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럽의 역사

잉글랜드 플랜태저넷 왕조의 피를 이은 카스티야의 엘리자베스 1세, 가톨릭 군주의 숨겨진 혈통

잉글랜드 플랜태저넷 왕조의 피를 이은 카스티야의 엘리자베스 1세, 가톨릭 군주의 숨겨진 혈통

요즘은 TV 드라마 덕분에 이사벨의 모습이 대중적으로 널리 알려지게 되었습니다. '가톨릭 군주'로 불리는 카스티야의 엘리자베스 1세(이사벨 1세)에 대해 잘 알려지지 않은 한 가지 이야기를 짚어보려 합니다. 바로 그녀의 혈관에는 유명한 잉글랜드 왕조 플랜태저넷 가문의 피가 흐르고 있었다는 사실입니다. 이 혈연 덕분에 문학, 영화, TV에 자주 등장하는 잘 알려진 인물들이 그녀의 가계와 얽히게 됩니다.

플랜태저넷 왕조에는 아키텐의 엘레오노르(Eleanor of Aquitaine, 매우 유명한 인물)의 남편 헨리 2세의 아들들, 즉 '사자심왕' 리처드(Richard the Lionheart)와 '무지왕(Lackland)' 존이 속해 있었습니다. (참고로 존은 문학과 영화에서 극심하게 악역으로 그려져, 『아이반호』나 로빈 후드 이야기에서 늘 형 리처드 앞에서 나쁜 짓을 하는 인물로 등장합니다.) 여기에 '롱생크스(Longshanks)'이자 '스코틀랜드의 망치'로 불린 에드워드 1세, 그리고 위대한 왕이 될 것이라 기대를 모았지만 아버지보다 먼저 이질로 요절하며 그 기대를 무너뜨린 '흑태자' 에드워드가 있습니다. 프랑스와 수년간 영국의 피를 흘리게 한 백년전쟁은 결국 요크 가문과 랭커스터 가문 사이의 장미전쟁의 씨앗이 되었습니다.

정확히 말하면, '흑태자' 에드워드의 동생인 존 오브 곤트(John of Gaunt)는 장미전쟁으로 치닫던 음모에 적극적으로 가담했을 뿐만 아니라, 방대한 후손들을 남길 시간도 충분히 가졌던 인물입니다. 그의 14명의 자녀 중에는 두 번째 부인인 카스티야의 콘스탄사 사이에서 태어난 딸, 랭커스터의 캐서린이 있었습니다.

그 배경을 설명하자면 이야기가 너무 길어지기 때문에(전기 『랭커스터의 캐서린』 참조) 간략히 말씀드리면, 캐서린과 카스티야의 어린 왕자 엔리케 데 트라스타마라(훗날의 엔리케 3세)의 혼약은 트라스타마라 가문과 페드로 1세 '잔혹공(El Cruel)'의 후손들 사이에서 카스티야를 황폐화시켰던 전쟁을 종식시키는 결정적 계기가 되었습니다. 엔리케는 아스투리아스의 왕자로 책봉되었고, 이에 따라 랭커스터의 캐서린은 초대 아스투리아스 여공(公女)이 되었습니다.

이 결혼의 결과로 두 딸과 아들이 태어났습니다. 아버지가 사망하자 아들은 카스티야의 후안 2세로 즉위했지만, 당시 그의 나이가 겨우 2살이었기에 어머니 카탈리나가 섭정 역할을 맡아야 했습니다.

후안 2세는 두 번 결혼했습니다. 첫 번째 부인 아라곤의 마리아(María de Aragón) 사이에서는 세 자녀를 두었는데, 그중 한 명이 훗날의 엔리케 4세입니다. 두 번째 부인 포르투갈의 이사벨(Isabel de Portugal) 사이에서는 두 자녀를 두었는데, 그중 한 명이 바로 이 글의 주인공 이사벨 1세입니다.

엔리케와 이사벨 사이의 분쟁, 그리고 후아나 '라 벨트라네하(Juana la Beltraneja)'의 출신을 둘러싼 의혹에 관한 이야기는 이 글의 주제가 아닙니다. 이 글은 오직 이사벨 1세와, 초대 아스투리아스 여공이었던 그녀의 할머니 카탈리나 데 랭커스터를 통해 이어지는 플랜태저넷 왕조의 혈연 관계를 정리하기 위해 작성되었습니다.

관련 도서: 마리아 테레사 알바레스(María Teresa Álvarez)의 『랭커스터의 캐서린』; 샤론 케이 펜먼(Sharon Kay Penman)의 『장미전쟁』; 진 플레이디(Jean Plaidy)의 『가톨릭 군주』

이미지 | 카스티야의 엘리자베스 1세

추가 정보 | 초대 아스투리아스 여공, 랭커스터의 캐서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