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럽의 역사

로마 군단병은 왜 데나리우스 급여를 거부했을까? 화폐 평가절하와 솔리두스의 탄생

공화정 시대의 로마는 탁월한 농경 사회였습니다. 당시 군단의 뿌리는 평소에는 자기 밭을 가꾸다가 전쟁이 발발하면 징집되는 자유 시민들이었습니다. 하지만 이런 '시간제 군대' 모델로는 로마가 착수한 수많은 장기 정복 전쟁과 정복지 주둔 임무를 감당할 수 없었습니다. 결국 군단은 상비직업군으로 재편될 수밖에 없었고, 그 첫 번째 결과는 경제적인 것이었습니다. 사실상 직업군인이 된 병사들에게 '스티펜디움(stipendium)'이라 불리는 정기 급여를 지급해야 했던 것입니다. 그렇다면 이 막대한 재원은 어디서 마련했을까요? 답은 단순했습니다. 남에게 비용을 치르게 하는 것.

로마 군단병은 왜 데나리우스 급여를 거부했을까? 화폐 평가절하와 솔리두스의 탄생

정복지가 바치던 공물, 스티펜디움

로마의 독수리가 당신의 영토에 모습을 드러냈다면, 부족 회의는 신중한 결정을 내려야 했습니다. 로마와 조약을 맺을 것인가, 아니면 강력한 군단과 정면으로 맞설 것인가. 여러 선택지 중 가장 유리한 것은 '자유 도시(Civitates Liberae)'의 지위를 얻는 것이었습니다. 자치 정부를 유지하는 대신 로마에 세금을 낼 필요가 없었기 때문입니다. 내정에서는 독립을 지키고 외교에서만 로마에 의존하는 '포에데라티(동맹)' 지위도 나쁘지 않았습니다. 대신 로마의 적이 곧 당신의 적이 되며, 패전 시에는 보조 병력을 제공할 의무를 져야 했습니다. 그리고 회의에서 전쟁을 주장하는 목소리가 우세했다면 운명은 이미 정해져 있는 셈입니다. 언젠가 정복당해 '스티펜디아리아에(stipendiariae)'가 되어, 로마가 임명한 총독의 통치 아래 돈과 곡물 형태의 조공을 바쳐야 했던 것입니다. 이 가운데 화폐로 납부된 조공, 즉 '스티펜디움'은 정작 그 영토를 정복한 군인들에게 지급되었습니다. 논리적으로 데나리우스(denarius)로 지급되었겠죠. 바로 '돈'을 뜻하는 스페인어 '디네로(dinero)'의 어원이 된, 로마 화폐 제도의 근간을 이루던 은화였으니까요.

데나리우스의 평가절하, 잔혹한 인플레이션의 서막

무게 약 4.5g에 거의 순은으로 주조된 데나리우스는 기원전 3세기부터 주조되기 시작해 태초부터 로마 경제 정책의 핵심 주인공이었습니다. 특별한 재정이 필요할 때마다 로마는 세금을 인상하거나 데나리우스의 가치를 떨어뜨렸습니다. 당시 주화의 가치는 무게와 함유 금속의 양에 따라 결정되었으므로, 평가절하 방법은 간단했습니다. 주화에 들어가는 은의 양을 줄여 무게를 줄이면 끝. 기원전 145년에 데나리우스의 무게는 3.9g으로 줄었고, 네로 황제 시대에는 3.41g에 그쳤습니다. 같은 양의 은으로 더 많은 동전을 주조해 더 많이 소비할 수 있게 된 것입니다. 여기에 더해 데나리우스는 더 이상 순은이 아니었습니다. 은이 가치가 낮은 금속과 섞여 사용되었기 때문입니다(카라칼라 황제 시대에는 한 데나리우스의 은 함량이 50%에도 미치지 못했습니다). 이로써 잔혹한 인플레이션의 재료가 모두 갖춰진 셈입니다.

황제가 명한 평가절하 외에도, 지중해 연안에서 흔히 볼 수 있던 또 다른 평가절하—바로 시민들 자신에 의한 평가절하—가 있었습니다. 귀금속으로 만들어진 동전이었기에, 서커스도 빵도 누리지 못한 소외 계층은 동전의 가장자리를 깎아 녹인 뒤 금속 조각을 팔았습니다. 실제로 당시 민간 은행가를 뜻하는 아르겐타리우스(argentarii)의 업무 중 하나는 수많은 사람의 손을 거치며 무게와 가치를 잃은 변질 동전을 걸러내는 일이었습니다. 오늘날 우리 동전 일부에는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도입된 방법의 흔적이 남아 있습니다. 바로 동전 가장자리에 능선(톱니)을 새겨 깎기 조작을 육안으로 드러내게 한 것입니다.

솔리두스, '급료'라는 단어의 탄생

로마 군단병은 왜 데나리우스 급여를 거부했을까? 화폐 평가절하와 솔리두스의 탄생

솔리두스(solidus)

연이은 인플레이션은 당연히 인구, 특히 데나리우스로 급여를 받던 노동자들의 불만을 샀습니다. 그 정점에는 제국 안에서 그 수와 중요성 덕분에 목소리가 컸던 군인들이 있었습니다. 이들은 4세기에 들어 더 안정적이고 신뢰할 수 있는 통화로 급여를 받겠다고 요구했습니다. 이에 황제 콘스탄티누스 1세는 다른 선택지가 없었습니다. 솔리두스(solidus)라 불리는 금화를 주조한 것입니다. 군단의 봉급은 이제 이 금화로 지급되기 시작했습니다. 이렇게 새 통화의 이름은 군인들에게, 그리고 이후 일자리를 위해 고용된 모든 사람들에게 정기적으로 지급되는 보수를 가리키는 말이 되었습니다. 오늘날 우리가 부르는 '급료'의 어원인 셈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