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럽의 역사

얼음 위에서 침몰한 십자군 — 1242년 페이푸스 호수 전투와 알렉산드르 넵스키

십자군이라 하면 흔히 성지에서 이교도에 맞서 벌인 군사 작전만을 떠올립니다. 그러나 십자군 운동은 유럽 내부에서도 활발하게 전개되었습니다. 스페인 역사가 후안 안토니오 세브리안(Juan Antonio Cebrián)이 '남부 십자군'이라 명명한 레콩키스타(재정복 운동), 카타르파를 상대로 한 알비 십자군, 그리고 이번 글의 주인공인 발트 지방의 '얼음 십자군'이 그것입니다.

얼음 위에서 침몰한 십자군 — 1242년 페이푸스 호수 전투와 알렉산드르 넵스키

1230년대 말, 몽골 제국은 피와 불로 러시아를 휩쓸며 엄청난 인명 피해를 입히고 루스를 이루던 영토 대부분을 정복했습니다. 발트해와 우랄 산맥 사이에 위치한 자치 국가 노브고로드 공화국만은 간신히 독립을 유지할 수 있었습니다. 나폴레옹과 히틀러의 실패가 보여주듯, 러시아 침공은 언제나 위험한 모험이었기 때문입니다.

'어부지리'라는 말이 딱 들어맞는 상황이었습니다. 가톨릭 교회는 동방 정교회 세계가 초토화된 이 시기를, 발트 공화국과 러시아 전역에 흩어진 정교회 신도들을 자신들의 교세 아래로 끌어들일 절호의 기회로 여겼습니다. 튜턴 기사단의 기사들이 이끄는 이 십자군에 스웨덴과 덴마크도 보다 세속적인 목적으로 합류했고, 그들의 공동된 야심은 곧 동방으로의 확장이었습니다.

알렉산드르 야로슬라비치와의 첫 대결은 스웨덴군과의 충돌이었습니다. 노브고로드 군을 이끈 알렉산드르는 네바 강변에서 스웨덴군을 격파했고, 이 승리를 계기로 그는 알렉산드르 넵스키(Aleksandr Nevski, '네바의 알렉산드르')라는 이름으로 역사에 남게 됩니다.

그러나 진짜 시련은 아직 남아 있었습니다. 바로 튜턴 기사단입니다. 1242년 4월 5일, 페이푸스 호수(Lake Peipus)는 아직 얼음으로 덮여 있었지만, 봄이 다가오면서 만년설 일부는 이미 부서지기 쉬운 상태였습니다. 호수 위를 가로지르는 중무장 기사단의 장엄한 행렬은, 준비도 장비도 부족한 알렉산드르의 군대와 극명한 대조를 이루었습니다.

알렉산드르는 적의 공세를 막아낼 수 있는 지형을 미리 물색해 두었습니다. 십자군은 정면 돌격으로 방어선을 순식간에 무너뜨렸고, 모든 것이 끝난 듯 보이던 바로 그 순간—십자군은 거대한 함정 속에 빠져 있었음을 깨달았습니다. 날개에서 밀려드는 노브고로드군의 반격에 포위된 기사들은 진형을 재편해 다시 공격하려 했으나, 후퇴는 급속히 무질서한 도주로 변해갔습니다.

알렉산드르의 병사들은 패주하는 기사들을 갑옷과 말의 무게를 얼음이 감당하지 못하는 취약 구간으로 몰아붙였습니다. 마침내 얼음이 깨졌고, 수많은 십자군이 얼음 아래로 가라앉았습니다. 익사하거나 혹한 속에 얼어붙은 채 생을 마감한 이들이 속출했고, 처참한 참패를 확인한 십자군은 결국 동진을 포기한 채 물러났습니다.

이 전투는 튜턴 기사단의 동방 확장을 저지한 결정적 사건으로 평가되며, 승리의 설계자 알렉산드르 넵스키는 오늘날까지 러시아를 대표하는 국민적 영웅으로 추앙받고 있습니다.

이미지 출처: 텀블러(Tumbl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