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러시아 월드컵의 진짜 주역은 선수가 아니라 VAR(비디오 보조 심판)이라는 평가가 지배적이었습니다. 경기장 곳곳에 설치된 카메라들이 촬영한 영상은 별도의 판독실로 전송되고, 비디오 판독 요원들은 골 득점 여부, 카드 퇴장, 페널티킥 판정, 선수 신원 확인 등 핵심 상황을 검토해 주심에게 알립니다. 지원은 주심의 요청 또는 판독 요원의 제안에 따라 이루어지며, 결과는 이어피스(earpiece)를 통해 주심에게 전달됩니다.
흥미롭게도 VAR을 두고 우리가 우려했던 것들과 달리, 최종 승부 결과 면에서는 예상보다 큰 변수가 되지 않았습니다. 물론 이 시스템 덕분에 월드컵 사상 가장 많은 승부차기 기록이 세워지긴 했죠. 그런데 왜 하필 2천 년 전 고대 로마의 검투사 경기에도 'VAR' 같은 것이 필요했다고 말하는 걸까요? 지금부터 그 이야기를 들려드리겠습니다.

경기장으로 내려가기 전에, 검투사 경기에 대해 몇 가지 짚고 넘어갈 부분이 있습니다. 앞서 우리는 엄지손가락 제스처에 대한 오해와 의식적인 인사말 "죽음을 앞둔 자들이 당신에게 인사합니다"에 대해 다룬 바 있습니다.
검투사 경기 그 자체는 본래 장례 의식이었습니다. 그 기원은 에트루리아 시대로 거슬러 올라가며, 당시에는 사랑하는 사람의 죽음을 추모하기 위해 죄수들 사이에서 이러한 형태의 대결이 벌어졌습니다. 즉, 오락 거리가 된 장례식이었던 셈입니다. 이후 동물끼리의 싸움, 동물과 인간의 대결 등이 추가되면서 이 쇼는 쇠퇴하지 않고 오히려 더욱 화려해졌습니다.
대부분의 대결은 '첫 피'를 확인하는 선에서 끝났고, 황제나 경기를 주관한 후원자의 자비로 목숨을 건질 여지도 있었기에 치명적으로 끝나는 경우는 드물었습니다. 이 모든 것이 철저히 '사업'이었다는 점을 생각해야 합니다. 대중의 호의를 얻고, 민심을 달래고, 특정 공직 선거에서 표를 얻기 위해 경기를 조직하고 자금을 댄 주최자들은 라니스타(lanista), 즉 검투사 학교 소유주에게서 검투사들을 빌려 썼습니다. 당연히 그 대가를 지불했는데요, 만약 검투사가 경기 중 죽으면 훨씬 더 많은 비용을 물어야 했습니다. 죽은 검투사만큼은 라니스타가 다른 경기에 다시 빌려줄 수 없는 귀중한 '전력'이었기 때문입니다. 그렇기에 검투사는 여러 차례 경기를 치르며 비용을 회수하고, 이것이 수익이 나는 사업이 되기를 바랐던 것입니다.
대진 추첨으로 맞상대가 정해지고 베팅이 오가면, 이제 경기장에는 검투사와 함께 수마 루디스(summa rudis)가 남았습니다. 규칙 준수를 감시하며 '페어플레이'를 보장하는 일종의 심판입니다. 대개 명성 높은 은퇴 검투사 출신이었던 이 심판들은 흰 예복을 입고, 목검(루디스)이나 채찍을 들고 다니며 불법적인 동작이 있으면 알렸고, 검투사가 부상당하면 경기를 중단시켰으며, 기세가 꺾인 검투사에게는 몸을 일으켜 다시 싸우라고 독려했습니다.

그런데 약 1800년 전, 디오도루스(Diodorus)와 데메트리우스(Demetrius), 두 검투사 사이에 벌어진 한 경기에서 예상치 못한 일이 일어났고, 그 비극은 디오도루스의 묘비명을 통해 오늘날까지 전해집니다.

묘비의 부조에는 두 자루의 검을 든 검투사가 쓰러진 상대 앞에서 자비를 구하는 모습이 새겨져 있으며, 함께 남겨진 비문은 다음과 같습니다.
"나는 상대 데메트리우스를 쓰러뜨린 뒤 그를 죽이지 않았다. 내 죽음은 운명과 수마 루디스의 판정이 불러온 것이다."
캐나다 세인트캐서린스 브록 대학교(Brock University) 교수이자 이러한 유형의 전투 연구 전문가인 마이클 카터(Michael Carter)는 해당 매장 유적을 분석한 끝에 다음과 같은 결론에 도달했습니다. 디오도루스가 데메트리우스를 쓰러뜨리자, 데메트리우스는 땅에 손을 뻗어 자비를 구하는 항복의 표시를 했다는 것입니다. 디오도루스는 이미 승리했다고 확신해 상대를 죽이지 않았지만, 수마 루디스는 데메트리우스가 패배한 것이 아니라 실족한 것으로 해석하고 경기 재개를 명령했습니다. 데메트리우스는 디오도루스에게서 장비를 되찾았고, 결국 디오도루스를 죽였습니다. 이 참혹한 장면을 목격한 죽은 검투사의 지인 중 누군가가, 후손들이 그 치명적인 오심을 잊지 않도록 묘비와 비문을 의뢰한 것이겠지요.
확실히 디오도루스도 VAR 판독을 요청했더라면... 하는 아쉬움이 남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