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럽의 역사

페레힐 섬 분쟁: 총성 없이 끝난 스페인–모로코의 2002년 위기

협력과 갈등을 반복해 온 스페인–모로코 관계

1975년 이후 스페인과 모로코의 관계는 여러 국면을 거치며 협력과 대립 사이를 오갔다. '녹색 행진(Green March)'과 페레힐 섬 문제가 그 대표적인 사례다. 양국 사이에는 공통 이익이 풍부하지만, 특정 순간 심각한 충돌로 번질 수 있는 현안들도 쌓여 있다. 여기에는 북아프리카에 위치한 스페인령 도시인 세우타와 멜리야 및 인접 영토뿐 아니라, 카나리아 제도 주변 해역의 경계선 획정을 둘러싼 분쟁까지 포함된다.

페레힐 섬, '주권 영토'가 지닌 상징성

페레힐 섬은 소위 '북아프리카 스페인 주권지(plazas de soberanía)'에 속한다. 이곳은 스페인령 모로코 보호령의 경계 밖에 있던 영토들로, 모로코 연안 인근에 자리한 섬과 암초들의 집합이다(지도 참조). 세우타나 멜리야에서 의무 복무를 마친 이들에게 특히 익숙한 곳으로는 차파리나스 제도, 알우세마스 제도, 벨레스 데 라 고메라 암초가 있으며, 여기에 페레힐 섬이 더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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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러한 영토들은 현재 전략적 가치가 거의 없지만, 역설적으로 스페인과 모로코 양국 모두에게 높은 상징적 가치를 지닌다. 어떤 이유에서든 양국 간 긴장이 고조되면 모로코의 주권 요구가 곧바로 표면화되곤 하는데, 현 국왕 모하메드 6세가 즉위한 1999년 이후 바로 그런 흐름이 형성되었다.

2002년 페레힐 섬 사건의 발단

페레힐 섬 사건은 스페인과 모로코 간의 무력 대치였다 — 물론 단 한 발의 총성도 울리지 않았지만 말이다. 2002년 7월 11일부터 20일까지 이어진 이 사건의 직접적인 원인은, 처음에는 모로코 헌병들이, 이후에는 해병대가 페레힐 섬을 군사적으로 점거한 것이었다. 이는 1975년 녹색 행진 이래 양국 관계에서 가장 심각한 위기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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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국 관계가 삐걱거린 배경

두 나라의 관계를 어긋나게 만든 요인은 무엇이었을까? 첫 번째 불화씨는 어업 문제에서 싹텄다. 2000년 EU와 모로코 간 협상이 시작되었고, 그 결렬이 양국 소원의 시작이 되었다. 합의에 실패한 스페인 정부는 알제리와 튀니지로 외교적 무게중심을 옮겼는데, 알제리가 마그레브 지역 패권을 놓고 모로코의 최대 경쟁국이라는 점을 감안하면 모로코 입장에서 결코 달가울 수 없는 움직임이었다.

또 다른 대립 쟁점은 불법 이민 문제였다. 아스나르 정부는 이민법을 강화하면서 모로코가 자국 연안에서 출발하는 이민자 유입을 막는 데 소홀하다고 비난했다. 여기에 폴리사리오 전선에 대한 스페인의 자금 지원 의혹, 그리고 스페인 정부가 카나리아 제도 인근 해역에서 석유업체 렙솔(Repsol)에 부여한 석유 개발 허가권을 둘러싼 불일치 — 모로코는 해당 해역이 자국 영해라고 주장했다 — 까지 갈등 요소에 더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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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부 분석가들은 이러한 소원의 배경을 모로코 내부 정치에서 찾기도 한다. 모하메드 6세 즉위가 불러일으켰던 변화에 대한 기대가 좌절되면서 이슬람주의 세력이 정치 무대로 재등장하고 있었다. 이런 상황에서 국왕과 모로코 정부는 '외부의 적'을 내세워 내부 결속을 다지는 길을 선택했을 가능성이 제기된다.

외교적 긴장의 고조

외교적 긴장은 2001년 10월 28일 모로코가 주스페인 대사를 소환·철수시키면서 절정에 달했다. 외교 관례에서 이는 매우 적대적인 조치로 간주된다. 갈등은 2002년 7월 11일 한 단계 더 격화되었다. 왕실 모로코 헌병대 소속 12명이 페레힐 섬에 상륙한 것이다. 모로코는 독립 이후 이 암초섬이 자국 영토라고 주장하며, 점거를 불법 밀거래를 차단하기 위한 조치로 정당화했다.

