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400년~500년: 비잔틴 제국의 눈부신 번영
5세기 내내 비잔틴 제국(당시에는 동로마 제국이라 불림)은 서쪽에서 밀려오는 이민족(야만족)의 침입을 성공적으로 막아냈습니다. 서고트족, 훈족, 동고트족 등이 그 대상이었습니다. 당시 가장 부유한 속주는 시리아, 팔레스타인, 이집트였습니다. 이 지역의 도시들에는 학교와 도서관이 우후죽순처럼 생겨나며 지적 사색, 철학, 종교가 공존하는 학문의 중심지로 발전했습니다.
정책 결정은 콘스탄티노플에서 이루어졌지만, 기독교 정통 신앙은 동방에서 확립되었습니다. 정교회(동방 정교회)는 세 개의 주요 기독교 분파 중 하나로, 나머지 둘은 가톨릭 교회와 종교개혁에서 파생된 개신교 교파들입니다.
527년~565년: 유스티니아누스 1세의 통치
유스티니아누스는 527년 8월 1일, 자신을 양자로 삼았던 숙부의 죽음으로 황제가 되었습니다. 당시 그의 나이는 46세였고, 농촌 사회가 극도로 혼란스러운 어려운 상황을 물려받았습니다. 대도시에서는 파벌 간 갈등이 격화되어 폭동이 잇따랐고, 그의 왕좌는 크게 위협받았습니다.
주변의 반대를 무릅쓰고 결혼한 황후 테오도라가 도망치지 말 것을 설득했고, 덕분에 유스티니아누스는 왕위를 지킬 수 있었습니다. 유스티니아누스의 통치는 동방에서 고대의 끝을 상징합니다. 로마 세계의 근간이었던 도시들은 더 이상 성장하지 못하고, 마을과 요새로 이루어진 중세 세계가 확산되기 시작했습니다.
528년~534년: 유스티니아누스 법전
유스티니아누스는 법률 체계를 전면적으로 개편하여 현행 법령을 모두 집대성한 '유스티니아누스 법전'을 편찬했습니다. 이는 그의 통치기 최대 업적 중 하나로 꼽히지만, 다소 성급하게 작성된 탓에 모순과 결함도 적지 않습니다. 그럼에도 이 법전은 훗날 유럽 대륙법 체계의 기초가 되었다는 점에서 역사적 의미가 매우 큽니다.

532년~550년: 비잔틴 제국, 전성기에 도달하다
왕좌를 굳건히 다진 유스티니아누스는 페르시아 국왕과 '영원한 평화' 협정을 체결했습니다. 이어 그는 한때 서로마 제국의 영토였던 지역들을 재정복하는 데 착수했습니다. 이는 전략적 필요라기보다 이념적 필요에 가까웠는데, 그는 비잔틴 제국을 하나님 나라의 지상적 형상으로 여겼기 때문입니다.
그는 반달족의 지배 아래 있던 북아프리카를 1년도 안 되어 쉽게 정복했습니다. 이탈리아로 진군한 그는 나폴리와 로마를 거의 무혈입성으로 점령했습니다. 그러나 토틸라가 이끄는 고트족이 반격하며 세력을 회복했습니다. 유스티니아누스는 강력한 군대를 파견해 4년간의 가차 없는 전쟁 끝에 고트족, 프랑크족, 알레만니족을 몰아냈습니다. 약탈당한 반도에 제국의 권위를 재확립하면서, 지중해는 다시금 '로마의 호수'가 되었습니다.
그러나 속주들은 무정부 상태에 방치되어 있었습니다. 사병(私兵) 조직의 두목들이 공권력에 도전하고, 농민을 약탈하며 교회를 습격하는 일이 빈번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수많은 정복을 통해 축적된 막대한 자원을 바탕으로, 유스티니아누스는 위대하고 웅장한 정책을 추진했습니다. 위대한 기독교 제국을 건설하겠다는 그의 꿈은 실현되었고, 그는 아내와 함께 소아시아부터 이탈리아에 이르기까지 수많은 교회와 공공 건축물을 세웠습니다. 하기아 소피아 대성당이 바로 이 시기의 대표작입니다.
그러나 일부 지역은 전반적인 번영에서 소외되었고, 이는 침입자들을 끌어들이는 요인이 되었습니다. 541년에는 페스트(흑사병)가 제국을 휩쓸었고, 이후에도 반복적으로 재발했습니다. 결정적으로 제국의 심장부를 흔든 것은 종교 논쟁이었습니다. 단성론(모노피시즘)과 네스토리우스파 문제는 끝내 해결되지 못했고, 제국을 크게 약화시켰습니다. 유스티니아누스 사후 비잔틴 제국은 점차 축소의 길을 걷게 됩니다.

비잔틴 예술
이 시대의 예술가들은 섬세한 자수 공예와 상아 조각으로 명성이 높았습니다. 또한 선명한 색채의 거대한 모자이크를 제작했으며, '아이콘'이라 불리는 종교 회화를 남겼습니다.
종교적 분열
비잔틴 제국의 교회들은 독특한 건축 양식을 지녔으며, 예배는 그리스어로 집전되었습니다. 비잔틴 교회는 콘스탄티노플 총대주교가 이끌었습니다.
635년: 아랍의 침입
유스티니아누스 사후 70년, 비잔틴 제국은 아랍의 침입을 막아내지 못했습니다. 제국은 시리아, 팔레스타인, 이집트 등 부유한 동방 속주들을 잃게 됩니다.
1054년: 동방 교회와 서방 교회의 분열
총대주교와 교황(서방 로마 교회의 수장) 사이의 오랜 종교 분쟁 끝에, 두 교회는 마침내 결별했습니다. 이른바 '동서 교회 대분열'로, 오늘날 정교회와 가톨릭 교회로 나뉘는 결정적 계기가 되었습니다.
1204년: 십자군, 콘스탄티노플을 함락하다

제4차 십자군은 원정 목표를 변경해 같은 기독교 도시인 콘스탄티노플을 공격해 함락시켰고, 도시는 처참히 약탈당했습니다.
1261년: 비잔틴인들, 십자군을 격퇴하고 제국을 수호하다
비잔틴인들은 무슬림과 투르크와 끊임없는 전투를 벌여야 했습니다. 북쪽에서는 부족들의 위협에 시달렸고, 동맹이어야 할 서유럽의 십자군과도 싸워야 했습니다. 1261년 비잔틴인들은 마침내 콘스탄티노플을 탈환하며 제국을 되찾았습니다.
1400년: 콘스탄티노플 주변으로 축소된 비잔틴 제국
한때 지중해 전역을 지배했던 제국은 이제 콘스탄티노플과 그 주변 지역에 불과할 만큼 영토가 급격히 줄어들었습니다.
1453년: 비잔틴 제국의 멸망
오스만 투르크가 콘스탄티노플을 공격했습니다. 도시는 약 6주간 버텼으나 결국 항복하고 말았습니다. 오스만 군대의 함락과 함께, 천 년 역사를 지닌 비잔틴 제국은 역사 속으로 사라졌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