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66년, 잉글랜드 왕 참회왕 에드워드가 후계자를 남기지 못한 채 세상을 떠나면서 왕위 계승 문제가 수면 위로 올라왔습니다. 에드워드는 생전에 노르망디 공작 윌리엄과 체결했던 계약을 파기하고, 대신 해럴드를 새 왕으로 옹립했습니다.
이에 분노한 윌리엄은 자신이 이 섬의 정당한 소유자라고 주장하며 1066년 잉글랜드를 침공했습니다. 같은 해 10월 14일, 색슨군과 노르만군은 헤이스팅스에서 격돌했습니다. 전투는 하루 종일 이어졌고, 해럴드 왕이 눈을 꿰뚫은 화살에 맞아 전사하면서 마침내 승부가 갈렸습니다. 승리한 노르망디 공작은 '정복자 윌리엄'이라는 별명을 얻었으며, 잉글랜드의 윌리엄 1세로 즉위했습니다. 색슨 왕조는 막을 내리고 노르만 왕조의 시대가 열렸습니다.

대관식에서 윌리엄은 잉글랜드의 기존 법률과 관습을 준수하겠다고 공언했습니다. 그의 통치는 질서와 평화로 특징지어졌지만, 한편으로는 폭력과 잔혹함이 바탕이 되어 신하들 사이에서 인기가 크게 떨어졌습니다.
1087년, 프랑스 루앙(Rouen)에서 전투가 벌어지던 중 윌리엄의 말이 불길에 놀라 갑자기 멈춰 섰고, 앞으로 쏠린 그의 몸은 안장에 크게 부딪혔습니다. 당시 윌리엄은 극도로 비만한 상태였다는 점을 기억할 필요가 있습니다. 이 사고로 장(腸)이 천공되었고, 장 내용물이 복강으로 흘러들어가 복막염이 발생했습니다. 며칠간의 극심한 고통 끝에 그는 1087년 9월 9일 세상을 떠났습니다.
그러나 진짜 비극은 장례식에서 시작되었습니다. 시체가 매장될 캉(Caen)의 성 스테판 교회에 도착했을 때, 그것은 마치 '시한폭탄'과 같았습니다. 고름, 장 내용물, 부패로 인한 가스까지… 게다가 몸이 너무 심하게 부어올라 돌로 된 석관에 들어가지도 않았습니다. 참석자들은 시체를 밀어 넣고 압박하는 것 외에는 다른 방법을 찾지 못했고, 결국 시체가 폭발하듯 터지면서 내용물이 사방으로 쏟아져 나왔습니다. 구역질과 구토가 끊이지 않았고, 처참한 악취가 교회 전체에 감돌았습니다.
출처: BBC, History Learning Site, Royal History