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럽의 역사

로마 제2대 왕 누마 폼필리우스 이야기 – 10월이 왜 'October'라고 불릴까?

로마 제2대 왕 누마 폼필리우스 이야기 – 10월이 왜  October 라고 불릴까?

로마 제2대 왕, 누마 폼필리우스

'누마'라는 이름을 들어본 적 있는 사람이 얼마나 될까요? 세계적으로도 인지도가 높지 않을 것이고, 아마 그 존재조차 모르는 사람이 대부분일 겁니다. 하지만 조금만 알아보면, 이 인물은 결코 무시할 수 없는 위대한 업적을 남긴 인물입니다.

오늘은 로마 왕국의 제2대 왕 '누마 폼필리우스(Numa Pompilius)'의 이야기를 들려드리겠습니다.

로물루스의 후계자를 둘러싼 갈등

로마의 건국자 로물루스가 갑작스럽게 사라진 후, 누가 그 뒤를 이을 것인가를 두고 큰 분쟁이 벌어졌다고 합니다.

로마는 참 흥미로운 나라입니다. 초기 왕정 시대부터 제정 시대에 이르기까지 기본적으로 '세습'이라는 개념이 없었습니다. 세습 개념이 없는 왕정 체제는 세계 어느 나라에서도 찾아보기 드문 일입니다.

일본과 중국의 여러 왕조, 그리고 훗날의 잉글랜드와 프랑스에서는 세습이 당연한 기본이었죠. 그런데 로물루스가 사라진 후에도 로물루스 가문이 왕위를 계승해야 한다는 생각을 가진 사람은 아무도 없었습니다.

당시 로마는 로마인과 사비니인이 공존하는 국가였기 때문에, 원로원은 로마인 출신 왕을 세우자는 파와 사비니인 출신 왕을 세우자는 파로 갈라져 있었습니다. 현대의 대기업부터 고대 로마까지, 인간이 저지르는 일은 언제나 비슷하네요.

이런 교착 상태에서는 최대한 자기 욕심 없는 인물을 선택하는 것이 가장 좋은 해결책입니다. 그래서 백마의 화살이 꽂힌 사람은 40세를 넘긴 '누마 폼필리우스'였습니다.

오늘날 기준으로 40세면 젊지만, 당시 평균 수명을 감안하면 충분히 노인 수준이었을 겁니다. 사카모토 료마가 29세에 세상을 떠났다는 사실에 놀라는 것과 마찬가지로, 옛날 사람들은 보통 그렇게 오래 살지 못했습니다.

권력욕 없던 평화주의자

누마는 상당히 무욕한 인물이었던 것으로 전해집니다. 사비니인 대부분이 로마 시내로 이주해 살기 시작했지만, 누마는 밭을 가꾸며 명상과 철학에 몰두하는 삶을 살았습니다. 사비니 왕의 사위였음에도 권력에 대한 야망이 전혀 없었던 인물이죠.

이런 성품이 잘 드러난 것이 바로 그의 통치 기간입니다. 재위 43년 동안 단 한 번의 전쟁도 없었던 평화의 시기였다고 합니다. 고대에 이런 평화주의 군주는 극히 드뭅니다. 전쟁에 평생을 바친 로물루스의 삶과 정확히 대칭을 이룬다고 할 수 있습니다.

참고로 누마가 피타고라스 학파의 학문에 열중했다는 이야기가 있는데, 피타고라스는 누마보다 후대의 인물이기 때문에 아마 후세의 창작일 겁니다. 도요토미 히데요시의 '초신 설화'와 같은 종류의 미담이죠.

누마는 로마의 왕위를 세 번이나 거절했다고 전해집니다. 아마 정말로 시골에서 조용히 살고 싶어 했던 인물이었겠죠. 만약 야심만만한 인물이 왕이 되었다면, 어린 로마는 급격한 팽창 욕심 때문에 일찍 무너졌을지도 모릅니다.

역법 개혁 – 10월이 'October'인 이유

제정 시대의 역사가 리비우스는 누마에 대해 다음과 같이 평했습니다.

'무력과 전쟁으로 기반을 다진 로마에 법과 관습의 확실성을 부여하려 했다.'

