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889년, 에티오피아의 메넬리크 2세(Menelik II)는 이탈리아 왕국의 지원을 등에 업고 티그라이와 암하라 지역을 정복한 뒤 황제로 즉위했습니다. 받은 지원에 대한 보답으로 그는 홍해 연안 지역(아프리카 대륙 최초의 이탈리아 식민지인 '이탈리아령 에리트레아')을 이탈리아에 양도했으며, 이탈리아 국왕 움베르토 1세를 대신해 파견된 피에트로 안토넬리 백작과 우호 및 자유 무역 조약을 체결했습니다. 그런데 바로 이 평화 조약이 제1차 이탈리아-에티오피아 전쟁의 도화선이 되었으니, 참으로 역사의 아이러니라 할 만합니다.

1889년 5월 2일, 에티오피아의 우찰레에서 체결된 이 조약은 "영원한 사랑"을 선언하는 문구로 시작되며 총 20개 조항으로 구성되어 있었습니다.
제1조. 이탈리아 국왕 폐하와 에티오피아 황제 폐하, 그리고 양국의 상속자·후계자 및 모든 신민 사이에는 평화와 우호가 유지될 것이다.
그런데 문제는 제17조에서 터졌습니다.
제17조. 에티오피아 황제 폐하는 다른 국가 또는 정부와의 관계를 위해 이탈리아 국왕 폐하 정부를 이용해야 한다.
조항의 문면 자체보다 치명적인 것은, 동사 하나의 번역이었습니다. 에티오피아어(암하라어)판에서는 "이용할 수 있다(can)"로 표현되어 황제의 자발적인 선택을 의미했지만, 이탈리아어판에서는 "이용해야 한다(must)"로 번역되어 에티오피아를 이탈리아의 보호국으로 격하하는 의무 조항이 되었던 것입니다. 이탈리아 측 해석을 알게 된 메넬리크 2세는 이탈리아 국왕 앞에서 이 사건을 공개적으로 비난했지만, 이탈리아는 이를 무시했을 뿐만 아니라 오히려 에티오피아 국경에 군대를 동원하기 시작했습니다. 그리고 마침내 1894년, 전쟁이 발발했습니다.
전쟁 초기에는 병력과 장비의 우위를 앞세운 이탈리아가 주도권을 잡았지만, 최근 메넬리크 2세에게 정복당했던 티그라이 지역 주민들의 지지까지는 끌어내지 못했습니다. 그들의 지원을 등에 진 황제는 주도권을 되찾았고, 아두아 전투(1896)에서 이탈리아군을 격파하며 승기를 굳혔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탈리아는 에리트레아 영토에 대한 지배를 계속 유지했습니다. 이후 1935년, 이미 권력을 쥔 베니토 무솔리니의 지휘 아래 이탈리아는 에티오피아를 점령했고, 그 지배는 1941년까지 이어졌습니다.

황제에 대한 이야기가 나온 김에, 메넬리크 2세만이 지닌 매우 특별한 왕좌에 대한 일화를 소개하겠습니다. 즉위한 지 얼마 되지 않았을 때, 그는 미국에서 혁명적인 처형 방식이 처음으로 사용되었다는 소식을 접하게 됩니다. 바로 전기의자였습니다. 전기의자로 처형된 최초의 인물은 윌리엄 케믈러(William Kemmler)로, 그는 1890년 8월 6일 뉴욕의 오번(Auburn) 교도소에서 처형되었습니다. 신기술에 대한 열광 때문이었는지, 아니면 가장 앞선 처형 시스템을 갖추고 싶은 소망 때문이었는지는 알 수 없지만, 분명한 사실은 그가 이 장치 세 대를 주문했다는 점입니다.
그런데 문제가 생겼습니다. 장치가 도착하자 그는 서둘러 사용해 보고 싶어 영토 분쟁에서 포로로 잡은 몇몇 포로들에게 시험 삼아 작동시켜 보았지만, 아무런 효과가 없었습니다. 그럴 만도 한 것이, 아무도 전기의자의 작동에 전기가 필요하다고 그에게 말해주지 않았던 것입니다. 당시 에티오피아에는 작동에 필요한 전력 공급 장치 자체가 없었으니까요. 결국 황제는 '재활용'을 선택했습니다. 그중 하나를 자신의 왕좌로 삼은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