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럽의 역사

그리스 미술의 역사: 서양 문명에 남긴 위대한 유산

문학은 그리스인들이 서양 문명에 남긴 가장 위대하고 독창적인 업적으로 꼽힙니다. 하지만 그들의 빛나는 성취는 문학에만 머무르지 않았습니다. 건축, 조각, 음악, 철학, 연극에 이르기까지 그리스 문명은 오늘날 우리가 아는 유럽 문화의 토대를 놓았습니다.

건축과 조각: 완벽을 향한 끊임없는 추구

그리스 건축가들은 신전과 공공 건물 설계에서 놀라운 기량을 선보였습니다. 접착제(모르타르) 없이도 대리석과 석회암 블록을 완벽하게 맞추어 쌓아 올렸고, 우아한 기둥으로 건물을 지탱했습니다. 이들의 기둥 양식은 다른 민족들의 부러움을 사며 끊임없이 모방되었습니다.

조각 분야에서는 대리석과 청동을 모두 활용했습니다. 피디아스, 미론, 폴리클레토스, 리시포스, 프락시텔레스, 스코파스 등 걸출한 조각가들을 배출했습니다. 반면 회화 작품은 대부분 소실되어, 오직 채색 도기만이 현재까지 전해지고 있습니다.

음악과 시: 서정시의 탄생

그리스 음악은 단일한 관악기나 현악기가 강한 리듬에 맞추어 연주되는 형태였습니다. 즐겨 쓰인 악기는 리라(lyre), 류트와 비슷한 치터(zither), 그리고 오보에와 닮은 아울로스(aulos)였습니다. 그리스인들은 노래를 무척 좋아해 리라 반주에 맞춘 노래 형식의 시를 많이 지었는데, 이것이 바로 '서정시'의 기원입니다.

헬레니즘 시대의 문학가들 (기원전 7세기 이후)

  • 헤시오도스: 운율 있는 구절로 우주와 신들의 기원에 대한 관념을 서술했습니다.
  • 칼리노스: 사랑하는 사람의 죽음을 애도하는 비가를 지었습니다.
  • 테르판드로스: 연가(戀歌)를 창작했습니다.
  • 알카이오스: 순수한 감정을 노래한 시인입니다.
  • 사포: 아름다운 연가를 남긴 여성 시인입니다.
  • 아나크레온: 격정적인 사랑의 감정을 노래했습니다.
  • 알크만: 합창용 노래를 지은 작가입니다.
  • 핀다로스(기원전 5세기): 최고의 시 대가로 추앙받았습니다.
  • 헤카타이오스(기원전 6세기): 역사적 사실을 기록했습니다.

아테네에서 꽃피운 웅변의 예술

웅변술은 주로 아테네에서 발달했습니다. 아테네 시민들은 말하기의 예술을 열정적으로 갈고닦았고, 거의 모든 정치 지도자가 뛰어난 웅변가였습니다. 테미스토클레스는 대중을 설득했고, 페리클레스는 모든 이의 마음을 사로잡았습니다.

알키비아데스는 웅변 재능으로 가장 많은 박수를 받은 인물 중 하나였습니다. 30세에 아테네의 전략가가 된 그는 시칠리아 원정을 주도했으나, 종교적 스캔들에 휘말려 스파르타로 도피했습니다. 이후 스파르타 장군들의 표적이 되자 사트라프 티사페르네스 밑으로 몸을 숨겼습니다. 멀리서 벌인 정교한 음모 끝에 아테네 정치 세력과의 관계를 되살렸고, 일련의 군사적 승리를 거쳐 개선의 기세로 아테네에 입성했습니다. 그러나 연이은 좌절로 트라키아로 피신했고, 기원전 404년 스파르타의 사주를 받은 자들의 손에 살해당했습니다.

