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럽의 역사

카이사르를 견제한 로마의 '갱스터' 정치인, 푸블리우스 클로디우스 풀케르

로마 공화정 말기, 원로원 귀족(파트리키) 가문 출신임에도 평민의 수호자를 자처하며 거리 폭력과 포퓰리즘으로 정치를 농단한 인물이 있다. 바로 푸블리우스 클라우디우스 풀케르(Publius Claudius Pulcher), 후대에 클로디우스(Clodius)로 더 잘 알려진 남자다. 그는 '갱스터 정치인'의 원형이라 불릴 만큼 패거리 정치와 폭력을 일삼았으며, 키케로를 유배 보내고 카이사르의 이혼을 초래하는 등 로마 정국을 뒤흔든 장본인이다.

망나니 귀족에서 '보나 데아' 성모독 사건의 주범으로

부유한 클라우디우스 가문에서 태어난 그는 젊을 적 아시아 속주에서 평범한 군 복무를 마친 뒤, 본국으로 돌아와 방탕한 생활로 악명을 떨쳤다. 카틸리나 탄핵 재판에서 뇌물로 무죄를 받아낸 일화는 그의 행실을 잘 보여준다. 20살 연하의 풀비아 밤발리아와 결혼해 잠시 안정을 찾는 듯했으나, 기원전 62년 그가 저지른 '보나 데아(Bona Dea) 성모독 사건'은 그의 인생을 송두리째 바꿔놓았다.

해마다 12월 사투르날리아 축제 기간, 법무관 관저에서는 여성만이 참여하는 보나 데아 여신 제의가 열렸다. 당시 법무관이자 폰티펙스 막시무스(대제사장)였던 율리우스 카이사르의 아내 퐁페이아(Pompeia)가 제의를 주관했다. 남성의 출입은 엄격히 금지되어 있었으나, 클로디우스는 여장을 하고 관저에 잠입했다가 발각되었다. 이는 단순한 해프닝이 아닌, 국가 종교를 모독한 중대 범죄(성모독, incestum)였다.

키케로의 신랄한 기소에도 불구하고, 그는 막대한 뇌물을 뿌려 배심원들을 매수해 무죄 판결을 받아낸다. 이 사건으로 그는 보수 귀족파(옵티마테스)와 완전히 결별했고, 카이사르는 "카이사르의 아내는 의혹조차 받아서는 안 된다"는 유명한 말을 남기며 퐁페이아와 이혼했다.

귀족 신분 포기, 평민 호민관이 되다

가문과 결별한 클로디우스는 과감한 승부수를 던진다. 자진해서 평민 가문(플레브스)에 양자로 들어가 이름마저 귀족적인 '풀케르(Pulcher)'에서 평민적인 '클로디우스(Clodius)'로 개명했다. 이는 평민 호민관 출마 자격을 얻기 위한 치밀한 계산이었다.

기원전 59년, 카이사르가 갈리아 총독으로 부임하자 그는 호민관에 당선된다. 취임 첫날부터 옵티마테스와 정면충돌하며 곡물 무상 배급법 등 파격적인 포퓰리즘 정책으로 민심을 장악했다. 더 나아가 로마의 길드 조직인 콜레기아(collegia)를 배후 조종해 폭력단을 결성, 거리를 장악하고 정적들을 위협했다. 특히 보나 데아 재판에서 자신을 공격했던 키케로를 표적으로 삼아, 그의 집을 헐고 재산을 몰수했으며 결국 키케로를 유배지로 내몰았다.

비아 아피아에서의 최후, 그리고 풀비아의 복수

그가 풀어놓은 폭력의 소용돌이는 결국 자신을 삼켰다. 정적 밀론(Titus Annius Milo) 역시 패거리를 거느리고 맞섰고, 기원전 52년 1월 18일 비아 아피아에서 양측 패거리가 충돌하는 난투극 끝에 클로디우스는 살해당했다. 영화 <갱스 오브 뉴욕>을 연상케 하는 거리 전투였다.

민중은 자신을 위해 입법했던 '영웅'의 죽음을 애도하며 포룸에서 장례식을 치렀고, 밀론은 재판에 넘겨졌다. 재판정에서 클로디우스의 부하들(이제 그의 아내 풀비아에게 충성)은 판사와 밀론 지지자들을 협박했고, 키케로조차 변론(밀론 변론, Pro Milone)을 포기할 정도였다. 밀론은 유죄 판결을 받고 유배되었으며, 풀비아는 키케로에 대한 복수를 맹세했다.

풀비아, 제2차 삼두정치에서 키케로를 단두대에 세우다

기원전 43년, 레피두스, 옥타비아누스, 그리고 풀비아의 세 번째 남편이 된 마르쿠스 안토니우스가 제2차 삼두정치를 수립하고 숙청 명단(프로스크립티오)을 작성했다. 풀비아는 이 명단에 마르쿠스 툴리우스 키케로의 이름을 올리는 데 성공했다. 키케로는 포르미아이 별장 근처에서 백부장 헤렌니우스에게 처형당했다(기원전 43년 12월 7일).

키케로의 머리와 오른손이 로스트라(연단)에 못 박혀 전시되었을 때, 카시우스 디오의 <로마사>에 따르면 풀비아는 두 자녀를 데리고 와 머리카락을 고정하던 핀을 뽑아 키케로의 혀를 찌르며 차가운 복수를 완성했다. 이로써 클로디우스가 생전에 시작하고 아내가 마무리한, 로마 공화정 최대의 웅변가와의 지독한 악연이 끝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