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럽의 역사

로마에도 있었던 삼국시대! 갈리아 제국과 팔미라 제국의 흥망성쇠

세계사에서 가장 인기 있는 시대를 꼽으라면 단연 후한 말의 삼국시대를 들 수 있습니다. 영화, 만화, 소설은 물론 게임까지 다양한 콘텐츠로 제작될 만큼 큰 사랑을 받고 있으며, 일본에서는 전국시대와 함께 두터운 팬층을 자랑합니다.

그런데 의외로 잘 알려지지 않은 사실이 있습니다. 바로 3세기 로마 제국 역시 중국의 삼국시대와 거의 같은 시기에 세 나라로 분열되었다는 점입니다. 고등학교 세계사 교과서에도 등장하지 않고, 게임이나 만화, 영화 소재로도 거의 다뤄지지 않아 모르는 사람이 많습니다.

이번 글에서는 이처럼 숨겨진 로마의 삼국시대를 자세히 살펴보겠습니다.

갈리에누스 황제와 제국의 삼분할

로마에도 있었던 삼국시대! 갈리아 제국과 팔미라 제국의 흥망성쇠

로마 제국은 서기 260년경, 갈리에누스 황제 시대에 세 개의 국가로 분열되었습니다.

갈리에누스 황제가 누구냐고요? 그는 로마 역사상 유일하게 적국에 포로로 잡힌 발레리아누스 황제의 외아들입니다. 세계사 선택 과목에서나 볼 법한 이름이라 생소하게 느껴질 수도 있습니다.

갈리에누스의 치세는 험난하기 짝이 없었습니다. 동쪽에서는 사산조 페르시아가 침공해 왔고, 북쪽에서는 게르만족이 국경을 넘어 밀려들었습니다. 이러한 혼란 속에서 서방 갈리아 지역에서는 포스투무스가 갈리아 제국을 세워 독립을 선언했고, 동방 시리아에서는 동방 사령관 오다이나투스의 아내 제노비아가 팔미라 제국을 세우며 독립했습니다.

어느 황제보다 어려운 항해를 강요당한 갈리에누스였지만, 이 혼란의 시대를 극복하는 데 필요한 역량은 부족해 보였습니다.

팔미라 제국의 성립

먼저 팔미라 제국부터 살펴보겠습니다.

발레리아누스 황제가 사산조 페르시아에 포로로 잡히면서 로마의 동부 전선은 사실상 붕괴 상태에 빠졌습니다. 황제는 북방의 게르만족 문제를 처리하느라 동쪽에 신경 쓸 겨를이 없었고, 그렇다면 사산조 페르시아와 맞서 싸울 사람은 누구인가 하는 문제가 대두되었습니다.

여기서 주목받은 인물이 무역 도시 팔미라의 실력자 셉티미우스 오다이나투스였습니다. 그는 사산조에 맞서 자체적인 방위 조직을 꾸리고 있었는데, 갈리에누스 황제는 이를 높이 평가해 그를 동방 사령관으로 임명했습니다. 사실상 제국의 2인자에 해당하는 자리였습니다.

그러나 267년, 오다이나투스가 조카의 손에 살해당하고 아들과 함께 목숨을 잃는 비극이 벌어집니다. 이후 두 번째 아내 제노비아의 아들 바발라투스가 팔미라 제국의 건국을 선포했고, 제노비아가 섭정으로서 실권을 쥐게 됩니다.

반역자인 조카는 제노비아에 의해 신속하게 처단되었고, 제노비아는 사산조 페르시아와 손잡고 여왕으로 군림하며 시리아와 이집트를 영토로 삼았습니다. 아들은 명목상의 황제, 즉 괴뢰였던 셈입니다. 당시부터 남편의 죽음이 제노비아의 계획이 아니었냐는 의혹이 제기되었고, 지금도 그렇게 믿는 사람이 많지만 당대의 확실한 증거는 남아 있지 않습니다.

갈리아 제국의 성립

갈리아 제국 역시 발레리아누스 황제의 포로 사건이 낳은 혼란 속에서 태어난 나라입니다.

발레리아누스 황제 이후 제국 곳곳에서 장군들의 반란이 잇따랐습니다. 최초의 반란은 판노니아 속주 총독 레갈리아누스가 일으켰는데, 황제가 직접 진압한 뒤 그 지역의 통제권을 포스투무스에게 위임했습니다. 그러나 포스투무스는 이번에는 스스로 반기를 들고 독립을 선언해 버립니다.

정치가 어수선할 때마다 새로운 찬탈자가 나타나는 악순환인 셈입니다. 포스투무스는 황제의 아들 살로니누스를 처형하고 스스로 황제임을 선언했습니다.

아버지는 사산조 페르시아에게, 아들은 갈리아 제국에게 잃은 갈리에누스는 결국 복수도 이루지 못한 채 268년 클라우디우스 고티쿠스에게 암살당하고 맙니다.

이로써 로마는 북쪽의 게르만족, 동쪽의 사산조 페르시아, 서쪽의 갈리아 제국, 남쪽의 팔미라 제국에 둘러싸인 사면초가의 처지에 놓이게 됩니다.

갈리아 제국을 건국한 포스투무스는 얼마 지나지 않아 부하들에게 암살당했고, 내전 끝에 테트리쿠스 1세가 뒤를 이었습니다. 권력 다툼으로 불필요하게 국력을 깎아먹는 것은 역사가 반복해서 증명해 온 교훈입니다. 이는 국가뿐 아니라 기업에도 마찬가지로 적용됩니다. 어리석은 자는 역사로부터 배우지 못한다는 말이 괜히 나온 것이 아닙니다.

아우렐리아누스 황제에 의한 재통일

로마에도 있었던 삼국시대! 갈리아 제국과 팔미라 제국의 흥망성쇠

클라우디우스 고티쿠스가 전염병으로 사망하자, 아우렐리아누스가 차기 황제로 추대되었습니다.

그의 특징은 무엇보다 즉각적인 행동력이었습니다. 로마 내전의 위기를 진정시키기 위해 트라야누스 황제 때부터 로마 영토였던 다키아의 이익을 과감히 포기하고, 곧바로 동방의 팔미라 제국과의 전투에 나선 것입니다.

팔미라는 무역으로 축적된 부를 바탕으로 용병 부대를 조직해 대비했지만, 강력한 로마군을 상대로는 역부족이었습니다. 제노비아는 세 차례에 걸쳐 로마군에 맞서 분전했지만 결국 승리하지 못했고, 기대했던 사산조의 원군도 오지 않는 가운데 포로로 잡히고 맙니다.

위 그림은 포로가 된 제노비아를 묘사한 것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이후 아우렐리아누스는 신속히 서쪽의 갈리아 제국으로 진격했고, 테트리쿠스 1세와 회담을 열어 그의 항복을 받아냈습니다. 이로써 로마는 다시 하나로 통합되었습니다.

아우렐리아누스 황제는 이어서 사산조 페르시아 원정에 나섰지만, 그 길목에서 부하의 손에 암살당합니다.

로마의 혼란은 아직 끝나지 않은 듯싶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