멜 깁슨이 감독·제작·주연을 맡아 오스카 최우수 작품상을 수상한 영화 『브레이브하트』 덕분에 스코틀랜드의 국민 영웅 윌리엄 월리스는 전 세계에 널리 알려지게 되었습니다. 풍부한 예술적 허용과 일부 역사적 사실을 담은 이 영화는 1470년경 시인 블라인드 해리(Blind Harry)가 집필한 서사시 『The Actes and Deidis of the Illustre and Vallyeant Campioun Schir William Wallace』를 기반으로 하며, 이후 시인 윌리엄 해밀턴이 각색하면서 큰 인기를 얻었습니다.
역사 속 실존 인물 윌리엄 월리스에 대해 우리가 알 수 있는 사실은 다음과 같습니다. 그는 어느 정도 교육을 받은 평민 출신으로 잉글랜드 점령에 맞서 일어섰고, 1297년 스털링 다리 전투에서 잉글랜드군을 격파했습니다. 이때 처음부터 월리스와 함께 싸웠으나 이 전투에서 전사하여 영화 속에서는 잊혀진 또 다른 영웅, 앤드류 모레이(Andrew Moray)가 있었다는 사실도 함께 기억할 가치가 있습니다. 다음 해 월리스는 폴커크 전투에서 에드워드 1세에게 패배했고, 프랑스에서 돌아온 뒤 체포되어 몸이 4등분되는 잔혹한 형벌로 생을 마감했습니다. 이것이 역사적 월리스의 결말이자 영화의 마지막 장면입니다.
그리고 영화가 끝나는 바로 그 지점에서, 진정한 '브레이브하트'의 전설이 시작됩니다. 바로 로버트 브루스(Robert the Bruce)입니다.

배넉번 전투의 로버트 브루스
이 전설은 어디서 유래되었으며, 왜 하필 로버트 브루스일까요?
잉글랜드와 게릴라전을 벌인 끝에 로버트 1세로 즉위한 그는 1314년 배넉번 전투(Battle of Bannockburn)에서 스코틀랜드군을 직접 이끌고 에드워드 2세를 물리쳤습니다. 스코틀랜드는 완전한 승리를 거두었지만, 독립이 온전히 인정된 것은 1328년 에든버러–노샘프턴 조약이 체결되면서였고, 이로써 로버트 브루스의 왕으로서의 지위도 확고해졌습니다. 그러나 그는 이 귀중한 결실을 오래 누리지 못했습니다. 불과 1년 후 세상을 떠난 것입니다.
임종 직전 그는 자신의 모든 죄에 대한 속죄인지, 아니면 평생 이루지 못한 십자군 원정의 소망 때문인지 알 수 없으나, 측근 제임스 더글라스 경(Sir James Douglas)에게 자신의 심장을 성지로 가져다줄 것을 부탁했고, 더글라스는 죽는 순간까지 그 약속을 지키겠다고 맹세했습니다.
로버트 브루스의 시신이 던펌린(Dunfermline) 수도원에 안장될 무렵(그의 유해는 1818년 발굴되었고, 흉곽이 절개된 상태였음이 확인되었습니다), 더글라스는 다른 신사들과 함께 성지로 향하는 여정에 나섰습니다. 그리고 브루스의 심장은 납 용기에 담긴 채 사슬로 묶여 그의 가슴에 걸렸습니다.
불행하게도 그들은 성지까지 도달하지 못하고 이베리아 반도에 머물렀습니다. 스페인 테바(Teba)에서 벌어진 무어인에 대한 십자군 전투에 참여하게 된 것입니다.
무어인의 우세한 병력과 낯선 공격 전술은 스코틀랜드인들을 당황하게 만들었습니다. 전투 중 제임스 더글라스는 적에게 포위되었고, 죽음이 눈앞에 다가온 순간 그는 가슴에 걸어 둔 심장이 든 용기를 고정한 사슬을 붙잡더니 외치며 적진 한가운데로 던져 버렸습니다.
"용감한 심장이여, 앞서 가라! 나는 너를 따르지 않고서는 죽을 수 없다."

심장을 던지는 제임스 더글라스
더글라스의 시신과 로버트의 심장은 장례를 위해 스코틀랜드로 운송되었고, 심장은 멜로즈 수도원(Melrose Abbey)에 묻혔습니다. 1921년 멜로즈 수도원 발굴 과정에서 원뿔형 납 용기가 발견되었지만 다시 매장되었고, 1996년 재발굴되었습니다. 히스토릭 스코틀랜드(Historic Scotland)는 이것이 로버트 브루스의 심장인지 여부를 단정하기 어렵다고 밝혔습니다. 결국 1998년 6월 22일, 같은 장소에 다시 안치되었습니다. 이틀 후, 배넉번 전투에서 브루스가 승리한 것을 기념하는 날, 스코틀랜드 국무장관은 심장이 묻힌 자리에서 세인트 앤드류의 십자가와 심장이 얽힌 문양의 명판을 발견했습니다.
"자유가 없으면 고귀한 마음은 평화로울 수 없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