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럽의 역사

폴커크 전투(1298)의 진실: 에드워드 1세 vs 윌리엄 월리스, 로버트 브루스 '반역설' 검증

폴커크 전투(1298)의 진실: 에드워드 1세 vs 윌리엄 월리스, 로버트 브루스  반역설  검증
※ 본 글은 『더 플랜태저넷(The Plantagenets)』에서 발췌한 항목을 바탕으로 정리한 내용입니다.

스털링 다리의 영웅, 윌리엄 월리스의 부상

무명의 스코틀랜드 하급 귀족이었던 윌리엄 월리스(William Wallace)는 1297년 스털링 다리 전투에서 잉글랜드군을 격파하며 일약 명성을 얻었고, 그 공으로 스코틀랜드 수호자(Guardian of Scotland)로 임명되었습니다.

스털링 다리의 승리 이후 월리스가 이끄는 군대는 잉글랜드가 점령했던 스코틀랜드 영토를 거의 모두 되찾았습니다. 나아가 국내에 맞설 잉글랜드군이 없다는 사실을 등에 업고 컴브리아와 노섬브리아까지 진출해 공포를 퍼뜨렸습니다.

보급 실패와 포도주, 그리고 에드워드 1세의 여유

스털링 다리 전투에서 입은 부상으로 앤드류 머레이(Andrew Murray)가 사망하자, 윌리엄 월리스 경은 스코틀랜드의 유일한 수호자로 임명됩니다. 한편 잉글랜드군은 월리스를 추적했지만, 산발적으로 움직이는 스코틀랜드군을 붙잡는 데 고전했습니다. 여기에 보급 문제까지 겹쳤습니다. 바다로 운송될 예정이던 식량 선단이 제때 도착하지 않은 것입니다. 마침내 배가 도착했을 때 실려 온 것은 포도주뿐이었고, 이 술에 취한 난투극은 곧 잉글랜드인과 웨일스인 사이의 분쟁으로 번져, 웨일스인들은 잉글랜드 진영을 떠나 스코틀랜드군에 합류하겠다고 위협할 지경이었습니다. 그러나 에드워드 1세는 담담하게 답했습니다. “우리의 적들이 서로 동맹을 맺는다 한들 누가 신경 쓰겠는가? 우리는 하루 만에 그들을 모두 격파할 것이다.”

드디어 7월 21일, 스코틀랜드군이 불과 20마일 밖에 있는 폴커크(Falkirk) 마을에 주둔하고 있다는 소식이 잉글랜드 진영에 전해집니다. 스코틀랜드인들은 보급난에 시달린 잉글랜드군이 후퇴할 것으로 예상하고, 퇴각하는 적을 매습할 계획을 세웠습니다. 그러나 자신들의 의도가 에드워드에게 이미 알려졌음을 깨닫고 전술을 수정해야 했습니다.

쉴트론 원진과 언덕 위의 배치

월리스는 수적 열세를 자각하고 있었습니다. 그는 개울이 흐르는 언덕 위에 군대를 배치하고, 창을 밖으로 뻗은 4개의 거대한 원진, 이른바 ‘쉴트론(schiltron)’을 편성해 기사들의 돌격을 막으려 했습니다. 원진 안에는 궁수들이 자리했고, 언덕 더 위쪽에는 스코틀랜드 기병대가 배치되었습니다. 말을 살 여유가 있는 이들은 대개 귀족들이었으니, 서로를 아는 사이였습니다.

폴커크에 도착한 에드워드 1세는 스코틀랜드군이 차지한 고지를 확인하고 미간을 찌푸렸습니다. 그가 마지막으로 언덕 위의 적을 상대하려 했던 것은 루이스(Lewes) 전투였습니다. 그곳에서 그와 아버지는 시몽 드 몽포르(Simon de Montfort)에게 패배했고, 에드워드는 이후 2년 가까이 감옥살이를 했습니다. 물론 루이스 당시 에드워드는 15세 소년이었습니다. 이제 그는 60세의 노련한 장군이자 유럽 어느 누구보다 전장 경험이 많은 왕이었고, 병력 수에서도 확실히 우세했습니다. 그럼에도 그의 첫 번째 선택은 야영과 휴식이었습니다. 전날 밤, 기습 가능성에 대비해 경계를 늦추지 않느라 군대가 지칠 대로 지쳤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남작들은 즉시 공격할 것을 강하게 주장했습니다.

전투의 전개: 늪지, 협공, 그리고 기병대의 이탈

전투 초반, 언덕 기슭의 개울은 겉보기보다 훨씬 넓은 늪지대여서 잉글랜드군의 발목을 잡았습니다. 첫 번째 기병 돌격대는 스코틀랜드군을 정면으로 공격할 수 없어 왼쪽으로 방향을 틀 수밖에 없었고, 두 번째 대열도 같은 문제에 부딪혀 오른쪽으로 우회했습니다. 결국 정면 돌격은 좌우 협공으로 바뀌었고, 방어선을 무너뜨릴 수 없는 보병과 스코틀랜드 궁수들은 학살당했습니다.

바로 이 순간, 오늘날까지도 논쟁을 낳는 사건이 벌어집니다. 스코틀랜드 기병대, 즉 귀족들은 보병을 지원하는 대신 말을 달려 전장을 이탈해 버린 것입니다. 월리스의 지지자들은 이렇게 믿습니다. 스코틀랜드 남작들이 자신들과 같은 평민 출신에게 수호자 자리가 넘어간 데 분노하여, 조국을 배신하고 에드워드 1세와 손잡고 폴커크에서 월리스를 제거하기로 합의했다고요.

‘반역 신화’에 대한 반박

그러나 이 글의 원전이 된 저술의 저자는 단호히 반박합니다. 무엇보다 폴커크에서 에드워드 1세와 스코틀랜드 남작들 사이에 어떤 밀약도 존재하지 않았다는 것입니다. 폴커크 전투는 어차피 스코틀랜드군의 패배였고, 기병 귀족들이 무슨 짓을 했든 결과를 뒤집을 수는 없었습니다. 만약 그들이 돌격했다면, 그것은 스코틀랜드의 전사자 수만 이보다 더 크게 늘렸을 것입니다. 오히려 그들은 전장을 떠남으로써, 잉글랜드가 각각을 추적하기 위해 길고 값비싼 원정을 벌이도록 강요했습니다. 패전에서 포로로 잡히지 않은 병사는 다음 전투에서도 싸울 수 있는 병사이기 때문입니다.

더욱이 스코틀랜드 귀족들의 이탈이 ‘월리스 제거를 위한 에드워드와의 합의’였다면, 잉글랜드의 첫 번째 목표는 월리스였어야 합니다. 그러나 잉글랜드 왕이 가장 먼저 시도한 일은 (실패했지만) 로버트 브루스(Robert Bruce)의 체포였습니다. 만약 브루스가 그런 음모의 동맹이었다면, 이는 터무니없는 행동이 아닐 수 없습니다.

그리고 한 가지 더. 윌리엄 월리스 경 역시 폴커크 전장에서 도망쳤습니다. 그것도 말을 타고서요.

참고 자료

  • Marc Morris, A Great and Terrible King: Edward I(위대하고 끔찍한 왕, 에드워드 1세)
  • Chris Brown, William Wallace: The Man and the Myth(윌리엄 월리스: 인간과 신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