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럽의 역사

이민자가 이민자를 박해하던 시절, 애리조나 이민법이 되살린 역사의 경고

애리조나주(미국)가 승인한 이민 관련 법안은 최소한의 의심만으로도 서류미비 이민자를 구금할 수 있도록 허용하고 있습니다. 흥미롭게도 히스패닉 인구의 3분의 1이 이 논란의 법안에 찬성하고 있는데, 그 이면에는 잊혀진 역사가 자리하고 있습니다.

크리스 에델슨(Chris Edelson) 워싱턴대 시민권·자유학 교수를 비롯한 전문가들은 이 법안이 자의적인 수색과 구금을 금지하는 미국 수정헌법 제4조를 위반할 가능성이 크다고 경고하고 있습니다. 수정헌법 제4조는 법집행관이 체포에 나서기 전 상당한 이유(probable cause) 또는 영장 발부를 요구하는 조항입니다.

역사는 이러한 '박해자'가 한때 스스로 '불법 이민자'였던 시기가 있었음을 일깨워 줍니다.

1821년 9월 28일 독립법 서명으로 멕시코의 독립이 완성된 뒤, 최초의 군주 아구스틴 1세(Agustín de Iturbide)를 정점으로 하는 첫 번째 멕시코 제국이 세워졌습니다. 제국은 북아메리카의 텍사스, 오레곤, 캘리포니아, 뉴멕시코, 와이오밍, 콜로라도 등 구 뉴스페인 부왕령 영토와 중앙아메리카까지 합쳐 약 500만 평방킬로미터에 달했지만, 인구는 극히 희박했습니다.

멕시코 정부는 부왕령 시절의 정책을 계승해 이 광대한 땅에 정착할 '합법적' 이민자의 유입을 장려했습니다. 이들 대부분은 이웃 나라 미국 출신이었습니다. 그러나 멕시co의 개방적 이민 정책은 미국의 팽창주의적 욕망과 맞물려, 멕시co 헌법이 완전히 금지한 노예까지 포함한 불법 이민자 유입이라는 결과를 낳았습니다.

정부가 이른바 '평화로운 침략'과 국법 위반을 종식시키려 했을 때는 이미 너무 늦었습니다. 1830년, 미국인과 노예를 포함한 이민자 인구는 이미 텍사스 원주민 인구를 초과한 상태였습니다.

1832년 이들은 미국에 합류하기 위해 멕시co로부터의 분리독립을 요구했습니다. 4년 후 산타아나 장군은 알라모(텍사스)에서 반군을 격파했습니다. 이후의 역사는… 이미 잘 알고 계실 것입니다. 그리고 중요한 사실 하나, 당시 애리조나는 뉴멕시co의 일부였습니다.

그렇다면 오늘날 애리조나에 사는 히스패닉계 주민들이 과거 그들처럼 영토 합병을 요구하며 독립을 외칠 것이라고 생각하십니까? 이들은 가족을 부양할 기회를 찾는 것일 뿐이며, 때로는 노예와 다름없는 대우를 받기도 하는 사람들입니다.

피비린내 나는 역사의 반복을 막는 열쇠는 바로 이 기억에 있습니다.

출처: Carlos Salas – 엘문도(El Mund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