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프랑스의 조종사 롤랑 가로스(Roland Garros)는 항공 역사에서 가장 먼저 '진정한 의미의 전투기'를 하늘에 띄운 인물이다. 1888년에 태어난 그는 어린 시절부터 비행기에 매료되어 1909년 첫 비행에 성공했으며, 제1차 세계대전이 발발하기 전까지 수많은 에어쇼와 비행 대회에 참가해 눈부신 활약을 펼쳤다. 특히 당시 세계 최고 고도 기록인 5,600m 상승이라는 쾌거를 이루며 그 이름을 널리 알렸다.
가로스는 1913년 단엽기로 지중해를 인류 최초로 무착륙 횡단하는 위업을 달성하는 등, 대전 이전부터 이미 세계적인 명성을 얻고 있던 조종사였다.
프로펠러 앞에 기관총을 달다
1914년 전쟁이 발발하자 가로스는 즉시 프랑스 항공대에 자원입대했다. 그러나 당시의 군용기는 정찰과 관측에 주로 사용될 뿐, 적기를 격추할 무장이 전혀 없었다. 가로스는 동료 엔지니어와 함께 이 문제의 해결책을 일찌감치 고민하기 시작했고, 1915년 초 모라느-솔니에(Morane-Saulnier) 회사와의 협업 끝에 위험 부담이 크지만 획기적인 방안을 찾아냈다.
그의 아이디어는 날개 중앙식 모라느-솔니에 N형 단엽기의 기수에 기관총을 장착하고, 기체가 나아가는 방향 그대로 사격하는 것이었다. 문제는 프로펠러였다. 발사된 총탄이 자신의 비행기 프로펠러를 부술 수 있다는 점이었다.
이에 대한 해법으로, 프로펠러 날개의 기관총 탄환이 맞는 위치에 강철판, 즉 반사판을 부착했다. 프로펠러에 맞는 총탄은 이 반사판에 튕겨 나가도록 설계된 것이다. 물론 이 방식은 결코 안전하지 않았다. 튕겨 나간 탄환들이 어떤 각도로 흩어질지 아무도 계산할 수 없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실제 위험은 처음 우려보다 훨씬 작았다. 당시 항공기의 프로펠러는 두 날개짜리였다. 따라서 분당 회전수를 감안하면, 사수가 짧은 점사만으로 사격을 제한하는 한, 발사 순간 날개가 총구 앞에 놓일 확률은 상대적으로 낮았던 것이다.
역사상 최초의 전투기 격추
필요한 시험을 마친 가로스는 1915년 4월 1일, 기관총으로 무장한 자신의 추격기를 몰고 첫 전투 임무에 나섰다. 이것이 인류 역사상 최초의 무장 전투 비행이었다. 곧 독일군의 2인승 정찰기를 발견한 그는 과감히 돌진했다. 홀로 나타난 모라느기를 본 독일군은 크게 경계하지 않았다.
그러나 순간, 프랑스기의 오치키스(Hotchkiss) 기관총이 울부짖는 소리와 함께 탄환들이 허공을 찢었다. 순식간에 독일기는 불덩이 덩어리로 변해 지면으로 추락하고 말았다. 가로스는 이후 며칠 동안 같은 방식으로 승전고를 거듭 올렸다. 그러나 4월 19일, 불운하게도 그의 기체는 독일군 진영 뒤편에 강제 착륙해야 했다.
포로 탈출과 비극적 최후
포로가 된 가로스는 1918년 독일 포로수용소에서 탈출하는 데 성공했다. 곧바로 프랑스 항공대로 복귀한 그는 1918년 10월 2일 또 한 대의 적기를 격추하며 여전한 기량을 과시했다. 그러나 불과 사흘 뒤인 10월 5일, 그는 적의 공격으로 격추되어 스물아홉의 젊은 나이에 생을 마감했다. 이렇게 해서 항공의 위대한 개척자 중 한 명이 하늘에서 사라졌다.
흥미롭게도 가로스의 발명은 전쟁 양측 모두에게 항공전의 판도를 바꾸는 계기가 되었다. 독일군은 노획한 가로스의 기체를 분석해 안토니 포커에게 '동조화 기관총' 개발을 의뢰했고, 이는 이후 독일 전투기의 전성기를 연 결정적인 무기로 발전했다.
그의 이름은 오늘날까지 살아 있다. 프랑스 테니스의 성지이자 프렌치 오픈이 열리는 파리의 중앙 코트장이 바로 그의 이름을 딴 '롤랑 가로스 경기장'이기 때문이다.

