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마의 건국 신화에 따르면, 로마인의 조상은 트로이 전쟁의 영웅 아이네아스이며, 그의 후손 중 한 명인 로물루스가 로마를 세웠다고 전해집니다.
이번 글에서는 아이네아스의 후손인 로물루스와 레무스 형제의 이야기를 소개합니다. 베르길리우스의 대작 『아이네이스』의 줄거리가 궁금하시다면 관련 글도 함께 확인해 보세요.
신의 피를 이은 쌍둥이, 로물루스와 레무스
그리스 신화에서는 신과 인간이 결혼하거나 자식을 두는 일이 흔한데, 그 흐름을 이어받은 로마 신화에도 비슷한 이야기가 등장합니다.
두 형제의 어머니는 아이네아스의 혈통을 이은 알바 롱가의 공주 레아 실비아이고, 아버지는 전쟁의 신 마르스(그리스 신화의 아레스)입니다.

위 그림은 루벤스의 「마르스와 레아 실비아」입니다. 루벤스는 플란더스 출신의 화가로, 네로가 죽기 전까지 꼭 보고 싶어 했다는 그림의 작가이기도 합니다.
두 형제는 기원전 8세기경에 태어난 것으로 전해집니다. 트로이 전쟁이 대략 기원전 1200~1300년경으로 추정되므로, 두 시점 사이에는 약 500년의 세월이 흘렀던 셈입니다.
그런데 두 형제에게는 숙명적인 적이 있었습니다. 바로 알바 롱가의 왕, 즉 숙부 아물리우스입니다. 아물리우스는 조카들이 자신의 왕위를 빼앗을지도 모른다는 의심에 사로잡혀, 갓 태어난 두 왕자를 강물에 던져 버립니다.
일본사의 다이라노 기요모리처럼, 약자에게 따뜻함을 베풀었다가 훗날 큰 화를 부르는 역사의 반복은 참으로 가혹하기 짝이 없습니다.
늑대의 젖으로 자란 두 왕자

세계사 자료집에 빠짐없이 실릴 만큼 유명한 청동상 「카피톨리누스의 늑대(Lupa Capitolina)」. 강물에 떠밀려 간 두 아이는 바로 이 늑대의 젖을 먹고 자랐다고 전해집니다.
실제로 늑대에게 길러진 인간의 사례도 몇몇 알려져 있지만, 인간 사회에 적응하지 못하고 요절한 경우가 많았습니다. 그러나 두 왕자는 그런 일 없이 건강하고 강하게 성장했습니다.
물론 전설이기에 어디까지나 신화적 서사지만, 실제로는 늑대만이 아니라 목동 파우스툴루스가 두 아이를 거두어 길렀다고 합니다. 이 사람은 로물루스와 레무스의 양부였으므로, 어떤 의미에서는 '로마의 대부'라고 불러도 좋을 인물입니다.
두 형제는 피가 끓는 성격이었던 모양입니다. 주변 목동들 사이에서는 형님 노릇을 하며 잘 어울렸지만, 원수도 많았던 듯 어느 날 레무스가 목동들에게 납치를 당합니다. 동생을 되찾으려는 로물루스에게 파우스툴루스는 두 사람의 출생의 비밀을 밝히고, 그제야 로물루스는 숙부 아물리우스를 적으로 인식하게 됩니다.
왜 파우스툴루스가 출생의 비밀을 알고 있었는지는 여전히 논쟁거리입니다. 유력한 설은 두 아이가 강물에 떠밀려 가던 순간을 목격했다는 것인데, 과연 목동이 어떻게 그런 장면을 목격할 수 있었는지는 일단 접어두겠습니다.
참고로 로물루스와 레무스 전설의 내용은 구전에 따라 상당히 다릅니다. 레무스를 납치한 것이 목동들인 버전도 있고, 숙부 아물리우스의 명령이었다는 버전도 있습니다.
알바 롱가와 형제의 싸움