누마가 이룩한 대표적인 업적은 역법 개혁과 종교 개혁입니다.

누마 이전의 로마력은 1년을 10개월로 설정하고 있었습니다. 그가 이를 12개월로 바꾸었죠. 다만 1년을 355일로 계산했기 때문에, 약 20년마다 윤달을 넣어 조정했다고 합니다.

이것이 얼마나 대단한 일인지 짚어볼 필요가 있습니다. 일본의 히미코(卑弥呼)보다 약 800년이나 앞선 시대의 인물입니다. 당시 문명의 수준이 어느 정도였는지 짐작할 수 있죠. 게다가 누마가 정한 역법은 율리우스 카이사르가 새로운 율리우스력을 도입할 때까지 무려 600년 이상 사용되었습니다. 600년 후의 세상을 상상할 수 있으신가요? 600년 전이라면 무로마치 시대입니다. 그만큼 오랫동안 쓰인 역법이라는 것 자체가 놀라운 성취입니다.

그리고 여기서 재미있는 사실 하나. 영어로 10월은 'October'입니다. 'Oct'는 8을 뜻하므로, 원래 10월은 8번째 달이었다는 뜻이죠. 마찬가지로 'Novem'은 9, 'Decem'은 10을 의미합니다. 누마가 연초에 1월과 2월 두 달을 추가하면서 월의 순서가 밀렸지만, 기존 이름은 그대로 남았기 때문입니다. 누마가 채택한 월 명칭이 현대에까지 영향을 미치고 있다는 점에서도 이는 위대한 업적이라 할 수 있습니다.

종교 개혁 – 신관이 권력을 잡지 못한 나라

하지만 누마의 업적은 종교 개혁에서 더욱 크게 빛납니다.

로마는 다신교 국가였습니다. 로마인들은 그리스와 사실상 같은 신들을 섬겼습니다. 제우스는 유피테르가 되고, 헤라는 유노가 되지만, 본질적으로 동일한 신들이죠. 그리스 신화에 익숙한 사람이라면 알겠지만, 그 신들은 무척 인간적입니다. 오히려 인간이 신처럼 느껴질 정도입니다. 좋든 나쁘든 자유도가 매우 높았고, 이는 규율을 중시하는 유대교·기독교의 신과는 정반대의 모습입니다.

누마는 신관 조직을 설립했습니다. 흥미롭게도 이 신관들은 전임 신관이 아니었습니다. 역사적으로 신관은 전임직이 압도적인 것이 일반적이고, 목사나 신부도 기본적으로 전임이지만, 로마의 신관들은 달랐던 것이죠.

더욱이 이 신관들은 선거로 선출되었다고 합니다. 지금의 국회의원을 뽑는 방식과 같습니다. 과연 괜찮을까 싶지만, 쾌활한 라틴 민족답습니다. 애초에 최고신 유피테르조차 엉망진창인 행동을 일삼는 신화를 가진 민족이니, 그런 부분이 느슨했을지도 모르죠.

이러한 체제 덕분에 로마에서는 신관들이 권력을 장악하는 일이 없었습니다. 약 800년 후의 일본에서 신관보다 강력한 권력을 행사한 무녀들과는 정반대입니다. 중세 유럽에서는 성직자 세력이 왕권을 능가할 정도로 비대해졌고, 고대 이집트에서는 신관들이 때때로 왕을 배제하기도 했습니다. 하지만 로마에서는 이런 일이 일어나지 않았습니다.

신분을 고정하지 않은 개방적인 구조가 성공 요인이었고, 훗날 어떤 역사학자들은 '로마가 발전한 가장 큰 이유는 종교에 대한 사고방식이다!'라고 평하기도 했습니다. 어떤 의미에서 누마 폼필리우스야말로 로마 번영의 초석을 다진 인물이라 할 수 있습니다.

누마는 훗날의 영웅 카이사르처럼 암살당하지 않고 평온한 일생을 마쳤습니다. 불과 50년 사이에 황제가 20번 넘게 교체된 군인황제 시대와 비교하면 실로 대조적이죠.

개인적으로는, 고대에 40년 넘게 전쟁 한 번 없이 나라를 다스린 누마 폼필리우스가 좀 더 높이 평가받아도 좋지 않을까 생각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