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럽의 역사

알프레드 대왕의 딸, 메르시아의 여주인 애설플래드

넷플릭스 드라마 바이킹스(Vikings)와 버나드 콘웰의 소설을 원작으로 한 라스트 킹덤(The Last Kingdom)의 인기로, 앵글로색슨족과 바이킹(데인족)이 잉글랜드의 패권을 놓고 벌인 투쟁사가 다시금 조명받고 있습니다. 본 블로그에서도 이 역사의 초반부를 다루며 색슨족과 데인족의 관계, 그리고 알프레드 대왕에 대한 글을 다룬 바 있습니다.

메르시아 왕국과 바이킹의 침공

오늘은 알프레드 대왕의 후손들, 특히 그의 딸이자 '메르시아의 여주인(Lady of the Mercians)'으로 불리는 애설플래드(Æthelflæd)에 초점을 맞춰보겠습니다.

잉글랜드 정복을 향한 알프레드의 첫 시선은 웨식스 북쪽, 웨일스와 국경을 맞댄 이웃 왕국 메르시아로 향했습니다. 메르시아는 로마 시대 브리튼 섬을 정복한 앵글로색슨족이 세운 7개 왕국(헵타르키) 중 하나였습니다. '메르시아(Mercia)'라는 이름은 고대 영어 '미에르체(Mierce)' 또는 '미에르체(Myerce)'에서 유래한 라틴어 표기로, '국경 도시'를 뜻하며 웨일스에 남은 브리튼족 영토와의 서쪽 경계를 가리킵니다.

메르시아는 오파 왕(재위 757~796) 때 전성기를 맞았으나, 8세기 말부터 바이킹의 침공에 시달리기 시작했습니다. 865년 '대이교도 군대(Great Heathen Army)'가 노섬브리아, 이스트앵글리아, 메르시아를 차례로 정복하고 웨식스마저 위협하자, 메르시아 왕 버그레드는 쫓겨났습니다. 바이킹은 메르시아를 동서로 분할해 서쪽은 괴울프 2세를 괴뢰 왕으로 앉히고, 동쪽은 직접 통치했습니다.

애설플래드의 등장과 메르시아의 부흥

880년 괴울프가 죽자, 메르시아 동부는 귀족 애설레드(Æthelred)의 통치를 받게 되었습니다. 색슨 왕국들의 연합만이 바이킹을 격퇴할 수 있음을 간파한 알프레드는 애설레드의 권력 장악을 지원하는 대가로, 그가 웨식스의 종주권을 인정하게 했습니다.

이후 애설레드와 알프레드는 합동 작전을 펼쳐 런던을 탈환했고, 알프레드는 런던의 통치권을 메르시아에 넘겼습니다. 또한 자신의 딸 애설플래드(당시 약 16세)를 애설레드와 혼인시켰습니다. 왕녀라는 신분 탓인지, 혹은 남편의 건강 악화 때문인지, 애설플래드는 점차 국정 전반에 깊이 관여하게 되었습니다. 당대 사료에는 그녀가 아일랜드와 노르웨이 이주민들에게 토지를 분배하고 요새를 축조했다는 기록이 남아 있습니다.

에드워드 치세와 애설울프의 반란

메르시아와 웨식스의 동맹은 알프레드 사후(899년) 그의 아들 에드워드 장자(Edward the Elder) 치세에도 이어졌습니다. 에드워드가 직면한 첫 위기는 사촌 애설울프(Æthelwold)의 반란이었습니다. 애설울프는 알프레드 형이자 선왕 애설레드 1세의 아들이었습니다. 선왕 사후 위탄(Witan, 현인 회의)은 어린 왕자 대신 바이킹에 맞설 강력한 지도자인 알프레드를 왕으로 추대했습니다.

알프레드 사후 애설울프는 부친이 안장된 윔본 수도원에 틀어박혀 저항하다 야밤에 도주, 노섬브리아의 데인족 군대에 합류했습니다. 데인족은 그를 왕으로 추대해 괴뢰 정권을 세우려 했습니다. 902년 애설울프는 이스트앵글리아 데인군과 합세해 메르시아를 거쳐 템스강을 넘어 웨식스로 진격했습니다. 양군은 홀름(Holme)에서 격돌했고, 사료상으로는 애설울프가 전사했습니다. 다만 2011년 '알드왈두스(Aldwaldus)' 문양이 새겨진 동전이 발견되어, 그가 살아남아 노섬브리아에서 몇 년 더 통치했을 가능성도 제기됩니다.

데인로우(Danelaw) 수복과 테텐홀 전투

에드워드는 데인로우(바이킹 법률이 적용되던 지역) 수복에 나섰습니다. 이제 맞서는 데인족은 더 이상 약탈자 바이킹이 아닌, 가족과 함께 정착한 농민들이었습니다. 그들은 공격엔 익숙했으나 수비엔 서툴렀습니다.

910년 노섬브리아 데인군이 메르시아를 침공하자, 웨식스-메르시아 연합군이 테텐홀(Tettenhall)에서 이를 격파했습니다. 일부 사료는 이 전투에서 애설레드가 부상해 사망했다고 하나, 다른 기록은 그가 이미 병석에 있어 참전하지 않았으며, 그해 브렘스뷔루그(Bremesbyrig) 요새 축조를 지휘한 이가 애설플래드였다고 전합니다.