핏줄끼리의 싸움은 처참하기 마련입니다. 일본사의 임신의 난(壬申の乱)이 그랬듯, 로마 건국 과정의 일련의 전쟁 역시 골육상포의 전쟁이었습니다.
출생의 비밀을 알게 된 두 형제는 숙부인 알바 롱가의 왕 아물리우스에게 도전합니다. 전승에 따라서는 두 사람이 목동들을 이끌고 왕궁으로 쳐들어가 아물리우스를 타도했다고 합니다.
안타깝게도 어머니 레아 실비아는 이미 세상을 떠난 뒤였지만, 할아버지 누미토르는 살아 있었습니다. 누미토르는 두 손자에게 왕위를 계승하라고 선언했고, 주변 신하들도 두 사람을 왕으로 인정했습니다. 이로써 숙부와 조카 사이의 알바 롱가 전쟁은 막을 내렸지만, 유감스럽게도 행복한 결말은 아니었습니다.
두 형제는 알바 롱가에 머무르지 않고 티베르강 하류에 새 도시를 세우기 시작합니다. 그것이 훗날의 로마입니다.
그러나 두 사람은 서로 의견이 맞지 않았고, 결국 형제는 대립하기 시작합니다. 레무스의 도발에 응한 결투 끝에 로물루스가 승리하면서, 비극은 최악의 형태로 마무리됩니다.
로마 건국, 국정 운영, 그리고 사비니 여인들
왕위에 오른 로물루스는 기원전 753년 4월 21일, 성대한 건국식을 거행합니다. 이날은 로마의 건국기념일로 제정되었으며, 오늘날에도 로마에서는 이날 즈음 축제 분위기가 감돈다고 합니다.
로물루스의 통치는 무려 37년에 달했는데, 이 시기에 그는 원로원과 평민회를 설치한 것으로 전해집니다.
이 점에서 로물루스가 단순한 무력의 왕이 아니었음을 알 수 있습니다. 무섭기도 하지만, 이는 왕·원로원·평민회로 이어지는 권력 분립의 원형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몽테스키외보다 2000년 이상 앞서 삼권 분립을 내세운 셈입니다. 솔직히 현대 일본에서조차 삼권 분립이 제대로 작동한다고 보기 어렵다는 점을 생각하면 놀라운 일입니다.
로물루스는 로마의 도시 계획에도 힘을 기울인 것으로 보입니다. 물론 전설이라 의심의 여지는 있지만, 고대 로마 제국의 기반이 이 무렵부터 다져지기 시작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실제로 로마에서는 기원전 800년 이전의 유적이 거의 발견되지 않는데, 당시만 해도 그다지 주목받지 못하던 땅이었음을 생각하면 로물루스의 안목은 대단했다고 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 로마에는 큰 문제가 하나 있었습니다.
남자뿐이라는 것! 남자는 여자 없이는 살 수 없지만, 여자는 남자 없이도 살 수 있고 오히려 더 오래삽니다. 이 가혹한 사실을 우리 남자들은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까요….
고대 로마인들이 이런 고민을 했는지는 모르겠지만, 심각한 여성 부족을 극복하기 위해 로물루스는 인근 사비니족의 여인들을 납치하기에 이릅니다.
일설에 따르면 로물루스의 아내 역시 사비니족이었다고 합니다. 당연히 사비니족은 분노했고, 그럴 만도 합니다. 참고로 '로마(Roma)'라는 이름이 사비니 여인을 붙잡은 로마인들에게서 유래했다는 전승도 있지만, 진위는 알 수 없습니다.
사비니와 로마 사이에 전쟁이 일어나지만, 로마인의 아내가 된 사비니 여인들의 중재가 한몫하면서 두 나라는 화해에 이릅니다. 영향력 있는 사비니족은 로마 귀족이 되었고, 로마와 사비니는 한 나라가 됩니다.
그리고 로물루스는 갑자기 모습을 감춥니다. 고대부터 역사학자들 사이에서 논쟁거리가 되어 온 로물루스의 최후는 아직도 결론이 나지 않았습니다.
로물루스 인물 평
실존 여부조차 확실하지 않은 인물의 인간성을 평가하는 것이 맞는지 모르겠지만, 거친 면이 없지 않았어도 정치가로서는 매우 유능한 인물이었다고 말할 수 있습니다.
로마에는 미친 황제가 많았지만, 로물루스는 아마 가장 정상적인 군주 반열에 들 것입니다.
그의 업적은 아무도 주목하지 않던 땅에 로마라는 도시를 세운 것, 그리고 원로원과 평민회를 설치한 것입니다.
전설이라 진위는 알 수 없지만, 로물루스의 도시 계획과 정치적 발전이 없었다면 로마 제국이 그토록 발전하여 거대해지지 못했을 것이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