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러 유럽 국가들 사이의 영토 분쟁은 결코 낯선 일이 아니지만, 문제의 영토가 불과 5개월 동안만 존재했다면 이야기는 완전히 달라집니다. 바로 그레이엄 섬, 줄리아 섬, 페르디난디아 섬 — 주권을 주장한 나라에 따라 이름이 달라지는 이 섬의 실체는 엠페도클레스(Empedocles), 즉 시칠리아에서 남쪽으로 약 30km 떨어진 거대한 해저 화산입니다. 봉우리는 해수면에서 몇 미터 아래에 잠겨 있으며, 그 이름은 고대 그리스 철학자 엠페도클레스에게서 따온 것입니다. 이 화산이 순식간에 섬으로 모습을 드러낸 사건 가운데 가장 오래된 기록은 기원전 3세기, 제1차 포에니 전쟁 때까지 거슬러 올라갑니다.

페르디난디아
그렇다면 이 이야기를 주목할 이유는 1831년의 폭발에 있습니다. 이번 폭발로 용암이 바닷속에서 식으면서 하룻밤 사이에 길이 4km, 면적 1.6km², 최대 높이 60m의 섬이 솟아올랐고, 섬 안쪽에는 작은 호수 두 개까지 생겨났습니다.
1831년 8월 2일, 바다에서 솟아오른 섬이 아직 완전히 식지 않았을 무렵, 영국 선장 험프리 플레밍 센하우스(Humphrey Fleming Senhouse)는 몰타에서 출항해 이 섬에 영국 국기를 꽂고 그레이엄 섬(Graham Island)이라 명명합니다. 이어 8월 17일에는 양시칠리아 왕국의 페르디난도 2세(나폴리와 시칠리아를 아우르던 왕국으로, 스페인 부르봉 왕가의 주권 아래 있었으며 1861년 이탈리아 왕국에 편입됩니다)의 배가 섬에 도착해 영국 국기를 걷어내고 자국 국기를 세운 뒤, 섬의 이름을 페르디난디아(Ferdinandea)로 바꿔 버립니다. 그리고 9월 29일, 프랑스 과학 조사단이 깃발을 꽂으며 이 섬을 줄리아 섬(Île Julia)이라 부르기 시작합니다.

1831년 프랑스 지질학자 콩스탕 프레보(Constant Prévost)가 그린 삽화
이 상황은 섬의 주권을 둘러싼 국제 분쟁으로 번질 뻔했지만… 놀랍게도 어떠한 대결도 없이 저절로 마무리됩니다. 화산이 뿜어낸 용암은 침식에 매우 취약한 물질로 이루어져 있었고, 파도와 바람에 깎이다 끝내 12월 17일, 등장한 지 불과 5개월 만에 섬은 다시 바다 밑으로 사라져 버립니다.
그런데 이 섬은 훗날 또 다른 흥미로운 일화를 남깁니다. 1986년 4월, 소위 엘도라도 캐니언 작전(Operation El Dorado Canyon) 당시, 미군이 즐겨 찾던 베를린의 나이트클럽 폭탄 테러에 대한 보복으로 미 공군이 리비아를 공습했습니다. 그런데 폭격기가 발견한 것은 다름 아닌 한때 섬이었던 곳의 수면 아래 그림자였고, 이를 리비아 잠수함으로 오인해… 폭격하고 만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