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럽의 역사

무적의 왕 데메트리우스: 아시아를 정복한 수수께끼의 그리스 정복자

무적의 왕 데메트리우스: 아시아를 정복한 수수께끼의 그리스 정복자

데메트리우스는 매우 독특한 인물이다. 그의 행적은 역사적으로 철저하게 기록되어 있지만, 동시에 동방 민족들의 전설 속으로도 스며들었다. 요나(Yona) 또는 야바나(Yavana)라고 불린 그리스인들의 다르마미타(Dharmamita), 즉 데메트리우스는 오늘날까지도 이 일대에서 회자되는 명성을 남겼다. 바로 '야바나 시대', 이른바 그리스인들의 시대를 연 개창자로서의 이름이다.

박트리아의 왕위에 오르다

데메트리우스는 셀레우코스 제국 동부에서 스스로 왕을 선포한 에우티데모스(Euthydemus)의 아들이었다. 에우티데모스는 셀레우코스 왕조의 안티오코스 3세와 충돌하면서 박트리아의 왕이 되었고, 심지어 아레이오스 강 전투에서 셀레우코스 군에게 패배하기도 했다.

그러나 그는 수도 박트라에 대한 셀레우코스군의 포위 공격을 무려 3년간 버텨냈고, 끝내 적대 세력으로부터 왕호를 공식 인정받았다. 흥미롭게도 이 평화 협상의 핵심 교섭자는 당시 겨우 16세였던 데메트리우스였다. 역사가 폴리비오스에 따르면, 안티오코스 3세는 어린 왕자의 재능에 깊은 감명을 받아 자신의 딸과의 혼사까지 허락했다고 전해진다.

인도 정복의 서막

에우티데모스의 뒤를 이어 데메트리우스는 약 22세의 나이로 왕위에 올랐다. 여러 해에 걸쳐 국력을 다진 데메트리우스는 찬탈한 장군의 손에 인도의 마우리아 왕조가 붕괴하자 이 기회를 놓치지 않고 인도 정복을 결심한다. 마우리아 왕조는 원래 그리스인들의 동맹국이었기 때문에, 이는 그에게 좋은 명분이 되어주었다.

데메트리우스의 침공은 오늘날 아프가니스탄에 해당하는 힌두쿠시 산맥 이남의 아라코시아(Arachosia) 지역에서 시작되었다. 이곳은 알렉산드로스 대왕의 동정 이후 많은 그리스인들이 거주해 온 땅이었지만, 당시에는 인도의 영토에 속해 있었다. 정복 이후 데메트리우스는 이곳에 데메트리아다(Demetriada)라는 도시를 건설하고 그리스인들을 정착시킨 것으로 보인다. 고대 문헌과 고고학적 발굴 결과는 모두 이곳에 그리스인들이 존재했음과 데메트리우스의 행적을 부정할 수 없이 증명해 준다.

갠지스 강까지 도달한 정복자

일부 사료는 데메트리우스가 네팔 남쪽, 인도 동부의 파트나(Patna)까지 진군했다고 전한다. 스트라본은 "알렉산드로스의 뒤를 따른 자들이 갠지스 강과 파탈리푸트라(파트나)에 도달했다"라고 기록했다. 인도 측 사료 역시 데메트리우스의 침공을 언급하고 있다. 결국 데메트리우스는 오늘날의 파키스탄, 아프가니스탄, 그리고 인도의 광대한 영토를 지배하는 군주가 되었다.

무적의 왕 데메트리우스: 아시아를 정복한 수수께끼의 그리스 정복자

왕 데메트리우스의 4드라크마 은화. 코끼리 형태의 투구를 쓴 왕의 초상이 새겨져 있다.

'무적의 왕'이라는 칭호, 그리고 수수께끼 같은 최후

데메트리우스는 단 한 번의 전투에서도 패배한 적이 없어 신민들로부터 '무적의 왕(Aniketos)'이라는 칭호를 받았다. 그가 인도에서 이룩한 업적은 후계자들에 의해 오랜 세월 계승되었다.

데메트리우스는 기원전 180년경 사망한 것으로 추정되지만, 그의 최후를 정확히 기록한 사료는 어디에도 남아 있지 않다. 현대 영국의 한 역사가가 그를 '아시아사의 수수께끼 같은 왕(Enigma king)'이라 부르는 데에는 이런 배경이 있는 것이다.

무적의 왕 데메트리우스: 아시아를 정복한 수수께끼의 그리스 정복자 무적의 왕 데메트리우스: 아시아를 정복한 수수께끼의 그리스 정복자

승리의 왕 데메트리우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