스페인의 초기 대응은 군사적 대결과는 거리가 있는 온건한 수준이었으나, 이 사태는 즉시 EU와 NATO에 보고되었다. 스페인은 헌병의 철수와 이전 지위(quoad status quo)로의 복귀를 요구했고, 모로코가 답하지 않자 군사 행동을 검토하기 시작했다. 이미 EU는 강경한 규탄 성명을 발표해 스페인의 입장을 지지했고, NATO 역시 원상 복구를 촉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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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부 자료에 따르면, 섬에 헌병을 파견하기로 한 결정은 프랑스와 미국 등 가장 가까운 동맹국은 물론 자국 정부에도 충분히 상의하지 않고 국왕 본인이 내린 것이라고 한다. 그 결과 모로코는 헤어나오기 어려운 곤경에 빠졌고, 비록 협상 개시 시도가 몇 차례 있었으나 성과를 거두지 못했다.

10분 만에 끝난 스페인군의 탈환 작전

7월 16일, 모로코는 섬의 헌병 분견대를 해병대로 교체했고, 이는 사태의 '군사화'를 의미하는 조치였다. 같은 날 스페인은 세우타와 멜리야의 주둔지를 증강하고 해군 여러 부대를 동원했으며, 주모로코 대사를 소환하여 의견을 들었다. 정부는 공개적으로는 교전 의도가 없다고 밝혔지만, 모로코에는 7월 17일 수요일 새벽까지를 기한으로 하는 사실상의 최후통첩이 전달되었다.

그 직전, 특수작전 부대(녹색 베레모) 일부가 세비야로 이동했다. 총 28명으로 구성된 이 부대는 헬리콥터 7대에 나눠 탑승해 섬으로 진입, 신속한 기습을 감행했다. 작전 소요 시간은 단 10분이었다('로메오-시에라 작전'). 모로코 병사들은 저항 없이 항복했고 다음 날 모로코로 송환되었다. 한편 스페인 해군은 모로코 인근 항구들을 봉쇄했고, 초계함 2척이 해병대를 지원하던 모로코 초계정의 동선을 차단했다. 공군은 F-18과 미라주 F-1 전투기를 투입해 전 병력을 엄호했다. 이 군사 작전은 육해공 3군이 수행한 정교한 합동 작전이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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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의 중재로 막을 내린 갈등

군사 작전이 종료되자 아스나르 정부는 즉시 모로코 정부와 접촉해 협상에 돌입했으며, EU와 NATO는 물론 UN 안전보장이사회에도 상황을 통보했다. 스페인군 외인부대 병사들은 양국이 미국의 중재로 합의에 도달할 때까지 며칠간 섬에 머물렀다. 합의의 골자는 섬을 무인 상태로 유지하고 어느 쪽도 군사 주둔을 하지 않는다는 것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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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건의 여파

스페인의 무력 탈환은 남쪽 이웃 나라 모로코에 '굴욕'으로 받아들여졌고, 모하메드 6세 국왕은 아스나르 총리에 대한 반감을 드러내는 것을 삼가지 않았다. 양국의 냉랭한 관계는 2003년 초 대사들이 각각 부임지로 복귀하면서 완화되기 시작했고, 2004년 3월 신정부 수반 사파테로 총리의 모로코 방문으로 비로소 정상화되었다.


참고문헌

Casqueiro, J. (2015). Parsley losers tell their war. El País. https://politica.elpais.com/politica/2015/02/08/actualidad/1423421786_399102.html

Cembrero, I. (2006a). The secrets of making Parsley. El País. https://elpais.com/diario/2006/03/19/domingo/1142743960_850215.html

Cembrero, I. (2006b). Vecinos lejanos: los secretos de la crisis entre España y Marruecos. Barcelona: Galaxia-Gutenberg.

EFE. (2010). Parsley opened fifteen months of hostilities. El Mundo. https://www.elmundo.es/elmundo/2010/08/18/espana/1282125284.html

Molina Garcia, M.J. (2003). España-Marruecos (1996-2002): un modelo de política exterior hacia el Magreb. Universidad Complutense de Madrid, Madrid.

Wikipedia. Incidente de la isla de Perejil. https://es.wikipedia.org/wiki/Incidente_de_la_isla_de_Perejil