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로마 제국 7대 황제 오토는 네로 황제 사후 한 해 동안 세 명의 황제가 차례로 교체되던 격동기에 잠시 왕좌에 올랐던 인물입니다.
오랫동안 네로와 가까운 사이였지만, 어느 순간부터 두 사람의 관계는 틀어지게 됩니다. 그 결정적 계기는 다름 아닌 오토의 아내였습니다.
아내를 빼앗긴 오토
초대 황제 아우구스투스는 사랑에 빠진 여인 리비아를 얻기 위해 그녀의 남편에게 이혼을 요청했고, 클라우디우스 가문 출신이던 그 남편은 이를 받아들였습니다.
너무나 닮은 일이 네로에게도 벌어집니다. 미녀 포파이아와 결혼하고 싶었던 네로는 오토에게 아우구스투스와 같은 제안을 했던 것입니다.
그러나 오토는 거부했습니다. 이에 네로는 오토를 루시타니아(오늘날 포르투갈) 총독으로 임명해 멀리 내쫓은 뒤, 포파이아를 강제로 아내로 삼습니다.
흥미롭게도 이 결혼은 네로의 모친 아그리피나를 격분시켰고, 네로가 친모를 암살하는 비극의 한 단초가 되었다고 전해집니다.
한편 아내를 빼앗긴 오토는 루시타니아에서 훌륭한 통치로 명성을 쌓으며, 네로와는 정반대로 민심을 얻는 데 성공합니다.
이윽고 빈덱스가 반란을 일으켜 갈바야말로 황제의 적임이라고 주장하자, 오토는 로마의 최고 의사결정기관인 원로원과 함께 갈바의 즉위를 지지합니다.
결국 황제 네로는 궁지에 몰려 스스로 목숨을 끊습니다. 오토 입장에서는 길고 긴 복수극이 막을 내린 셈입니다.
오토의 지지는 갈바의 즉위에 크게 기여한 것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그러나 갈바는 오토가 아닌 피소라는 인물을 양자로 들여 후계자로 지명합니다.
이에 분노한 오토는 갈바와 피소를 함께 암살하고, 스스로 황제의 자리에 오릅니다.
도나우 군단 VS 라인 군단
문제는 그 직후부터 시작됩니다. 로마 최강으로 꼽히던 게르마니아 군단은 오토의 즉위를 인정하지 않았습니다.
비텔리우스가 이끄는 게르마니아 군단이 로마로 진군하자, 오토는 도나우 유역의 군단을 소집해 맞섭니다.
제국 방어의 최전선이던 라인 유역 군단과 도나우 유역 군단이 정면으로 충돌하는 국면이 펼쳐진 것입니다.
두 군단은 북부 이탈리아에서 격돌했고, 이 전투는 후대에 ‘베드리아쿰 전투’라는 이름으로 기록됩니다.
치열한 공방 끝에 승리를 거머쥔 것은 역시 최강이라 불리던 게르마니아 군단이었습니다.
그러나 승전 이후 게르마니아 군단은 패배한 도나우 군단을 경멸적으로 대했고, 이는 훗날 내전을 더욱 격화시키는 불씨가 됩니다.
패색이 짙어지자 오토는 자신의 운명을 직감하고 스스로 생을 마감합니다. 당시 그의 나이는 37세, 재위 기간은 고작 석 달, 약 90일이었다고 합니다.
오토에 대한 평가
오토는 아마도 내정에 재능이 있던 인물이었을 것입니다. 총독 시절 그의 평판이 좋았다는 사실이 이를 방증합니다.
반면 그는 전쟁 경험이 부족했고, 설상가상으로 로마 최강의 게르마니아 군단과 적으로 맞서야 했습니다. 선황을 살해한 데 대한 인과응보라는 평가도 있습니다.
술라나 카이사르처럼 열세를 뒤집을 역량이 있었다면 역사는 달라졌겠지만, 안타깝게도 오토는 영웅이 아니었습니다.
그럼에도 역사가 타키투스는 오토에게 높은 점수를 매겼습니다.
“오토에 대해 평가해야 할 것은 그의 죽음이다. 덕분에 흘려야 할 피의 양이 크게 줄어들었다.”
로마를 집어삼킨 소용돌이는 아직 끝나지 않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