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럽의 역사

장군 아킬레우스: 『일리아스』 최후의 전투에 담긴 그의 작전 계획

장군 아킬레우스: 『일리아스』 최후의 전투에 담긴 그의 작전 계획

호메로스의 서사에 따르면, 유명한 미르미돈 군단을 이끈 아킬레우스는 『일리아스』가 한 여인을 둘러싼 갈등으로 그리는 처음 두 번의 전투에 참여하지 않았다. 그러나 헬레나 납치 전설이 상징적 의미를 지니듯, 이 역시 문자 그대로 받아들이기 어려운 대목이다. 정예부대였던 미르미돈 군단은 아카이아 연합군의 총예비대 역할을 했을 가능성이 높다. 또 다른 해석으로는, 그들의 불참이 단순히 다른 전선에서 작전을 수행하고 있었기 때문이라는 설도 있다. 초기 전투 이후 트로이아군은 아카이아군을 진영 안에 가두어 버렸다.

2,500명 이상의 가치

트로이아군은 평원에 진을 치고 있었고, 아가멤논은 아킬레우스에게 사절단을 보내 증원을 요청했다. 그러나 아킬레우스는 거부했고, 어쩌면 도울 수 없는 처지였을지도 모른다. 다만 2,500명 규모의 분견대 참여 하나로 전세가 결정적으로 뒤집힌다고 보기는 어렵다. 이 지점에는 겉으로 드러나는 것 이상의 무언가가 숨겨져 있다.

아카이아군에게 부족했던 것은 소수의 병력이 아니라, 네 번째 전투에서 풍분하게 입증된 아킬레우스의 전략적 통솔력이었다.

파트로클로스의 출격과 몰락

이어진 전투에서 트로이아군은 점차 우위를 점했고, 마침내 아카이아군의 전함에 불을 지르기 시작했다. 이 위기의 순간 파트로클로스가 아킬레우스의 갑옷을 두르고 미르미돈 군단을 이끌고 나타나, 흐트러진 트로이아군을 격파했다. 갑작스러운 전개에 놀란 트로이아군은 도시 성벽 앞까지 밀려나 후퇴했고, 그곳에서 재정비에 나섰다.

미르미돈 군단의 개입은 일시적으로 아카이아군을 구원했다. 그러나 일리온(트로이) 성벽까지 무질서하게 추격을 감행한 결과, 일부 병력이 아군 주력과 차단되었고 파트로클로스는 전사하고 말았다. 흥미롭게도 『일리아스』의 한 구절은 미르미돈 전 병력이 이 전투에 투입되지 않았음을 분명히 보여준다. 아킬레우스는 이렇게 말했다. “...그러나 나는 내 동료를 많은 미르미돈과 함께 싸움에 보낸다” (K. 두카스 옮김).

밤이 오자 아카이아 진영은 잠시 숨통을 텄다. 아킬레우스는 전쟁 회의를 소집했고, 『일리아스』의 네 번째이자 마지막 전투에 대한 총전략도 직접 수립했다.

헥토르의 방어 배치와 아킬레우스의 선언

헥토르는 이번에도 그동안 성공을 거둬온 협소 정면 방어 계획을 고수했다. 그리하여 그는 신(新) 일리온 언덕과 스카만드로스 강 좌안 사이에 군대를 배치했다. 맞은편에는 아킬레우스의 구호에 따라 진열된 아카이아군이 섰다.

“이제 트로이아인들에게서 멀리 떨어지지 말라, 신성한 아카이아인들이여. 사람과 사람이 마주 서서, 남자 대 남자로 싸워라. 내가 아무리 용맹해도 이토록 많은 무리를 쫓으며 모두와 맞서기란 어렵다... 나는 적진의 끝에서 끝까지 꿰뚫고 나아갈 것이니, 내 창 앞에 다가오는 트로이아인이 반가워할 것 같지는 않다” (『일리아스』 20권 355~357행, 363~364행, K. 두카스 옮김).

천재적 발상: 적 중앙 돌파 작전

아킬레우스의 작전은 구상은 단순했지만 실행에서 빛을 발하는 것이었다. 아카이아군의 목표는 적 전선 전체에 압력을 가하는 것이 아니라, 미리 선정한 지점에서 전선을 돌파하는 것이었다. 아킬레우스는 무의미한 공격으로 군대를 소모시킬 생각이 없었다. 그는 주력을 적 중앙에 집중하고, 양익은 단순히 묶어두기만 할 계획이었다.

적 전선을 돌파하는 데 성공하면, 트로이아군의 좌익은 스카만드로스 강(신들에게는 '크산토스'로도 불리는)과 아카이아군 사이에 갇혀 궤멸당할 운명이었다.

결전: 전선 붕괴와 참화

다음 날 두 군대는 다시 마주 섰고, 평원은 병기의 찬란한 빛으로 눈부시게 빛났다. 트로이아군은 방어 태세를 유지하며 적의 공격을 기다렸고, 아카이아군은 그 기대를 저버리지 않았다. 무시무시한 아킬레우스가 이끄는 아카이아 팔랑크스가 돌진했고, 충격의 초점은 트로이아 중앙이었다.

새로운 전술에 익숙지 않았던 트로이아군은 용감하게 싸웠으나 전선을 지키지 못했다. 격렬한 전투 끝에 중앙이 돌파되었고, 헥토르가 이끄는 우익 병력은 도시를 향해 도주했으며, 좌익의 불운한 병사들은 아카이아의 창과 강물 사이에 갇혀 궤멸하거나 항복했다.

이 참사의 규모를 실감 나게 보여주기 위해 위대한 호메로스는 신격화된 강 스카만드로스가 시신으로 제방이 가득 차자 아킬레우스를 익사시키려 한 일화를 등장시켰다. 아킬레우스가 창을 던지고 검 한 자루만 들고 트로이아군을 물리치는 장면이 담긴 『일리아스』의 대목이 특징적이다. 승패가 이미 갈린 추격전 단계에서 이런 학살의 이미지는 흔하며, 패자는 승자에게 "칼날을 입에 문" 셈이다. 실제로 이 시점에서 전투는 사실상 끝났고, 승리는 아카이아군의 것이 되었다.

그리고 아킬레우스는 정정당당한 일대일 결투 끝에 헥토르를 쓰러뜨렸다. 그것은 그의 영광의 정점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