. 선술집은 항구와 도시의 출입구에 자리 잡는 경우가 많았는데, 주요 고객이 상인과 여행자였기 때문이다. 선술집은 단칸방에 불과한 곳도 있었지만, 여행자가 머물 수 있는 2층을 갖춰 여관 역할을 하는 곳도 있었다. 천막으로 덮인 중앙 안뜰을 두어 손님들이 술을 마시는 것은 물론 하프 연주자나 가수의 공연을 관람할 수 있게 한 곳도 있었다.

맥주는 원뿔형 바닥의 잔에 담겨 나왔다. 구멍이 뚫린 받침판에 꽂아 두기 위해서였다. 수메르 맥주는 찌꺼기가 많아 빨대로 마셨다. 체면을 세우는 수메르인이라면 누구나 개인용 빨대를 소유했지만, 현지에서 하나 빌릴 수도 있었다. 부유층은 귀한 재료로 만든 빨대를 사용했다. 우리가 아는 가장 유명한 것은 우르 왕실묘에서 출토된 푸아비(Puabi) 여왕의 것으로, 금과 청금석으로 만들어졌다. 또한 우리 문화권에서는 낯설지만, 고객은 '맥주 아내(beer wife)'라 불린, 매춘에 종사하던 현지 노예 여성의 서비스를 요구할 수도 있었다. 수메르인의 두 가지 취미—맥주 마시기와 사랑 나누기—가 함께 담긴 표현물들이 실제로 발견된 바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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맺으며

그러니 양질의 술 시음 문화를 발명하는 데 일조한 수메르인들에게 고마움을 전하자. 잔을 들고 외쳐보자. "내가 취했냐고? 투루루!" 아니면 아카드어로 말하자면…

샤키루 라마니? 투루룸!

『다크블루 월드(In a Dark Blue World)』의 저자 조슈아 베드위어(Joshua BedwyR) 제공