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럽의 역사

독일군과 영국군이 두고두고 다퉜던 한 개의 해골

식민지 시대와 음콰와 족장의 저항

제1차 세계대전 당시 오늘날 탄자니아 대부분의 지역과 르완다, 부룬디는 독일령 동아프리카라 불리는 독일의 식민지였습니다. 이 식민지는 1885년에 설립되었으며, 독일은 부족 족장들의 협조를 얻어 통치하려 했지만 일부 부족은 끝까지 저항했습니다.

그중 가장 유명한 인물은 탄자니아 지역 헤헤족의 지도자였던 음콰와 족장(Mkwavinyika Munyigumba Mwamuyinga)입니다.

독일군과 영국군이 두고두고 다퉜던 한 개의 해골

1891년, 음콰와는 활과 창만으로 무장한 채 독일군 대대 하나를 격파하는 기적적인 승리를 거두었습니다. 3년 후 독일군은 음콰와가 숨어 지내던 칼렝가(Kalenga) 요새를 파괴했지만, 그는 요새 함락 직전 탈출에 성공했고, 이후 4년간 게릴라전을 펼치며 독일군을 크게 괴롭혔습니다. 결국 추격에 몰린 음콰와는 포획되기 직전 스스로 목숨을 끊었습니다. 그리고 그의 해골은 전리품으로서 베를린으로 보내졌습니다.

레토보르베크 장군과 동아프리카 전선

제1차 세계대전이 발발하자 폴 폰 레토보르베크(Paul von Lettow-Vorbeck) 장군이 독일령 동아프리카로 파견되었습니다. 그는 유럽인 병사 3,000명과 아스카리(askari, 원주민 병사) 11,000명으로 구성된 부대를 이끌고, 무려 20만 명이 넘는 강력한 영국군을 막아내는 데 성공했습니다.

레토보르베크는 끝내 단 한 번의 패배도 당하지 않았으며, 마침내 그를 멈추게 한 것은 아프리카가 아닌 유럽 본토에서의 독일 항복이었습니다.

베르사유 조약 제246조, 해골 반환 명령

1919년 체결된 베르사유 조약은 제1차 세계대전의 공식적인 종결을 알린 평화조약입니다. 그런데 놀랍게도 이 조약에는 음콰와 족장이 다시 등장합니다. 정확히 말하면, 그의 해골이요. 조약 제246조에는 다음과 같이 명시되어 있습니다.

"본 조약 발효 후 6개월 이내에 [...] 독일은 동아프리카 보호령에서 옮겨져 독일 국내로 운송된 술탄 음콰와의 해골을 반환해야 하며, 같은 기간 내에 이를 영국 왕립 정부에 송부하여야 한다."

독일군과 영국군이 두고두고 다퉜던 한 개의 해골

음콰와의 해골

38년 만에 이루어진 귀환

그러나 독일은 쉽게 의무를 이행하지 않았습니다. 상황이 풀리지 않던 중, 1953년 브레멘 박물관에서 무려 2,000개에 달하는 해골 컬렉션이 발견되면서 실마리가 잡혔습니다. 연구를 통해 후보를 몇 개로 좁혀 나갔고, 그중에서 총알 구멍이 뚫려 있는 유일한 해골을 찾아냈습니다. 바로 자결 당시의 흔적이 남아 있는 음콰와 족장의 해골이었습니다.

마침내 1954년 7월 9일, 이 해골은 고향인 탄자니아 이링가(Iringa) 시 인근의 음콰와 기념 박물관(Mkwawa Memorial Museum)으로 옮겨졌습니다. 식민 지배에 맞서 싸운 한 영웅의 유해가 고국으로 돌아오기까지 무려 반세기 가까운 시간이 걸린 셈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