데모스테네스(기원전 4세기)는 아테네 최고의 웅변가이자 역사상 가장 위대한 연설가 중 한 명입니다. 그는 「필리피카」 연설에서 마케도니아의 팽창주의에 맞서 그리스인들에게 경각심을 일깨웠습니다. 올린토스 함락 후에는 필로크라테스의 화평(기원전 346년)을 체결한 사절단에 참여했고, 아테네가 이 평화의 시간을 활용해 결정적 충돌에 대비하도록 독려했습니다. 기원전 344년부터 340년까지 마지막 세 편의 필리피카를 발표했으며, 같은 시기 정적 아이스키네스를 상대로 격렬한 논쟁을 벌였습니다. 기원전 338년 카이로네이아 전투에서 동맹군이 필리포스 2세에게 패배했지만, 그는 기원전 330년 '관(冠)에 대한 연설'을 통해 자신의 정치 행보를 변호하고 아이스키네스를 추방시켰습니다. 알렉산드로스 대왕 사후에는 그리스 도시들이 안티파트로스에 맞서 일으킨 반란을 지원했으나, 아테네가 크라논 전투(기원전 322년)에서 패배하자 독약으로 스스로 생을 마감했습니다. 그의 60편에 달하는 정치 연설과 변론은 오늘날까지 웅변의 모범으로 남아 있습니다.

그 밖에 데모스테네스와 웅변 대결을 벌인 아이스키네스, 탁월한 연설가 리시아스, 수사학의 대가 이소크라테스 등이 이 시대를 빛냈습니다.

문화유산: 서양 문명의 기초

서유럽 문화의 기초는 그리스가 남긴 유산 위에 세워졌습니다. 그리스 철학은 데모크리토스, 아낙사고라스, 소크라테스, 플라톤, 아리스토텔레스, 밀레토스의 탈레스 등의 가르침 속에서 오늘날까지 생명력을 유지하고 있습니다. 플라톤의 『국가』, 『향연』, 『파이돈』과 아리스토텔레스의 『정치학』 같은 저작은 현대에도 계속 연구되고 있습니다.

의학에서는 히포크라테스가, 기하학에서는 유클리드와 피타고라스가, 물리학에서는 아르키메데스가 각각 두각을 나타냈습니다. 예술 분야에서는 미적 완벽의 추구가 끊임없이 이어졌습니다.

기원전 5세기, 페리클레스의 통치 아래 그리스 문화는 절정에 달했습니다. 그는 예술가들을 보호하고 수많은 기념물 건설을 주도했습니다. 피디아스는 이 시대 최고의 조각가로, 그가 조각한 올림피아의 제우스 신상은 고대 세계 7대 불가사의 중 하나로 꼽혔습니다. 미론은 운동선수를 기리는 『원반 던지는 사람』으로 유명합니다.

그리스의 위대함을 세계에 알리기 위해 신전, 극장, 원형극장, 오데온이 흰 대리석으로 지어졌습니다. 외국인들이 이 장관을 목격하고 그 아름다움이 온 세계에 퍼져나가길 바랐던 것입니다.

소포클레스, 에우리피데스, 아리스토파네스 등 경외받는 극작가들의 작품은 오늘날에도 전 세계 극장 무대에서 공연되고 있습니다. 그리고 그리스의 헤로도토스는 '역사의 아버지'로 불립니다.

연극: 디오니소스 제전에서 시작된 예술

연극은 그리스인들이 오랫동안 키워 온 활동이었습니다. 초기 연극은 신 디오니소스에게 바치는 의식으로, 합창 노래가 중심이었습니다. 이후 아테네에서 배우 한 명이 합창대장과 대화를 나누는 형식으로 발전했습니다.

  • 아이스킬로스: 위대한 비극 작가로, 신들의 정의를 주제로 삼았습니다.
  • 소포클레스: 행위·시간·장소의 통일이라는 그리스 비극의 틀을 확립했으며, 인간은 운명에서 벗어날 수 없음을 그려냈습니다. 최고의 극작가들은 페리클레스 시대의 아테네에서 활동했습니다.
  • 에우리피데스: 극 예술에 혁신을 가져왔습니다.
  • 아리스토파네스: 희극 작가로서 급진적인 사상을 조롱하고 당대의 풍습을 날카롭게 비판했습니다.

호메로스와 트로이의 발견

호메로스가 쓴 서사시들은 오랫동안 단순한 그리스 전설로 여겨졌습니다. 그러나 1870년 독일의 고고학자 하인리히 슐리만이 트로이 유적을 발굴하면서 호메로스의 텍스트는 진실성과 역사적 가치를 인정받게 되었습니다.

한편, 최근 그리스의 고고학 유적지에서 발견된 가면이 이스터섬의 모아이 석상을 닮아 화제가 되기도 했습니다. 시대와 지역을 뛰어넘는 인류 조형 예술의 신비로운 연관성을 느껴볼 수 있는 대목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