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럽의 역사

카스티야의 엘리자베스, 초대 요크 공작부인이자 영국 두 왕의 증조모

카스티야의 엘리자베스, 초대 요크 공작부인이자 영국 두 왕의 증조모
본 글은 『더 플랜태저넛(The Plantagenets)』이라는 책에서 발췌하여 재구성했습니다.

카스티야와 잉글랜드를 잇는 혼맥

이전 포스팅에서 우리는 카스티야의 페드로 1세, 그가 마리아 데 파디야(María de Padilla)와 맺었던 관계, 그리고 트라스타마라의 엔리케(Enrique de Trastámara)와 벌인 왕위 다툼에서 잉글랜드와의 동맹을 강화하기 위해 자신의 두 딸을 잉글랜드 국왕 에드워드 3세의 두 아들과 혼인시켰던 이야기를 다룬 바 있습니다. 장녀 콘스탄사(Constanza)는 존 오브 갠트(John of Gaunt)와 결혼했으며, 이 결혼에서 태어난 카탈리나 데 랭커스터(Catalina de Lancaster)는 초대 아스투리아스 여공작으로서 이미 블로그에서 소개된 인물입니다.

상대적으로 덜 알려진 것은 페드로 1세의 또 다른 딸과 에드워드 3세의 자손 사이에 성립된 두 번째 혼인입니다. 1371년 콘스탄스가 남편 존 오브 갠트와의 결혼 후 잉글랜드로 건너갈 때 여동생 엘리자베스를 함께 데려갔고, 그곳에서 그녀는 존의 남동생인 에드먼드 오브 랭리(Edmund of Langley)와 혼인하게 됩니다.

에드워드 3세의 작위 정책과 초대 요크 공작부인의 탄생

에드워드 3세는 자녀들에게 새로운 작위를 제수하는 정책을 추진했는데, 이 작위들은 오늘날까지도 잉글랜드 귀족 사회에서 가장 돋보이는 지위로 자리 잡았습니다. 장남인 흑태자에게는 콘월 공작(Duke of Cornwall), 차남 라이오넬 오브 앤트워프에게는 클래런스 공작(Duke of Clarence), 그리고 앞서 언급한 존 오브 갠트에게는 랭커스터 공작(Duke of Lancaster) 작위가 하사되었습니다. 나머지 아들들이 같은 품격을 갖추게 된 것은 에드워드 3세의 뒤를 이은 리처드 2세 대에 이르러서였습니다. 우드스톡의 토머스는 글로스터 공작(Duke of Gloucester)에 봉해졌고, 이미 케임브리지 백작 작위를 지니고 있던 에드먼드 오브 랭리는 새로 창설된 요크 공작(Duke of York) 작위를 받았습니다. 이로써 그의 아내이자 이 글의 주인공인 카스티야의 엘리자베스는 초대 요크 공작부인이 되었습니다.

행복하지 못했던 부부 생활

그러나 카스티야 공주와 잉글랜드 남편의 결합은 결코 행복했다고 보기 어려웠습니다. 부부와 동시대를 살았던 연대기 작가 토머스 월싱엄(Thomas Walsingham)은 그 원인을 엘리자베스의 '방종한 도덕성'에서 찾았습니다. 당대 소문에 따르면 그녀는 엑서터 공작(Duke of Exeter)이자 리처드 2세의 이복형제인 존 홀랜드(John Holland)와 불륜을 맺었는데, 이 관계는 에드먼드와의 결혼 후 겨우 2년 만에 시작된 것으로 전해집니다. 이 일로 부부의 세째 아들 리처드 드 코니즈버러(Richard de Conisbrough)의 친부에 대한 의문이 제기되었습니다.

유언장과 연금, 그리고 의심을 낳은 정황들

이와 관련해 주목할 대목은 엘리자베스가 유언장에 한 조항을 명시하여, 자신의 상속인으로 지명한 리처드 2세에게 사후 아들 리처드에게 연금을 지급해 달라고 청원했다는 사실입니다. 실제로 1392년 엘리자베스가 세상을 떠나자 리처드 2세는 코니즈버러에게 연 500파운드의 연금을 하사했습니다. 그러나 존 오브 갠트의 아들 헨리 4세가 왕위를 찬탈하면서 이 연금은 지급이 중단되었는데, 코니즈버러가 새 왕의 사촌에 해당함에도 불구하고 그렇게 되었습니다. 더욱 의미심장한 점은, 그의 아버지이자 요크 공작인 에드먼드 오브 랭리도, 그 작위를 물려받은 형 에드워드도 유언장에서 리처드에게 아무런 유산도 남기지 않았고, 그의 이름조차 언급하지 않았다는 사실입니다. 이러한 정황을 근거로 리처드는 에드먼드 오브 랭리가 아니라 존 홀랜드의 아들이라는 주장을 펴는 역사가들이 적지 않습니다.

역사의 아이러니, 장미전쟁으로 이어진 혈통

역사에는 이런 식의 기묘한 반전이 늘 따릅니다. 리처드 드 코니즈버러의 아들 리처드 플랜태저넷(Richard Plantagenet)은 할아버지가 정당히 가졌는지 의문이 제기되는 요크 공작 작위를 결국 상속받게 됩니다. 그리고 위대한 잉글랜드 작위 보유자의 적출 여부를 둘러싼 논란은 여기서 끝나지 않습니다. 코니즈버러의 아들 리처드 플랜태저넷 요크 공작의 이름이 낯익게 느껴지는 분들도 있을 것입니다. 그는 요크 가문과 랭커스터 가문 사이의 왕조 분쟁, 즉 소위 '장미전쟁(Wars of the Roses)'을 촉발한 인물이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그 전쟁의 결과로 리처드 플랜태저넷의 두 아들이 잉글랜드 왕관을 쓰게 됩니다. 바로 에드워드 4세와 리처드 3세입니다.

확실한 사실 하나는, 초대 요크 공작부인 카스티야의 엘리자베스의 증손자 두 사람이 잉글랜드의 국왕이 되었다는 점입니다. 반면 그 두 사람이 모두 남편 에드먼드 오브 랭리의 후손이기도 했는지에 대해서는 단정하기 어렵습니다.

엘리자베스의 최후

카스티야의 엘리자베스는 1392년 12월 23일 세상을 떠났으며, 잉글랜드 킹스랭글리(King's Langley)에 안장되었습니다.

참고 자료 | History … the interesting bits: Isabella of Castile, the Controversial First Duchess of York
매슈 루이스(Matthew Lewis), 『Richard, Duke of York: King by Right』
이미지 | Wikimedia Commons, 요크 공작 문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