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리 조약과 해외 제국의 종말
1898년 12월 10일 체결된 파리 조약은 미국·스페인 전쟁, 이른바 '98년의 재난(Desastre del 98)에 종지부를 찍으며 스페인 해외 제국의 마지막 장을 닫았습니다. 이 조약을 통해 스페인은 쿠바에 대한 영유권 주장을 철회하고 그 독립을 인정했으며, 필리핀·괌·푸에르토리코는 공식적으로 미국에 2천만 달러에 양도되었습니다. 또한 조약 서명 과정에서 누락된 시부투(Sibutú), 카가얀(Cagayán), 홀로(Jolo) 섬에 대해서는 이후 10만 달러를 추가로 받았습니다.
한편 괌은 다소 우스꽝스러운 상황 속에서 미군 손에 넘어갔습니다. 마닐라(필리핀)로 서둘러 향하던 미국의 헨리 글래스(Henry Glass) 함장은 마리아나 제도와 캐롤라인 제도를 이루는 나머지 섬들을 차지하는 일을 '깜빡' 잊었고, 덕분에 스페인은 1899년 이 섬들을 독일 제국에 팔아 1,700만 마르크를 확보할 수 있었습니다. 이것이 스페인 해외 제국의 마지막 소유지였습니다… 라고 결론 내리기에는 아직 이릅니다.
조약에서 빠져나온 섬들
태평양에 자리한 오스게데스(Os Guedes), 아스코로아스(As Coroas), 오세아(O-Cea), 오스페스카도레스(Os Pescadores, 어부들의 섬) 군도는 원래 포르투갈인들이 발견하고 점거한 땅이었습니다. 1640년 포르투갈 복원 전쟁으로 포르투갈이 합스부르크 히스패니아 군주국으로부터 독립을 회복하자, 이 군도들은 몰루카 제도의 일부와 맞바꾸는 형태로 스페인에 양도되었습니다.
문제는 이 섬들과 포나페(Ponape), 아센시온(Ascensión) 섬이 1898년 12월 10일자 조약에 포함되지 않았다는 점입니다. 즉, 서류상으로는 여전히 스페인의 영토로 남아 있었던 것입니다.

프랑코 정권 시절의 주권 논의
프랑코 집권기, 국립연구위원회(CSIC) 소속 외교관 에밀리오 파스토르 산토스(Emilio Pastor y Santos)는 국제법이 스페인을 보호하고 있으며, 이른바 '스페인령 미크로네시아'로 불리는 이 섬들에 대한 주권을 법적으로 주장할 수 있다는 사실을 발견했습니다.
그러나 주권을 실제로 행사하는 데 드는 막대한 비용과, 단순한 환초들에 불과해 전략적·경제적 가치가 낮다는 현실적인 이유로 이 문제는 좌초됩니다. 1949년 1월 12일 각료회의에서 논의되었지만, 당시 스페인은 UN에 가입하지 않은 상태였고(1955년 12월 14일에야 가입), 미국이나 일본 같은 강대국과 충돌할 가능성에 대한 우려도 컸기에 어떠한 영유권 주장도 받아들여지지 않았습니다.
그렇다면 지금은 누구의 땅인가
흥미롭게도 스페인은 이 영토들에 대한 소유를 공식적으로 포기한 적은 없습니다. 다만 실제로 주권을 행사하거나 반환을 요구한 적도 한 번도 없을 뿐입니다. 현재 기준으로 마피아 섬으로도 알려진 오스게데스 환초는 인도네시아 관할 아래에 있으며, 오스페스카도레스(카핑가마란기)와 오세아는 미크로네시아 연방의 주권 아래, 아스코로아스(롱에릭)는 마셜 제도 공화국의 통제 아래 놓여 있습니다.
역사의 변방에 남겨진 이 작은 환초들은, 한때 태양이 지지 않던 제국이었던 스페인의 흥망성쇠를 조용히 증언해 주고 있습니다.
이 글은 Places with History의 하비에르 라모스(Javier Ramos)와의 협업으로 작성되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