실베스터 그레이엄(Sylvester Graham)은 19세기 전반부 미국 금주 운동에 몸담았던 장로교 목사였습니다. 당시 동료 개혁가들이 음주 폐해, 여성의 권리, 노예제 폐지 같은 사회·인도주의적 문제를 다루는 동안, 그레이엄은 오직 건강과 성이라는 두 가지 주제에만 집중했습니다.
▲ 실베스터 그레이엄
그의 눈에 미국 사회는 완전히 타락한 상태였고, 미국인들은 병들어 있었으며 그 증상 또한 명백했습니다. 젊은이들의 자위 행위(성기가 아직 미성숙하여 실명과 건강을 해친다고 믿었음), 출산이 목적이 아닌 성관계(한 달에 한 번 이상 가지면 타락한 것으로 간주), 그리고 육체를 부패시키는 고기, 향신료, 술의 섭취까지 말입니다. 실제로 그레이엄은 육류 소비와 육체적 충동 사이에 직접적인 연관성이 있다고 확신했습니다.
인류를 구원하겠다는 종교적 열정과 오늘날 TV 전도사들을 연상시키는 웅변에 힘입어, 그레이엄은 사람들에게 육체적 충동을 억제하고 식습관을 대폭 바꿔 건강을 지킬 것을 권유했습니다. 이것이 바로 그레이엄 다이어트(Graham Diet)입니다. 이 식단은 고기와 향신료를 배제한 신선한 과일과 채소, 통밀빵, 시리얼 중심으로 구성되었으며, 우유·치즈·버터·계란 같은 식품은 적당량 섭취하는 한 허용되었습니다. 규칙적인 목욕, 양치질, 신선한 공기 마시기, 매일 운동하기 등 오늘날 기준으로도 나쁘지 않은 생활 수칙들을 미국 사회에 도입한 것 역시 사실입니다.
이 독설가의 공격 대상이 된 또 다른 음식은 바로 빵이었습니다. 저서 『빵과 그 제조에 관한 논문』(1830)에서 그레이엄은 당시 소비되던 빵의 낮은 품질을 강하게 비판했습니다. 급속한 산업화와 도시화로 가족의 식습관이 변했는데, 문제는 음식의 종류가 아니라 그 원산지, 즉 부엌이 아닌 공장에 있다는 것이었습니다. 특히 흰빵이 최악이었습니다. 그레이엄은 공장에서 대량 생산된 밀가루가 분필과 섞였으며, 빵이 지나치게 하얗다는 사실 자체가 유해 첨가물 사용의 명백한 증거라고 주장했습니다. 결국 그는 통밀가루를 만드는 자신만의 공정을 개발해 그레이엄 빵에 사용했고, 이것이 오늘날 그레이엄 가루(Graham Flour)로 만든 과자인 그레이엄 크래커(Graham Cracker)로 이어졌습니다.

그렇다면 미국인들은 이 선구자를 어떻게 받아들였을까요? 대다수는 그를 무시했고, 정육점 주인과 제빵사들은 여러 차례 그를 린치하려 들 정도였습니다. 그럼에도 그의 가르침을 문자 그대로 따르는 일종의 광신적 추종 세력이 형성되었으니, 이들이 바로 그레이엄파(Grahamites)입니다. 한편 그레이엄 가루 자체는 큰 성공을 거두어, 일부 레스토랑이나 여관에서는 마치 미슐랭 스타라도 된 듯 창문에 "그레이엄 가루 사용"이라고 내걸기도 했습니다. 그러나 그레이엄은 자신의 밀가루가 신성한 사명의 산물이라 여긴 나머지 특허를 취득하거나 경제적 이익을 챙기기를 거부했고, 재정난은 평생 그를 따라다녔습니다. 1840년대 말에는 그의 급진적 노선이 많은 그레이엄파 추종자들을 이탈시켰고, 그는 1851년 57세의 나이로 홀로 세상을 떠났습니다.
만약 그가 오늘날 다시 눈을 뜬다면, 그레이엄의 심정은 씁쓸하면서도 달콤할 것입니다. 달콤한 이유는 그가 채식주의의 선구자로 인정받기 때문이고, 씁쓸한 이유는 자신이 순수한 목적으로 개발한 밀가루가 대량 생산되는 과자의 첨가물로 쓰이게 되었기 때문일 것입니다. 한편 1878년에는 의사 존 하비 켈로그(John Harvey Kellogg)가 그레이엄의 제자이자 그레이엄파였던 인연을 바탕으로, 그래놀라(Granola)라 이름 붙인 시리얼을 만들어냈습니다. 성공을 거둔 켈로그는 이어서 콘플레이크(Cornflakes) 조리법을 확립하며 미국 아침식사 산업의 기반을 열었습니다.
켈로그는 미시간주 배틀크릭(Battle Creek)에서 요양원을 운영하며 스승의 가르침을 편지 한 장까지 충실히 따랐습니다. 실제로 그가 콘플레이크를 만든 이유 중 하나는 어린이의 아침 식사가 "자기 학대", 즉 그가 자위라고 부른 충동과 싸우는 데 도움이 되기 때문이었습니다. 켈로그는 포경수술, 손 묶기, 성기 보호 장치 착용, 전기 충격 등 극단적인 방법까지 동원해 자위 습관의 '교정'에 나섰습니다.
"소년들에게 거의 항상 효과적인 치료법은 포경수술이다. 특히 어느 정도 포경이 있는 경우 더욱 그렇다. 수술은 반드시 마취 없이 외과의가 집행해야 한다. 수술의 고통은 짧으면서 정신에 유익한 영향을 미치며, 특히 처벌이라는 개념과 연결될 경우 더욱 효과적이다. 수 주간 지속되는 통증은 해당 행위를 방해하고, 습관이 굳어지지 않았다면 잊히게 만든다. […] 우리가 성공적으로 사용한 또 다른 치료법은 하나 이상의 은사 봉합사를 다음과 같은 방식으로 적용하는 것이다. 발기를 막도록."
그렇다면 여성의 경우는 어떠했을까요?
"순수한 석탄산(페놀)이나 기타 자극 물질을 음핵에 바르는 것은 각성은 물론 생식기 손상을 예방하는 데에도 탁월한 방법이다…"
따라서 오늘날 채식을 실천하거나 아침 식사로 시리얼을 곁들이고 있다면, 이 모든 것이 시작된 기묘한 역사를 한번쯤 떠올려볼 만합니다. 육욕을 억제하라, 죄인이여!
출처: The Atlantic, Atlas Obscura