역학자 애니 화이트헤드(Annie Whitehead)는 "애설플래드가 칼을 휘두르며 군대를 이끌었는지는 알 수 없다. 메르시아 연대기(Mercian Register)는 그녀의 축성 사업에 초점을 맞추는데, 이 짤막한 기록만으로도 그녀의 지위를 가진 여성에게 그런 역할이 그리 이례적이지 않았음을 시사한다"고 평했습니다.

메르시아의 여주인, 단독 통치자가 되다

애설레드가 911년 사망하자, 메르시아인들은 애설플래드를 통치자로 추대했습니다. 앵글로색슨 7개 왕국 역사상 유례없는 일이었습니다. 그 배경에는 후사 부재, 입증된 통치 능력, 오빠 에드워드와의 우호 관계, 메르시아 귀족과의 혈연 등이 복합적으로 작용했습니다.

그녀는 재혼하지 않음으로써 단독 지도자로서의 입지를 공고히 했습니다. 앵글로색슨 연대기는 그녀를 '메르시아의 여주인(The Lady of the Mercians)'이라 칭했고, 웨일스 사료는 '메르시아의 여왕(Queen of Mercia)'이라 기록했습니다. 당대 연대기들은 그녀의 통치가 '신의 은총'에 의한 것임을 강조합니다.

애설플래드는 오빠 에드워드에게 충성을 맹세하며 웨식스의 종주권을 인정하고 런던, 옥스퍼드 등 주요 영토를 양도했습니다. 대신 웨식스의 군사 지원을 받아 동부의 바이킹 침공을 막고, 자신은 메르시아 군을 이끌고 서쪽의 웨일스족, 북쪽의 노섬브리아 데인족과 맞섰습니다.

요새 건설과 데인로우 북부 공략

애설플래드의 주된 군사 목표는 데인로우 북부에 점거된 옛 메르시아 영토를 되찾는 것이었습니다. 그녀는 오빠가 웨식스에서 데인로우 남부를 공략하는 것과 보조를 맞추며 독자적으로 작전을 수행했습니다.

그녀는 전략적 요충지에 최대 10개의 요새(버그, burh)를 축조했습니다. 이는 작전 기지이자 피난처, 그리고 메르시아의 육상·수로 교통로 장악을 위한 거점이었습니다. 그중 가장 중요한 것이 914년 축조된 워릭(Warwick)이었습니다.

웨일스 서부 국경을 정리하는 일련의 작전(웨일스족에 대한 징벌 원정 포함)을 마친 뒤, 917년 애설플래드는 웨일스에서 출발해 본격적인 데인로우 수복에 나섰습니다. 역시 에드워드의 남부 공세와 연계된 작전이었습니다. 그녀는 더비(Derby)를 점령해 유력 영주 4명을 처형했고, 918년에는 레스터(Leicester)가 항복하며 무혈 입성했습니다.

이때 요크 시민들이 데인족 통치에서 벗어나 애설플래드에게 복속하겠다는 소식이 전해졌으나, 계획을 실행하기 전 918년 6월 12일 탐워스(Tamworth)에서 서거했습니다. 유해는 20년 전 남편과 함께 세운 글로스터의 성 오스왈드 교회로 이장되었습니다.

역사적 평가

애니 화이트헤드는 그녀를 이렇게 요약합니다.

확실하진 않지만, 그녀는 강인한 성품의 비범한 여성이었을 것이다. 여성 통치자의 선례는 있어도, 이처럼 복잡한 정세에서의 사례는 없다. 에드워드가 메르시아를 직할하지 않고 그녀의 통치를 용인한 점, 처음엔 남편 병환 때, 나중엔 사후에도 그랬던 점은 두 남매의 관계와 그녀의 역량을 보여준다. 시기적으로도 중요하다. 에드워드가 그녀의 딸 앨프윈(Ælfwynn)의 승계를 막은 것은, 앨프윈의 자질 부족일 수도 있지만, 에드워드에게 이미 장성한 자녀들이 있었기에 메르시아 직할이 가능해진 시점과 맞물린다.

애설플래드 사후 딸 앨프윈(Ælfwynn)이 메르시아 왕위를 이었으나, 그녀의 통치는 극히 짧았습니다. 에드워드와의 우호 관계도 애설플래드와 함께 끝났기 때문입니다. 그 뒷이야기는 '최초의 잉글랜드 왕 애설스탄' 편에서 다루겠습니다.


참고 문헌

  • 피터 애크로이드, 잉글랜드의 역사 1: 기초(Foundations)
  • 애니 화이트헤드, 메르시아: 한 왕국의 흥망(Mercia: The Rise and Fall of a Kingdom)
  • J.R. 워킨, 암흑기 워릭과 여전사 여왕: 애설플래드, 메르시아의 여주인, 그리고 웨어링위쿰의 기원

이미지 출처: 위키미디어 커먼즈, 저자 아카이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