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럽의 역사

로마 제국 쇠퇴의 방아쇠가 된 여인, 루실라 아우구스타의 삶과 남동생 콤모두스 암살 미수 사건

로마 제국 쇠퇴의 방아쇠가 된 여인, 루실라 아우구스타의 삶과 남동생 콤모두스 암살 미수 사건

역사 속 '악녀'로 기억된 황녀

세계사나 일본사 이야기를 들여다보면, 여성이 주목받는 순간은 생각보다 많지 않습니다. 그나마 이름이 알려진 인물이라 하면 흔히 '악정'이나 '악녀'로 분류되는 경우가 많죠.

오늘 소개할 주인공 역시 그런 '악녀' 중 한 명입니다. 루실라(Lucilla)는 세계사에서 손꼽히는 현제(賢帝)로 꼽히는 마르쿠스 아우렐리우스의 딸이자, '아우구스타(Augusta)'라는 황후의 칭호를 지닌 여인이었습니다.

그런데 왜 그녀는 악녀로 불릴까요? 도대체 무슨 짓을 저질렀던 걸까요?

황후는 아니었지만 '아우구스타'였던 여인

루실라는 148년에서 150년 사이에 태어났습니다. 아버지는 오현제(五賢帝)의 마지막 군주인 마르쿠스 아우렐리우스, 어머니는 네 번째 황제 안토니누스 피우스의 딸 파우스티나였습니다. 로마 황제의 친딸이자 외손녀라는, 더할 나위 없는 명문 가문 출신이었던 셈입니다.

아마도 딸을 너무 예뻐한 탓일까요? 아우렐리우스 황제는 루실라에게 '황후'를 뜻하는 칭호 '아우구스타'를 하사했습니다.

이런 관행은 전임 황제 안토니누스 피우스 때부터 시작된 나쁜 버릇이었습니다. 피우스 역시 남편이 즉위하기 전에 이미 딸 파우스티나에게 '아우구스타' 칭호를 내렸거든요. 비판할 데 없이 완벽하다는 평가를 받았던 피우스의 통치에서 유일하게 잘못된 점이라면 이것일지도 모릅니다.

궁정에서 자란 루실라의 인생에서 유일한 불운은 남편 루키우스 베루스의 요절이었습니다. 루키우스는 아버지 아우렐리우스와 함께 제국을 다스리던 공동 황제였죠.

로마의 풍습상 남편을 잃은 여인은 곧바로 재혼해야 했습니다. 아우렐리우스 황제는 루실라의 새 남편으로 폼페이아누스라는 장군을 택했습니다. 그러나 루실라는 이 남자를 어떻게 해도 마음에 들어하지 못했습니다.

폼페이아누스는 시리아 속주 출신으로 자신의 힘으로 성장한 자수성가형 군인이었습니다. 온실 속 화초처럼 자란 루실라와 잘 맞지 않는 것은 당연한 일이었겠죠. 어머니 파우스티나조차 이 결혼에 반대했고, 모녀는 폼페이아누스를 원망했다고 전해집니다.

어머니가 세상을 떠난 후 루실라는 유일한 '아우구스타'가 되었습니다. 황후는 아니었지만 황후의 칭호로 불리며 살 수 있었던 것이죠. 그러나 아버지가 서거하고 동생 콤모두스가 차기 황제로 즉위하면서 상황이 급변합니다.

동생 콤모두스 암살 미수 사건

콤모두스 즉위 2년 후, 극장에서 돌아오던 황제가 한 남자에게 습격당하는 사건이 벌어집니다. 범인은 금세 붙잡혔는데, 그 이름을 듣고 사람들은 깜짝 놀랐습니다.

범인의 이름은 클라우디우스 폼페이아누스 퀸티아누스. 위대한 장군이라 불리던 폼페이아누스의 조카였던 것입니다. 심문 끝에 드러난 배후 세력은 마르쿠스 움미디우스 콰드라투스와, 놀랍게도 '아우구스타' 루실라 본인이었습니다.

이때 콤모두스가 받은 충격은 상당했습니다. 친누나가 자신의 목숨을 노리고 있었으니까요.

루실라가 이런 극단적인 선택을 감행한 이유에 대해 한 가지 설이 있습니다. 동생 콤모두스의 아내가 임신하여, 루실라 외에 또 다른 '아우구스타'가 태어날 운명이 되었다는 것입니다. 지금은 진위를 확인하기 어렵지만, 루실라가 콤모두스의 목숨을 노렸다는 사실 자체는 분명합니다.

결국 실행자와 움미디우스는 처형되었고, 루실라는 카프리 섬으로 추방된 뒤 정확한 원인을 알 수 없는 방식으로 생을 마감했습니다.

그리고 콤모두스는 이 날 이후 사람이 달라졌다고 전해집니다.

현제의 자식이라는 착각

'스토아'라는 단어의 어원이 된 스토아 철학자이자 명저 『명상록』의 저자인 아우렐리우스 황제의 자식들이 이 모양이라니… 아우렐리우스는 자녀 교육에 확실히 실패했다고 말할 수밖에 없습니다.

루실라가 일으킨 사건은 정말로 누구에게도 이익이 되지 못했습니다. 그녀는 목숨을 잃었고, 동생은 폭군으로 변해버렸습니다.

로마 제국은 이날부터 기울기 시작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언덕 아래로 구르는 돌처럼 말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