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로마 공화정에는 왕이 없었습니다. 국정은 원로원의 자문을 받아 임기 1년의 두 집정관(콘술)이 중심이 되어 운영해 나갔습니다.
흥미로운 점은 집정관을 비롯한 대다수의 요직이 무보수로 수행되었다는 것입니다. 그럼에도 집정관에 이르기까지의 승진 과정은 '쿠르수스 호노룸(Cursus Honorum)', 즉 '명예의 코스'라 불리며 크나큰 영광으로 여겨졌습니다.
로마판 '명문 출세 코스'
그렇다면 현대 일본에서 쿠르수스 호노룸에 가장 가까운 것은 무엇일까요? 도쿄대학 법학부를 나와 관료가 되어 차관까지 오르는 코스일까요, 아니면 정치인이 되어 총리에 오르는 코스일까요? 어느 쪽도 쿠르수스 호노룸과는 다소 거리가 있어 보입니다.
로마 공화정을 이룩한 라틴인들은 무엇보다도 '명예의 민족'이었습니다. 그 책임감은 오늘날 이탈리아인들의 조상이라고는 믿기 힘들 정도였고, 공화정 초기의 그들은 사적(私的) 봉사라고 부를 만큼 모든 것을 로마라는 나라에 바쳤습니다.
공직 생활의 첫걸음은 보통 '아에딜리스'라 불리는 감독관이나 '콰이스토르'라 불리는 재무관으로 시작되는 경우가 많았습니다.
이러한 직위는 모두 선거로 결정되었습니다. 공화정 초기에는 귀족 계급인 파트리키가 정치를 주도했지만, 리키니우스 법과 호르텐시우스 법을 거치며 평민 계급인 플레브스의 세력은 점차 강해졌습니다. 그 결과 플레브스 출신이라도 집정관까지 오를 수 있게 되었을 뿐 아니라, 평민만을 위한 특별 직위인 호민관(트리부누스)도 마련되었습니다.
아에딜리스나 콰이스토르에 당선되면 원로원 의석을 갖게 되는데, 가문의 배경 없이 처음으로 원로원에 진출한 인물은 '노부스 호모(Novus Homo, 새로운 인물)'라 불렸습니다. 일종의 신흥 귀족 계급이라 할 수 있는 존재입니다.
공화정 말기에 활약한 키케로가 바로 대표적인 노부스 호모입니다. 평민이라도 원로원 의석을 얻을 수 있었고, 해방 노예조차 자녀 세대부터는 로마 시민권을 부여받았기 때문에, 이 명예의 코스에 오르는 것은 결코 불가능한 일이 아니었습니다.
공화정 로마에서는 재능만 있다면 누구나 로마 최상류층인 원로원 계급에 진입할 수 있었고, 누구나 집정관이 될 수 있는 열린 사회였습니다. 바로 이 점이 로마 사회에 강한 활력을 불어넣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그리고 이러한 활력은 애국심으로 이어졌습니다. 한니발이 이탈리아 반도를 침공했을 때 단 하나의 도시도 카르타고 쪽으로 넘어가지 않았다는 사실이 그 방증입니다.
쿠르수스 호노룸의 몰락
제정(帝政) 로마 시대에도 원로원은 여전히 엄연한 권력 기구로 남아 있었습니다.
초대 황제 아우구스투스부터 이른바 '오현제(五賢帝)'로 불리는 황제들에 이르기까지는 원로원을 존중하는 정치가 이어졌습니다. 그러나 마르쿠스 아우렐리우스 황제의 뒤를 이은 콘모두스 때부터 상황이 기묘하게 흐트러지기 시작합니다. 원로원의 권력은 급속히 쇠퇴했고, 디오클레티아누스 황제가 '도미나투스', 즉 전제 군주정을 시작하면서 원로원은 사실상 유령 조직처럼 변하고 말았습니다.
서로마 제국이 서기 476년에 멸망한 뒤에도 원로원과 쿠르수스 호노룸은 한동안 명맥을 이어갔습니다. 하지만 동로마(비잔티움) 제국의 유스티니아누스 황제가 고트 전쟁 중 로마를 점령하면서 원로원 자체가 소멸했고, 천 년 가까운 역사를 지닌 쿠르수스 호노룸 역시 마침내 역사 속으로 사라지고 말았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