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럽의 역사

마르쿠스 아이밀리우스 레피두스(Marcus Aemilius Lepidus)는 대체 무슨 일을 한 인물일까?

마르쿠스 아이밀리우스 레피두스(Marcus Aemilius Lepidus)는 대체 무슨 일을 한 인물일까?

마르쿠스 아이밀리우스 레피두스는 옥타비아누스, 안토니우스와 함께 제2차 삼두 정치를 이끈 인물입니다. 그런데 막상 그가 구체적으로 무슨 일을 했는지 묻는다면, 제대로 답할 수 있는 사람은 많지 않습니다.

솔직히 말하면, 그는 역사적으로 두드러진 업적을 남기지 못한 인물입니다.

명문 아이밀리우스 가문의 후예

레피두스는 소 스키피오 등 수많은 집정관을 배출한 로마 최고의 명문 가문, 아이밀리우스 씨족(gens Aemilia) 출신입니다. 그의 아버지 역시 집정관을 지냈는데, 처음에는 술라파에 속했다가 훗날 민중파로 방향을 바꾸었고, 폼페이우스와의 싸움에서 패배한 뒤 사르디니아에서 생을 마감했습니다.

레피두스 본인은 아버지의 뒤를 이어 민중파 대표가 된 카이사르의 갈리아 원정에 참전했으며, 법무관(프라이토르) 등의 요직을 거쳐 파르살루스 전투에서 카이사르를 보필하며 활약했고, 집정관까지 역임했습니다.

카이사르는 레피두스에게 남다른 신뢰를 보낸 듯합니다. 카이사르가 종신 독재관에 오르자, 그는 사실상 부관격인 기병장관(마기스테르 에퀴툼, Magister Equitum)에 임명됩니다.

카이사르 암살 이후에는 카이사르의 뒤를 이어 최고 신전(폰티펙스 막시무스, Pontifex Maximus) 자리에 올랐고, 옥타비아누스와 안토니우스의 대립 초기에는 안토니우스 편에 섰습니다.

카이사르가 자신을 두고 이름도 들어보지 못한 젊은이 옥타비아누스를 후계자로 지목한 데 대한 서운함이 있었을 수도 있습니다. 반면 안토니우스는 갈리아 전쟁 시절부터 함께한 동료였기에 특별한 감정이 있었을 것입니다.

제2차 삼두 정치

마르쿠스 아이밀리우스 레피두스(Marcus Aemilius Lepidus)는 대체 무슨 일을 한 인물일까?

그러나 브루투스와 카시우스 같은 카이사르 암살자들은 세 사람 모두에게 공동의 적이었습니다. 결국 옥타비아누스, 안토니우스, 레피두스는 카이사르의 뒤를 잇는 제2차 삼두 정치(트리움비라투스)를 수립했습니다.

제2차 삼두 정치의 첫 번째 과제는 카이사르 암살 세력에 대한 숙청이었습니다.

먼저 키케로가 공포 정치(프로스크립티오)의 희생자로 올랐고, 이후 카이사르의 암살자들이 하나둘씩 몰려갔습니다.

본격적인 주모자인 카시우스와 브루투스는 동방으로 도주했지만, 필리피 전투에서 옥타비아누스와 안토니우스에게 패배하고 말았습니다. 레피두스는 이 전투에 직접 참여하지 않았는데, 전투 이후 영토가 분할되어 안토니우스는 동방을, 옥타비아누스는 서방을, 레피두스는 북아프리카를 담당하게 되었습니다.

흔히 레피두스에게는 온건한 이미지가 있지만, 옥타비아누스가 폼페이우스의 아들 섹스투스 폼페이우스와 싸우던 틈을 타 세력 확장을 노렸다가 패배했고, 그 결과 최고 신전직을 제외한 모든 관직을 박탈당했습니다. 이후 조용히 여생을 보내다가 기원전 13년 숨을 거두었습니다.

레피두스에 대한 평가

다른 로마의 군벌이나 정치인들과 비교했을 때, 레피두스에게는 단 하나의 장점이 있습니다.

바로 '자연사'했다는 것입니다.

내전이 끊이지 않던 기원전 1세기, 수많은 인물이 전쟁터와 정치적 숙청 속에 목숨을 잃었습니다.

카이사르는 암살당했고, 폼페이우스는 망명지에서 살해당했으며, 크라수스는 파르티아 원정 중 전사했습니다. 키케로는 숙청되었고, 브루투스와 카시우스는 자결했으며, 소 카토와 안토니우스 역시 자결 또는 숙청으로 생을 마감했습니다.

그런 와중에 레피두스만은 살아남아 천수를 누렸습니다.

그것이야말로 레피두스의 유일한 '업적'이라 할 만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